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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까자까 Jul 24. 2023

호주에서 만난 베트남 갱스터

니, 내 누군지 아니?


10 대 3



바글거리는 군중들 사이로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사람들은 연신 힐끔거리며 최대한 저들을 피해 지나간다. 마치 주변의 공기가 슬로모션처럼 흐르는 듯했다. '꼴깍' 마른침이 자꾸만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키 작고 깡말랐지만 눈엔 살기가 가득한 베트남 남자 10명과 미식축구라도 할 것 같은 건장한 체격의 호주 남자 셋.


일촉즉발의 상황을 숨죽이며 모두가 바라보고 있다.

아까의 기백은 어딜 갔을까? 당황한 듯 동공이 흔들리고 있는 호주 남자 셋.






시간은 거슬러 15분 전.

멜버른 센트럴에 앉아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남의 장소 핫플. 멜버른 센트럴 시계탑

 


멜버른 센트럴을 줄여서 '멜센'이라고 불렀는데 보통 멜센 시계탑 아래에서 만나자 약속을 잡는다. 마치 홍대역 몇 번 출구나, 강남역 지오다노 앞처럼 멜센 시계탑은 약속 장소로 핫 플레이스였다.


그날은 친구와 유일하게 한국식 짜장면을 파는 식당을 가기 위해 기차를 타러 멜센에서 만나기로 했다. 조금 여유 있게 도착했던 나는 시계탑 아래 의자에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사람 구경을 하고 있었다.


모두가 바삐 어디론가 가고 있었고, 곳곳에 있는 잡화점의 매대엔 액세서리 쇼핑에 한참인 여자들도 보였다. 체격이 좋아 보이는 20대 호주 남자 셋은 건들거리며 내 옆을 지나갔다. 중2병에 걸린 듯 허세 가득한 욕설과 과장된 몸짓, 딱 봐도 양아치과 였다. 나는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재빨리 핸드폰을 보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들 근처를 지나가던 베트남 남자 둘.

친구와 장난을 치던 MLB 야구 모자 남자는 뒷걸음질 치다 베트남 남자와 부딪혔다.


"What the f*ck"

"Sorry"


부딪힌 건 호주남자였는데 사과는 베트남애가 했다. 그냥 빨리 피해 가려고 한 사과 같아 보였다.

그러나 MLB모자는 기어이 지나가던 베트남 남자 두 명을 붙잡고는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상대적으로 키가 작고 왜소했던 베트남 남자 두 명이 영 불리해 보이는 장면이었다.


끼리끼리 싸이언스라고 했던가. 호주 남자 셋 중 정상은 아무도 없었다. 누구 하나 말리지 않았고, 온몸의 깃털을 새워 몸을 부풀리는 공작새처럼 위협적으로 베트남 남자들에게 몸치기를 시전 했다.


베트남 남자애들도 깡다구가 있는지 "니들이 먼저 쳤잖아. 왜 시비야?" 하며 눈을 부라리며 대응했고, 호주 남자들은 곧 때릴 기세로 베트남 애들에게 폭력적으로 다가갔다.


지나가는 행인들 중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호주남자 셋은 으스대며 베트남 남자애들에게 욕을 해 대기 시작했다. 꼴 사나웠지만 나도 어쩔 수 없이 지켜만 볼 뿐이었다. 어깨빵을 제대로 당한 베트남 남자애들은 화가 나 보였지만 상대적으로 숫자로나, 피지컬로나 불리한 상황이었다.


베트남 남자 둘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치욕적인 인신공격을 당한 후 자리를 떴고, 호주 남자 셋은 아까보다 더 의기양양하고 더 큰 목소리로 과시를 하고 있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시아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여전히 친구를 기다리고 있던 나는 달리 다른 곳으로 가기도 뭣해서 계속 시계탑 아래 앉아 있었다. 그렇게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갑자기 저쪽에서 우르르 무리 지어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까 그 베트남 남자 2명을 포한한 10여 명이 멜버른 센트럴 안으로 들어왔다. 와. 저게 뭐야?


움푹 페인 그들의 눈에는 살기가 느껴졌다. 하얀색 아빠 러닝에 머리엔 두건을 쓴 남자, 식당에서 바로 온 듯 앞치마를 두른 남자, 평범하게 키 작고 깡말라 보였지만 그들은 베트남 갱스터였다.


나중에 아르바이트하는 카페에 오늘의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그중 베트남 친구가 말해준 펙트였다. 멜버른엔 베트남 갱스터가 조직되어 있다고.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고.


호주 남자 셋은 그곳을 재빨리 떴어야 했다.

호기롭게 으스대며 있더니 꼴좋게 공개 망신을 당하게 생겼다. 이젠.


"너희야? 우리 친구를 때린 게?"


낭랑하고 카랑카랑한 베트남 악센트가 섞인 영어였다.

역시 쪽수 앞에 장사 없는 걸까? 아까 보다는 목소리 톤이 다소 낮아진 호주 남자였다.


"때리긴 뭘 때려? 살짝 밀친 거지?"

"그러니깐 치긴 친 거네?"


열 명의 베트남 갱스터에 둘러싸인 호주 남자 셋은 당황한 얼굴이 가득했다. 그리곤 결국 백기를 들었다.

 

".. 미안"

"뭐라고? 잘 안 들려 제대로 사과해!"

"정말 죄송합니다. 됐지?"


비 맞은 강아지 같은 눈빛으로 사과를 했지만 말끝엔 약간의 자존심이 섞여 있었다. 갱스터들은 그들을 순순히 보내주지 않았다.


"앞으론 조심해. 두 번은 없어"

"네.."

"너희 셋. 얼굴 기억할 거야. 이젠 가봐"


베트남 갱스터 두 명이 길을 터 주었고, 호주 남자 셋은 아까 보다는 덜 건들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갱스터들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빛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작다고 무시하지 마. 베트남 무시하지 마. 가만히 안 둔다 모두'


한 편의 범죄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은 멜센을 떠났다.


여기저기에선 베트남 갱스터와 호주남자의 이야기로 웅성거렸다. 마침 친구가 도착하고 나는 내가 목격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친구는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놓쳤다며 아쉬워했고, 나는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이라 말해 주었다.


진짜 누구 하나 죽는 건 아닌지, 저 주머니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공포영화가 따로 없었으니깐.


코스모폴리탄인 호주.

특히 멜버른엔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데, 역시 인종 차별은 어딜 가나 있는 듯했다.

이유 없이 아시아 사람들에게 적대적인 사람들도 있고, 또 그런 아시아 사람들은 흑인이나 동남아시아 쪽 사람들을 무시했다. 또 그들은 은근히 호주 사람들을 무시했는데(할 줄 아는 언어가 영어밖에 없다고), 돌고 도는 뫼비우스 띠처럼 차별은 끝이 없었다.


나 또한 인종차별을 피해 갈 수는 없었지만 해외살이라는 게 다 좋을 수만은 없었으니 그저 차별이 심한 지역이나 식당은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이날 이후 베트남 식당엘 가는 게 은근히 쫄렸다.

나의 최애 베트남 쌀국수 식당인 스완스톤 스트릿의 '메콩'에 갈 때면 조금은 불친절한 직원의 서비스에도 절대로 눈을 부라리거나 트집을 잡지는 않게 되었다.


더럽고 치사해도 어쩌겠는가?

이 집 쌀국수가 제일 맛있는걸.

그리고 베트남 갱스터는 무서운걸.




멜버른 스완스톤 스트릿에 위치한 나의 최애 맛집 '메콩'. 쌀국수와 양상추에 싸먹는 스프링롤이 일품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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