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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핥hart Mar 12. 2017

반려견을 원하는 당신에게.

#나는 감히 당신의 입양을 반대한다.


나는 꽤 오랫동안 밖으로 꺼내지 못한 한마디가 있다.


"도시에서 강아지를 키워선 안돼."


바야흐로, 펫 전성시대다. 강아지, 고양이, 햄스터는 평범한 편이며, 도마뱀이나 물고기를 키우는 사람들도 있다. 키워보지 못한 동물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므로 코멘트하지 않더라도,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한국의 집에서 길러지는 강아지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생명중 하나라고.


물론, 이 말은 충분히 사랑을 주고받는 반려견과 반려인을 겨냥한 말이 아니다. 과거에 비해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반려견 입양에 신중하지 못하다.


나는 반려견을 원하는 많은 사람에게 공통점으로 묻고 싶다.

당신은 반려견이 가장 사랑하는 게 무엇인지 아느냐고.


#반려견의 "달리기"는 그들의 삶 자체.


반려견이 가장 사랑하는 것.

그것은 바로 "달리기"


소형견이건 대형견이건 강아지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는 인간의 상식을 가볍게 웃돈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그들의 분출하지 못한 에너지는 "악마견"이라는 형태로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충분히 달리는 반려견은 아무 때서나 기행을 일삼지 않는다.


나는 강아지를 엄청나게 좋아한다. 내가 길렀던 강아지들에 대한 애착은 지나가는 타인의 강아지도 입에 침 떨어지는 줄 모르게 쳐다보곤 할 정도지만 이뻐하는 마음의 한편엔 늘 그늘이 드리운다. 왜냐하면 나는 자의적으로 14년째 반려견을 기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함께했던 반려견들.


나의 첫 번째 반려견은 백구 복실이,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였다. 나는 시골에 자라났고 집 뒤에 넓은 공터가 있어서 나보다 큰 복실이의 등에 업히고 내가 업고 다니며 놀았다. 기관지가 약했던 나는 복실이를 엄마의 친구분께 보냈어야 했고 마지막을 함께 하지 못했지만, 그것이 내가 반려견과 가졌던 첫 번째 유대였다.


두 번째는 성인이 된 이후다. 나는 1년 동안 뉴질랜드 고모댁에서 지냈다. 당시 고모댁엔 커다란 셰퍼드 한쌍이 살았다. 뚱이와 메이. 지금도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생각난다. 호전적인 성격의 셰퍼드였고 특히나 호전적이었던 뚱이는 내가 고모의 조카라는 걸 한눈에 알아봤던 것인지 특이하게 나에게는 호전적이지 않아 우리는 금방 가까워졌다. (셰퍼드 답지 않게 팔불출이었던 메이는 나를 좋아했고, 그 덕분에 뚱이와도 금방 친해진 거 같았다.)


 매일 저녁밥을 챙겨주는 사람은 나였고, 저녁을 먹고 난 뒤엔 함께 드넓은 농장을 돌아다녔다. 스무 살의 나는 마라톤을 완주할 정도로 체력에는 자신 있었지만, 늘 함께 달리다 보면 내가 턱밑까지 숨이 차도록 달려도 뚱이와 메이의 발끝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들은 늘 내가 달리기 시작하면 함께 뛰었고, 내가 뒤쳐지면 멈춰 서곤 했다. 내가 괜찮다고 달리라고 하면 내게서 너무 멀어지지 않을 만큼 신나게 뛰고 또 뛰었다. 마치 달리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무한체력이란 그 커플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반려견은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 즉 주인을 가장 신뢰한다. 당연히 고모와 고모부를 신뢰했고 그중 고모를 더욱 신뢰했다. 그만큼 고모가 그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반증이 된다. 고모댁엔 사촌누나와 매형, 사촌 형과 형수도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나는 6순위였지만, 반년이 지나자 나는 고모부만큼 신뢰를 받고 있음을 느꼈다. 농장은 도시의 한 블록만큼 컸기 때문에 농장의 끝에서부터 내 발자국 소리를 들은 뚱이와 메이가 나무 펜스를 사이에 두고 집 앞으로 올 때까지 마중을 나왔다.


내가 그들에게 특별해진 이유는 사실 특별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친구처럼 대했다. 물론 기본적인 훈육도 함께했지만, 매일 농장을 함께 산책했던 것. 그들과 함께 달렸던 것. 그것으로 나는 그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당연히 그것은 의도된 것이 아니었고, 수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느끼는 바이다.



#생명의 무게


나는 팔불출 메이의 첫 번째 출산을 기억한다. 덩치만 컸지 한 살밖에 안됬던 메이는 첫출산에 예민해졌고 남편 뚱이도 다가가지 못했고, 심지어 고모부도 가까이 가지 못했다. 당시 딱 두 사람만 예민해진 메이 곁을 지킬 수 있었는데 바로 고모와 나였다. 메이는 차고에 차려진 분만실에서 하루 종일 새끼를 낳았다. 새벽부터 시작해 다음날 해가 중천을 뜰 때까지 12시간이 넘는 시간을 낳고 쉬기를 반복했다. 개중엔 거꾸로 나와 고생한 녀석, 탯줄이 목에 걸렸던 녀석, 첫 출산에 많이도 낳은 터라, 고모와 내가 돌아가며 지켜보다 출산을 도왔다.


잠시 한눈판 사이에 메이가 무언가를 우걱거리며 먹고 있는 소리가 났다. 입밖으로 보이는 꼬리가 마치 강아지의 그것이라 깜짝 놀랐던 게 기억난다. 나는 메이에게 왜 그랬냐고 뱉으라고 소리쳤는데 알고 보니 커다란 쥐였다. 뉴질랜드에는 강아지만 한 쥐가 있는데 새끼에게 위협이 되자 메이가 해치웠던 거다. 지금도 억울한 표정의 메이가 생각난다.


새끼 중엔 유독 약한 녀석이 한 마리 있었는데 그래서 젖을 먹지 못한 녀석이 있었다. 집으로 데려와 두꺼운 타월로 감싸고 데운 우유를 입안으로 넣었다. 조금 나아지는가 싶더니 이내 녀석은 움직임이 없어졌다. 나는 손가락 두 개를 모아 심장을 누르기도 했고 작게 벌어진 입에 인공호흡까지 시도했지만 녀석은 결국 그렇게 숨졌다. 그때 흘린 눈물이 아직 기억난다. 해가 뜨고 농장에 있는 호수 옆에 무덤을 파 녀석을 묻었다. 혹시나 뚱이가 냄새를 맡고 팔까 봐 아주 깊이 파 천에 녀석을 감싸 묻어줬다. 냄새를 맡고 틈틈이 무덤가에 다가오던 뚱이를 한동안 내쫓아야 했다.



#입양의 조건


셰퍼트 새끼는 어릴 때 모습이 꼭 똥개와 같다. 성장하고 나서야 늠름하고 멋있어지는데, 일곱 마리의 강아지들에 파묻혀 지내던 그때를 기억한다. 농장엔 젊은 셰퍼드 커플도 있었고, 우리는 창고를 개방해 강아지들을 입양시켰다. 뚱이와 메이는 혈통 있는 셰퍼드였기에 강아지들은 챔피언 집안의 엘리트로, 좋은 주인들을 하나씩 만났다. 새 주인 들은 자신의 신분을 증명해야 했고, 수입도 공개했다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 강아지를 키울지 역시 일일이 확인했다. 반려견이 뛰어다닐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보장할 수 있는지는 무엇보다 중요한 사항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의 사는 곳도 확인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그에 대해 불평하거나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반려견을 동물병원에서 몇 장의 지폐로 사고파는 것으로 생각했던 나에겐 입양 문화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새 주인 들은 강아지를 데려간 뒤에 한 번씩 다시 강아지를 데리고 농장을 방문했는데, 우리가 잘 키우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일종의 메시지였던 것 같다. 나중에 들었던 사실은 입영한 새 주인과 입양 보낸 주인간에 지속적으로 연락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했다. 그래서 성견이 된 뒤에도 부모견을 만나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부모견은 한눈에 그들의 자식임을 알아보았다.


고모와 고모부가 들으면 섭섭하시겠지만, 나는 지금도 뚱이와 메이를 가장 많이 기억한다. 내가 사랑했고 나를 사랑해줬던 그들을 잊을 수 없다. 언젠가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가 그들과 함께 달리기를 꿈꾸었지만. 수년 전 뚱이와 메이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반려견과 함께 한 십여 년 동안 사는 곳을 벗어나지 않았던 고모 부부는 아주 오랜만에 여행을 떠났다.



#도시의 반려견들


도시는 반려견들에겐 최악의 주거환경을 제공한다. 산과 들 대신 콘크리트 위를 달려야 하고, 그들의 후각을 자극하는 것은 풀내음 대신 쓰레기봉투일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충분히 사랑받는 반려견들은 분명히 있다. 거기엔 몇 가지 추가 조건들이 발생하는데 1인 이상의 가족 구성원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이러니한 것은 외로움을 느끼는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그만큼 반려견의 입양도 늘어났지만 버려지는 반려견 역시 많다는 것이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입양은 가장 나쁜 형태의 반려견을 낳는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입양을 반대한다.


물론 대한민국에도 산과 들을 뛰놀며 사는 반려견은 있다. 그들은 분명히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렇지 못한 반려견이 압도적으로 많은 게 한국이다. 많은 반려인들이 강아지 산책의 중요성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왜 그토록 중요한지. 1일 1 산책 조차도 그들에게 왜 충분하지 못한 지 까지 고려하는 반려인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반려견을 사랑한다. 그래서 내가 준비될 때까지 그들과 함께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너무 사랑스러운 아이들, 너무 안쓰러운 아이들을 보고서도 뒤돌아 섰던 이유는. 그들이 내게 주는 사랑에 내가 충분히 보답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 받는 사랑의 절반이라도 돌려줄 수 있었다면 모를까.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도시에서 사는 동안엔 나는 그들의 사랑에 보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반려견을 위해 어떤 각오와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이 질문을 하기 위해서였다. 당신은 필요하다면 밤을 지새워야 하고, 때로는 반려견의 삶을 우선으로 둬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절대로 당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반려견을 입양하지 말아달라. 반려견은 당신에게 행복 그 이상을 주겠지만, 당신이 반려견의 행복하게 할 자신이 없다면 부디 입양하지 말아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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