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에 얘기했던 데로 사색은 원래의 나로 돌아가는 행위이다. 그렇다면 '원래의 내가 뭔데?'라는 의문이 생길 만 한데 그것은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가는 것과는 다르다. 유년기의 기억은 과거이며 지금의 나는 아니니까.
여기서 말하는 <원래의 나 =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굳이 돌아간다고 표현한 이유는 인생을 살아갈수록 삶은 개인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되고, 기준이 흐릿해지며, 방향이 뒤틀리기 때문이다. 사색을 통해 타인에서 벗어나 순수히 나 혼자만의 관점으로 세상 그리고 나를 바라보고, 기준을 정하며, 방향을 재설정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반드시 좋은 미래를 불러오는 것은 아니지만, 점집을 찾아가 자신의 미래를 대리 결정하는 건 그만둘 수도 있다.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물어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의 흔한 착각은, 생각이 많은 것이 사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단순히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불러오고 또 다른 고민만 일으키는데 그친다면 그것은 잡념일 뿐, 사색이 될 순 없다. 잡념을 사색과 착각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바로 이것이다. 생각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꼬여버리면 푸는 걸 포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헝클어진 실뭉치의 실마리만 찾는데 그친다면, 우리는 영원히 옷을 만들 수 없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잡념은 불청객이다. 그래서 우리는 잡념이 반갑지 않다. 하지만 사색은 내가 찾아 가는 것이며 차이는 거기서 생긴다. 생각을 노동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곧잘 사색의 문턱에서 뒤돌아선다.
다음 편에서는 <직렬식 사색 법>에 대해 다뤄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