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증오하는 것보다,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편이 낫다.
나는 오랫동안 나를 아끼지 않았다. 남에게 두는 비중이 더 컸고, 내가 바라보는 ‘나’는 없었다. 남의 눈에 비치는 ‘나’만 존재했다. 그러니 내 고민을 듣지 않았고, 상처를 돌보지도 않았다. 남들이 날 찾기도 전에 먼저 다가가 묻고, 들어주고, 힘을 실어주며 살아왔다.
그들이 “네가 있어 다행이야”라고 말할 때, 그제야 나라는 존재가 확인되었다. 아마 어린 나는 그런 인정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 작은 칭찬 하나로 스스로를 각인시키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어른으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나는 정반대의 욕망을 가지기 시작했다. 나보다 나를 더 아끼고, 지켜봐 주고, 끝까지 함께할 존재를 원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다. 있어도 오래가지 못했다. 있더라도, 진실되지 않았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원하고, 영원하지 않을 것을 붙들려 하자 나는 점점 괴로워졌다. 혼자가 두려웠고, 불안했고, 공허해졌다. 의지하고 싶은 것들에 기대다 보니 나날이 초라해졌다.
그래서 철저하게 혼자이기로 결심했다. 내가 의지했던 것들은 결국 나를 갉아먹었다. 담배, 술, 연애. 어디서부터 잘 못되었을까. 그렇게 내 안을 들여다보다, 결국 발견했다. 내 안에서 자라지 못한 작은 아이를. 마음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은 채, 어두운 곳에서 눈을 꿈뻑거리며 나를 기다리던 아이. 작고 갸냘픈 몸. 두려움과 눈물이 가득한 눈. 그 아이를 보자 나는 울었다. 어른인 척 살던 나는 그 아이의 눈에 얼마나 한심해 보였을까. 내 안의 아이 하나도 돌보지 못하면서 대체 누구의 상처를 치유해 주겠다고 나섰던 걸까.
나는 그 아이를 안아줬다. 그 순간, 내가 평생 찾던 ‘영원한 존재’를 발견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그 아이에게 좋지 않은 것은 하지 않겠다고. 나를 위하며 살겠다고. 담배부터 끊었다. 나를 갉아먹는 것들을 내려놓았다. 좋은 것을 보고, 예쁜 것을 담기로 했다. 그리고 혼자 여행을 떠났다. 의지할 사람 없이, 오직 나만 있는 상황 속에서 나는 강해졌다. 들쑥날쑥하던 마음이 고요해졌다. 누구와 떠났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나는 늘 상대에게 맞추고, 나를 뒤로 미뤄왔으니까. 혼자 떠났기에,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배웠다. 혼자 떠났기에, 나는 자란다. 시간이 지나자 작은 아이는 성자장 하기 시작했다.
나는 확신한다. 누구에게나 그 아이가 있다. 크지 못했거나, 크지 않았거나. 다만 마주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 아이와 나 사이의 간격을 줄일 때 비로소 삶이 수월해진다. 함께 살아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나를 아끼기 시작하자 갖고 싶은 것이 생겼다. 지키고 싶은 것이 생겼다.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느꼈다.
나를 믿으니 힘이 생겼다. 앞으로 직진할 힘. 같이 성장할 힘. 담배를 끊고, 술도 잠시 멈추자 주변에서는 말했다.
“대단하다.”
“너는 한다면 하는 애다.”
유혹은 많았지만 내 안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그 정도 의지로 뭘 해낼 수 있겠어?
발전하고 싶은 거 맞아?
그 목소리는 나였다. 나를 믿는 나였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가장 먼저 나에게 실망하는 것도 나다. 그리고 나는 다시 나를 미워하게 된다. 그런 나를 다시 보고 싶지 않다. 나는, 어렵게 찾은 내 편이다. 평생 함께할 존재다. 이제 나는 안다. 나는 생각보다 따뜻하고 믿음직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어릴 때 친구들이 말했듯, 듬직하고 푸근한 사람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