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 여행의 이유 - 김영하
아, 여행이란 키워드로 이토록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니. 좋은 책을 만났을 때는 어쩐지 독후감을 쓰기가 더 어려워진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면서도, 여행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책을 다 읽고서도 한 이틀간은 머리를 쥐어짰다. 이 글을 쓰는 이 시점에도 막막해서 네이버 블로그를 켰다. 과거의 나를 칭찬해 주고 싶다. 난 여행을 다녀오면 꼭 블로그에 글을 썼다.
2017
성인이 돼서 처음 간 여행지는 도쿄였다. 당시에는 수능이 끝나고 친구들과 일본 여행을 가서 돈키호테를 털어오는 것이 소위 ‘국룰’이었다. 이때는 내가 원래 투덜거리는 성격이었는지, 아니면 첫 여행이라 기대가 커서 실망도 컸던 건지 도쿄 포스팅을 보면 아쉬움이 잔뜩 묻어있다. 돌이켜보면 ‘이건 꼭 해야 해.’가 많았던 여행이었다. 다시 돌아가서 내게 말해주고 싶다. 어차피 앞으로 몇 번이고 일본엔 또 갈 거니까 살 것만 찾지 말고 좀 즐기라고.
2017
도쿄에 갔다 온 지 한 달 만에 대학교 동기들과 오키나와를 갔다. 이때의 기록을 읽어나가면 이 친구들과 나눴던 웃음과 이야기들, 오키나와의 풍경과 공기에 섞인 꽃향기까지 느낄 수 있다. 이제 이 친구들은 대학 동기에서 벗어나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친구들이 되었으며, 아직도 이 친구들과 여행 얘기가 나오면 추억에 젖곤 한다. 지금은 각자의 삶을 살다 보니 누군가를 챙길 겨를이 없고 저마다 바쁜 까닭에 한자리에 모이기도 힘들지만,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를 기억하고 견인하며 살아간다. 문득 이런 사람들이 내 곁에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할 크고 작은 굴곡들도 이날의 기억과 추억으로 견인하며 잘 살아가길 바란다.
2018
한 번은 종강 직후에 후쿠오카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한적한 분위기의 여행지가 한몫했던건지, 바쁘게 지냈던 학업생활에서 막 해방된 시기여서 그랬던 건지 그저 산책한다는 느낌으로 다녀왔다. 꼭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에 벗어나 그저 산책하는 기분으로 여행하고 있으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내 여행 포스팅에는 마지막에 한줄평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글로 남겨야 비로소 기억이 더 선명해진다는 것을 아는 시점이었나 보다. 그러고는 블로그에 여행 카테고리를 만들고, 카테고리 제목은 한동안 고민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박웅현 작가의 책 구절을 인용했다. ‘여행을 생활처럼 하고, 생활을 여행처럼 해봐.’
2020
직장인이 되고 나서의 여행은 학생 때와의 여행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영화 데드풀의 대사가 떠올랐다.
인생은 괴로움의 연속이고, 행복은 광고처럼 짧다는 것. 다시 정규 프로그램으로 돌아갈 때란 얘기지.
직장인이 된 내게 여행은 그저 광고가 되었다. 뻔한 플롯의 정규 프로그램에 질릴 때쯤 짧고 자극적인 광고를 보고 오는 것. 그 광고에서 힘을 얻고, 다시 정규 프로그램으로 돌아가는 것. 내게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