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의 시간여행

빛의 속력, 그리고 시간

by 호연

도시는 24시간 빛이 가득하다. 그런 도시의 반짝임에 낮 동안 햇빛에 숨어있다 밤이 되면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던 별빛들은 모습을 감췄다. 나는 평생을 도시에서 살았다. 별을 이름으로 하는 마을에서, 별을 이름으로 하는 학교를 다녔지만, 정작 하늘에는 별빛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운 좋게 맑은 날이면 까먹지 않고 셀 수 있을 만큼의 별빛이 반짝이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도시가 빛을 채워가면서 하나둘 사라져 갔다. 밤하늘의 별이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조금씩 외로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사라지지 않으려 애쓰던 빛 하나가 있었다. 별이 아니라 인공위성이었지만, 별빛과 닮은 반짝이는 빛 하나가 항상 내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받곤 했다. 밤에 고개를 들면 언제든지 반짝이는 빛을 볼 수 있었으니까.


그런 내게도 은하수를 볼 수 있는 날이 있었다. 기대에 부풀어 천문대에 올랐을 때, 하늘은 어두웠다. 별로 수놓아진 은하수는 사진 속에서만 존재했던 걸까?

누군가 말했다. 어둠에서는 잠시 눈을 감으라고. 빛에 익숙했던 눈이 어둠에 적응하면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볼 수 있을 거라 했다. 그러나 내게 눈을 감고 온전한 어둠을 받아들이는 시간은 길게만 느껴졌기에, 이내 다시 눈을 뜨고 어둠 속을 더듬으며 걸었다.

다시 천문대에서, 5초 동안 눈을 감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짧지만 긴 기다림의 끝에 눈을 뜬 순간, 세상은 어떤 종류의 빛보다 아름다운 빛에 둘러싸여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가 보는 모든 별빛은 과거의 빛이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인 알파 센타우리는 4.3광년으로, 별에서 출발한 빛이 4.3년을 달려와야 비로소 지구에 다다를 수 있다. 우리가 지금 보는 알파 센타우리는 4.3년 전의 알파 센타우리이다. 만약 알파 센타우리가 사라진다면, 우리는 4.3년 후에나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반대로 현재까지 인간이 관측한 지구에서 가장 먼 별은 131억 광년 거리의 ‘GRB 090429 B’이다. 우주의 나이는 138억 년이니, 우리는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4.3년에서 131억 년까지 우주의 거의 모든 역사를 경험할 수 있다. 별빛은, 우주는 항상 우리 곁을 맴돌고 있지만 우리가 그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어둠에 적응했을 때, 비로소 별빛은 제 모습을 드러낸다. 은하수가 더욱 아름다운 이유다.

사실 별만이 아니라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현재가 아닌 과거의 모습이다. 별이 너무나도 멀리 있기 때문에 그 차이가 우리가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클 뿐이다. 왜 그럴까? 빛에는 속력이 있다. 그 말은 일정 시간 동안 일정 거리를 움직인다는 의미이다. 정확한 수치를 말하자면 1초 동안 299 792 458m를 움직인다. 인간이 일상생활에서 빛의 움직임을 알아챌 수 없을 만큼의 속도이다. 빛은 자신의 속력에 맞춰 달려 나가 자신 앞에 있는 물체에 반사해 우리 눈에 도달한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 의자와 책상과 친구와 가족은 내가 존재하는 현재의 모습이 아닌 0.00001초보다도 짧은 과거에 빛이 반사된 모습이다.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지만,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과거에 있다. 빛에 속력이 있기에, 결코 우리는 현재를 볼 수 없다.


빛의 속력은 변하지 않는다. 가만히 서서 바라보는 빛, 빛이 오는 방향을 향해 달려가면서 보는 빛의 속력은 같다. 만약 빛이 오는 방향을 향해 달려가면서 보는 빛이 서서 바라보는 빛보다 빠르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가 빛이 오는 방향을 향해 달려가는 속도가 빛의 속도와 같은 상태에서 빛을 본다면, 빛은 정지된 파동의 형태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정지된 파동은 존재할 수 없다. 결국 우리가 빛을 보아서는 안 되기 때문에 빛의 속력은 무슨 수를 써도 변화하지 않는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 시공간이 휘어진다. 빛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사람의 시간은 느려지고 몸은 짧아진다. 빠르게 달려갈수록 시간은 더욱 느려지고 몸은 더욱 짧아진다. 특수상대성이론이다. 결국, 우리는 빛을 통해 절대적인 시공간은 없음을 알 수 있다.



천문대에서 보낸 시간은 아름다웠지만 짧았고, 이내 천문대에서 내려와야 했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맑은 날 밤하늘에서는 인공위성의 희미한 빛 하나를 볼 수 있었지만, 그때와 같이 별빛에 둘러싸여 우주의 역사를 여행할 수 있는 날은 없었다. 가끔 별빛들이 보고 싶어 지는 날에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히 눈을 감는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때의 찬란했던 별빛들이 밤하늘에 떠올라 나를 감싸 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