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빈 여행 필수코스
'짱안'에서 스쿠터를 타고 '바이딘 사원'으로 이동했다. 동남아시아 최대 규모의 사원답게 입구를 찾는 것이 조금은 힘들었다. 영락없이 입구라고 생각해서 들어가면 문이 잠겨 있거나 출입금지를 당했다. 관광객을 위한 입구는 다른 곳에 있으니 그쪽으로 가라는 말 뿐이었다.
몇 사람에게 물어물어 도착한 주차장이 바로, 바이딘 사원의 입구였다. 바이딘 사원은 입장료가 없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신, 주차장에서 '사천왕문'까지 걸어가면 약 35분 정도 소요되기 때문에 노란색 전동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왕복 티켓을 구매해야 했다.
삼문공, 사실 불교적 의미가 있으려면 '삼공문'으로 보는 게 좋다. '삼공문'은 '삼삼매' 혹은 '삼해탈문'으로 부르기도 한다. 삼해탈문에는 '공해탈문', '무상해탈문', '무원해탈문'으로, 해탈에 이르는 3가지 마음을 담고 있다. 좌우로 '안락'과 '해탈'이라는 글씨가 있는 것으로 봐서 이 문은 '삼공문'의 의미가 담겨있는 것으로 추측해 본다.
이곳이 바로 도착지점이자 시작점이다. 이 문을 보자마자 어이가 없었다. 불과 30분 전만 해도 저 문 너머에서 이곳으로 들어오려고 애쓰던 청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나다. 이곳의 문이 닫혀 있던 이유는 큰 뜻이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단순히 관광객의 지갑을 열어 전동차를 이용하게 만들려는 전략이 숨어있었다. 불편을 만들고 편의를 제공하면서 대가로 돈을 받는 것. 2010년도에 완공된 사원답게 현대의 시장원리를 잘 반영하고 있었다.
사원에 들어가기 전,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연못 위에 다리가 놓여 있다. 여기서 연못의 물은 속세의 때를 깨끗이 씻겨주는 역할을 한다. 이 다리의 끝에서 속세의 때를 씻겨내고 '사천왕문'에 들어섰다.
'사천왕문'은 기본적으로 불국정토의 동서남북을 지키는 신들이 모셔져 있다. '지국천왕', '광목천왕', '증장천왕', '다문천왕'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바이딘 사원의 사천왕문은 미완성된 느낌이었다. '광목천왕'과 '다문천왕'만 사원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 손에 있어야 할 비보들이 한 개씩 부족해 보였다. 용과 여의주를 들고 있어야 할 '광목천왕' 손에는 여의주 밖에 없었고, 창과 불탑을 들고 있어야 할 '다문천왕' 손에는 창 밖에 없었다.
본래 불교의 사천왕은 고대 인도의 민간신앙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원래는 여인의 모습이었지만, 불교로 수용되면서 귀족의 모습으로 바뀌었고, 불교가 동아시아로 전파되면서 귀족의 모습이 지금 우리가 보게 되는 장군의 모습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어쩌면 손에 용과 불탑이 없는 것은 동아시아로 깊숙이 전파되기 이전의 초기 컨셉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게 아니면 동상 제작비를 줄이기 위한 꼼수겠지만.
'사천왕문'을 지나고 기다란 회랑의 모습이 보였다. 회랑은 '종각', '관세음전', '석가불전', '삼세불전'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서부터 마지막에 위치한 삼세불전까지 제법 거리가 된다. 아직까지는 평평한 모습이지만 코너를 도는 순간부터 경사와 함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회랑에는 심심하지 않게 '500 나한'의 동상이 일렬로 나열되어 있다. '나한'은 '아라한'이라고도 하는데 이들은 더 이상 배울 게 없는 사람들로 최고의 경지, '열반'을 이루어낸 성자이다. 500 나한은 역사 기록마다 다른 사람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그들의 신분은 확실하지 않다.
'원시불교'에 입각하면 '아라한'도 석가모니와 똑같은 계급을 가진다. 하지만 석가모니가 죽고 '부파불교(소승불교)'에서 석가모니를 신격화하는 성향이 강해지면서 '아라한'은 불제자들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계위로 의미가 변모되었다. 즉 원시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얻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지만 소승불교에서는 부처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이후 분파된 '대승불교'에서는 '아라한'을 성자로 보게 되었고, 지금의 우리가 '아라한'을 성자로 마주하게 된 것이다.
바이딘 사원이 원시불교의 전통을 따르면서 건축했다면 500 나한의 동상은 회랑에 있지 않고 석가모니와 함께 법당에 있어야 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부분이다. 500개의 동상은 각기 다른 표정과 제스처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만지면 소원도 들어준다고 하니 재미있게 관람하면서 회랑을 걸으면 된다.
각기 다른 모습의 동상이라고 해도, 계속 보면 질리는 법이다. 500개를 모두 보고 싶을 만큼 나한상들의 모습이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회랑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걷기 시작했다.
안쪽의 모습은 잘 꾸며진 정원 같았다. 여러 색깔의 꽃이 있었다면 더 이쁜 모습이었겠지만, 정갈한 모습과 저 멀리 보이는 사리탑의 조화가 일본 사원에 온 것 같은 느낌도 주었다.
바이딘 사원의 첫 번째 코스, 8각으로 이루어진 '종각'이다. 이곳에는 청동으로 만든 거대한 종이 있다. 무게가 무려 36톤에 육박한다고 하니 얼마나 클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참고로 종 사진을 찍지 않아서 이렇게 설명만 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종각의 매력은 올라서서 내려다보는 풍경에 있었다.
'삼문공' 방향으로 바라보면 닌빈의 모습이 보인다. 시원한 바람도 불어오고 탁 트인 배경이 종각에 더 머물고 싶게 만들었다. 여담이지만 바이딘 사원의 관광이 끝나고 저 멀리 보이는 다리를 건너, 닌빈 외곽 마을을 둘러보는 경험도 했었다. 한 가지 충고하자면 선글라스 없이 절대로 가지 말아야 할 곳이다. 스쿠터를 타고 달리면 날파리들이 눈으로 들어온다. 눈을 뜨고 달리기 엄청 힘든 곳이었다. 숙소에 들어와서 옷을 벗으니 벌레 시체들이 쏟아져 내렸던 기억이 있다.
바이딘 사원의 두 번째 코스 '관세음전' 이다. 이곳은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 위치한 곳이다. 천수천안은 1,000개의 손과 1,000개의 눈을 의미한다. 중생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보살피는 존재로 '관음신앙'에서 나오는 대표적인 보살 중에 하나이다.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염불 하면 현세의 고통을 벗어나 해탈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한다.
보살의 개념은 '대승불교'에서 더욱 확장되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전도'의 의미로 안착한 것 같다. 대승불교의 보살사상 중 기본적인 개념은 서원과 회향이다.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서원, 자기가 쌓은 부처의 가르침을 남을 위해 힘쓰겠다는 회향이다. 일종의 밸런스 패치였던 셈이다. 석가모니의 신격화도 중요했고, 수많은 중생들에게 불교의 의미를 전파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보살이 되어 석가모니처럼 성불할 수 있다는 의미도 포함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보살이 되기를 원하도록 만들기 위해 '아라한'과는 다르게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보살을 그려낸 것 같기도 하다.
바이딘 사원의 세 번째 코스 '석가불전' 이다. 보통 석가모니불을 봉안한 법당을 '대웅전', '대웅보전'이라고 표기하지만 이곳은 '석가불전'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아직까지 모르겠다. 그냥 표기법에 따른 차이라고만 생각한다.
바이딘 사원에 있는 법당은 규모가 상당히 넓었다. 따라서 아이폰으로 전체 모습을 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사진으로 담기에 만만한 불상이 석가모니여서 찍었다. 석가모니 양 옆으로는 그의 십대제자인 '아난타'와 '마하가섭'이 있었다. 십대제자들 중에서 이들이 부처 옆에 있는 이유는 불교 경전 편찬에 막대한 공을 세웠기 때문이라고 본다.
석가불전 근처에서 회랑 밖으로 나가면 볼 수 있는 '사리탑'이다. 개인적으로 바이딘 사원의 모습을 연상시켜주는 매개체라고 생각한다. 바이딘 사원의 아름다움은 이 사리탑이 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가지 단점은 입장료가 있다는 것이다. 내부를 구경하고 싶었지만 전동차 왕복 값에 해당하는 가격이었다. 아쉽지만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사리탑 내부 구경을 포기하고 뒤쪽으로 돌아서 쭉 둘러보기로 했다. 좋은 풍경사진을 얻고자 하는 자에게 필요한 진리는 '올라가라'이다. 높이 올라선 자만이 멋진 사진을 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이 계단을 오른 후에 펼쳐진 풍경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바이딘 사원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와 닌빈 외곽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였다. 풍경에 녹아내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 곳이다. 솔직히 말하면 담배 한대 피고 싶었지만, 이곳은 사원이기에 그러지 못했다. 바이딘 사원에서 최고의 풍경, 최고의 사진을 보고 얻을 수 있는 곳이다. 더운 여름날 계단을 마주한다고 해서 피해가지 말고 한번쯤 올라오길 추천한다.
바이딘 사원의 마지막 코스 '삼세불전' 이다. 이곳에는 과거불, 현세불, 미래불이 봉안되어 있다. 여기서 현세불은 '석가모니불', 미래불은 '미륵불', 과거불은 '연등불'이다. 보통 왼쪽에 미륵불, 오른쪽에 연등불이 위치하게 된다.
초기 불교에서는 석가모니불 하나였지만, 시공이 확대되면서 과거불과 미래불이 나타나게 되었다. 시간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순간에 부처가 존재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또 한 번 불교 우상화 밸런스 패치를 하게 된 것이다.
여기는 삼세불전 뒤쪽, 산 아래로 15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곳이다. 투어로 오는 사람들은 쉽게 못 보는 히든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딱히 볼 것은 없지만, 바이딘 사원의 진짜 모습은 여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원래 바이딘 사원은 언덕 위에 지어진 작은 사원이었지만 2003년부터 공사를 시작해서 7년 만에 완공된 곳이라고 한다. 즉 2010년에 공사가 마무리된 곳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봤던 사진들에 깊은 역사는 없다. 단순히 베트남 최고의 건축가, 공예가, 조각가들이 만들어낸 21세기 새로운 관광지이다. 이곳의 역사는 2010년부터 쓰였으니까 아마도 2400년쯤 되면 유래가 깊은 곳이 될 것이다.
여하튼 그런 사실을 알고 왔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름도 없고, 구석진 곳에 있는 동굴 사원이 신비로웠다.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전동차를 타는 장소로 갔다. 이런 젠장... 영업이 종료 되었단다. 이럴줄 알았다면 원웨이로 구매할껄 그랬나보다. 그렇게 주차장까지 휘핑크림 처럼 맛있게 생긴 구름을 보며 터덜터덜 걸어갔다. 이날 밤 숙소에서 마셨던 맥주가 참 꿀맛이었던 것 같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