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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고 Feb 28. 2019

그녀, 역마차를 털다! 펄 하트

낯선 그녀들의 역사 #1. 최초이자 마지막 여성 역마차 강도

1928년 미국 애리조나 주의 투스콘(Tuscon). 키 작은 한 중년 부인이 택시에서 내린다. 단아한 차림새의 그녀가 내린 곳은 피마 카운티 감옥(Pima County Jail). 지역 범죄자들을 수용하던 곳이었다. 괜찮은 단장을 한 그녀가 들어서자, 지키던 교도관이 나섰다. 어떻게 왔냐는 직원의 물음에 부인은 자기를 소개한 후, 젊은 시절 머물렀던 방을 둘러보고 싶다고 답한다. 낯익은 이름에 직원은 살짝 당황했지만, 안으로 그녀를 인도했다. 


3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을씨년스러운 방. 부인은 감회에 젖은 듯 눈물을 흘렸다. 감옥에선 많은 일이 있었다. 남자들로만 가득했던 이곳에서 그녀는 방탕하기도, 종교에 신실하기도 했다. 추억을 되새긴 듯 얼마 지나지 않아 부인은 돌아섰고, 기다리던 택시에 다시 올랐다. 누가 봐도 깔끔한 차림의 이 여성은 다름 아닌 19세기 말, 미국 서부를 놀라게 했던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역마차를 턴 여성 펄 하트였다.

19세기 말, 미국을 놀라게 한 역마차 강도 펄 하트
하트를 만나 잘못된 길로 이끌리다

펄 하트(Pearl Hart)는 1876년, 캐나다 온타리오(Ontario)의 조그만 마을 린지(Lindsay)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테일러(Taylor)라는 성을 가진 부모님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들은 여러 자식을 두었고 풍족한 형편 덕에 괜찮은 교육을 자식들에게 선사한다. 푸른 눈을 가진 펄이 어렸을 적, 이들은 토론토로 이사했고 16살 되던 해에 그녀는 기숙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이때부터 펄의 인생은 틀어진다. 그녀가 윌리엄 하트(William Hart)*라는 허랑방탕한 남성과 눈이 맞아 도피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도망 온 곳에서 펄은 윌리엄의 진면목을 맞닥뜨린다. 그는 연애 시절 낭만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폭력적이며 술을 좋아하는 도박사로 변신했다. 남편의 방탕한 모습에 충격을 받은 펄은 집으로 돌아간다. 그럴 때면 윌리엄은 다시금 사랑스러운 남편이 되었고, 이들은 파탄과 재결합을 반복한다. 그동안 낳은 아들은 펄의 엄마에게 맡겨졌다. 

시카고 만국 박람회 in 1893
인생을 바꾼 시카고 만국 박람회와 완전한 이별

한편 이 밀당 커플도 일을 시작한다. 시카고 만국 박람회에서의 호객행위는 그중 하나였다. 이곳에서 펄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쇼와 강연이 있었다. 하나는 여성 명사수 애니 오클리(Annie Oakley)가 주요 멤버로 있는 버펄로 빌의 서부극(Buffalo Bill's Wild West Show). 남자들보다도 더 뛰어난 사격술로 다양한 묘기를 펼쳤던 애니 오클리는 남편에게 시달리던 펄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서부극 속 열정과 자유가 흘러넘치는 카우보이들의 삶은 펄의 인생에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또한, 박람회 기간 동안 펄은 수잔 앤서니(Susan B. Anthony)와 같은 페미니스트들의 강연을 들었던 것으로도 추측된다. 얽매이는 삶이 아닌 자유를 갈망하게 된 펄이 박람회가 끝나면서 남편을 떠난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혼자가 된 펄은 궁핍한 생활 속에서 식당 일을 하고, 남이 맡긴 빨래를 했다. 척박한 생활이었지만 착실한 펄이었기에 수중에 돈이 어느 정도 모여들었다. 남편 윌리엄이 연락을 재개한 것도 이맘때쯤이었다. 그는 펄에게 다시 돌아와 달라 간청했고, 펄은 마지못해 받아들인다. 윌리엄은 바텐더와 호텔 매니저로 일했고, 3년 동안 이들은 비교적 평안한 생활과 딸을 얻었다. 하지만 남편은 펄이 가져온 돈을 도박에 탕진하면서 또다시 본색을 드러낸다. 펄을 두들겨 때렸고, 그녀 때문에 인생이 힘들다고 개탄했다. 펄 때문에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다고 소리쳤던 그는 스페인군의 손에 죽겠다며 쿠바에서 벌어지고 있는 스페인 전쟁에 참전했다. 끈질겼던 부부의 연은 이렇게 끊겼다.

남편의 폭력적인 행위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던 펄
펄, 강도가 되다!

이별은 서로에게 익숙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녀로 인해 죽고 싶은 심정이라는 말은 또 다른 충격으로 펄에게 다가왔다. 이 상황을 훌훌 털어버리고자 그녀는 남편과 이별했었던 때의 삶으로 되돌아간다. 광산에서 요리 일을 시작한 펄은 수중에 돈이 없었기에 강가의 텐트에서 생활해야만 했다. 이 와중에 그녀는 새로운 남자친구인 조 부트(Joe Boot)를 사귄다. 검은 머리에 콧수염이 도드라진 훈훈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머물고 있던 광산은 노다지가 아닌 쭉정이였다. 사실이 밝혀지자 사람들은 흩어졌고, 펄도 직장을 잃었다.


 그러다 형제로부터 어머니가 위급하며 돈이 필요하다는 편지 한 통을 받는다. 비록 좋은 딸의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어머니가 펄의 아들을 도맡아 줄 정도로 친한 모녀지간이었다. 펄과 조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돈을 전부 보냈다. 그러나 얼마 후에 다시금 돈을 요청하는 편지를 받았고, 그들은 딜레마에 빠진다. 돈은 없었고, 어머니는 아팠다. 그러자 조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애리조나에서 오는 역마차를 털자는 것이었다.


마땅한 수가 없었던 펄은 마지못해 동의했다. 대망의 1899년 5월 30일, 이들은 작전을 개시한다. 펄은 머리를 싹둑 자르고, 남자들이 입는 회색 플란넬 셔츠와 청바지 그리고 부츠로 남장을 한다. 나름의 변장이었다. 그리고 펄과 조는 각자 권총으로 무장함으로써 노상강도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 마침 당시 역마차에 대한 피습은 소강상태였다. 19세기 중후반부터 보급되기 시작한 열차는 대표적인 수송수단이던 역마차의 힘을 빼놓았던 것이다. 이에 이를 보호하는 샷건 수도 줄어드는 추세였다. 호기였다. 둘은 역마차가 드나드는 길에 매복했고, 곧 한 대가 다가오자 길을 막아섰다. 재빨리 운전사를 겨냥한 이들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그가 소지한 총을 빼앗았다. 그리고 3명의 승객을 위협하며 400달러와 금시계를 갈취했다. 한창 너그러울 초범들이었기에 승객들에게 1달러씩 나눔을 행사하기도 했다. 탈탈 털은 후에는 멈춰 선 역마차의 여정을 이어가게 해 주었다.


남장을 한 펄 하트. 계획은 좋았으나 범행 이후는 나몰라라 했던 초보 강도
초보 강도들의 최후이자 시작

역마차를 보내고 펄과 조는 말을 타고 언덕 너머로 도망쳤다. 그러나 현금을 얻은 기쁨은 잠시였다. 그들의 범죄계획은 창창했으나 도피계획은 막연했던 것. 평생 도피나 유랑생활을 겪어본 적이 없던 이들은 그새 길을 잃고, 범죄현장 근처를 배회할 수밖에 없었다. 이 생활은 며칠 동안 반복됐다. 지친 이들은 어느 날 모닥불을 켜놓은 채 잠을 자다가 민병대에 붙잡힌다. 곱게 보내주었던 역마차는 당연히 그들을 신고했던 것이다. 


붙잡힌 펄과 조는 범죄사실을 순순히 인정했다. 펄은 피 없는 범죄행위의 결말이라며 자신의 유죄를 담담히 받아들였다. 반면 대중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여태껏 역마차를 기습하는 범죄는 잦았지만 여성이 그것에 참여하는 일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언론에 대서특필된 펄은 자기 자신이 유명해짐을 체감할 정도였다. 어머니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총을 든 효녀로, 목숨을 건 진정한 서부인으로 사람들은 그녀를 치켜세웠다. 여성유권론자도 남자들이 할 법한 일을 마땅히 해낸 펄을 지지했고, 그녀를 위해 감옥에 로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펄이 수감됐던 애리조나의 감옥

하룻밤 만에 유명인사가 된 펄은 유명 매거진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이 인터뷰하면서 그 정점을 찍는다. 그러나 유명세를 이용할 틈도 없었던 펄은 그녀에게 반한 사람과 탈출한다. 하지만 이미 코스모폴리탄으로 인해 전국에 얼굴이 알려져 있던 상황. 뉴 멕시코(New Mexico)에서 그녀를 알아본 탐정으로 인해 그녀는 다시 감옥행이 결정된다. 

유일무이했던 여성 역마차 강도 펄의 수감생활
I shall not consent to be tried under a law in which my sex had no voice in making

여론과 배심원들은 펄에게 상당한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여성으로서 성별 따위에 차별받고 싶지 않다고 당차게 선언하자 많은 여성들이 그녀에게 지지를 보냈다. 그녀의 강도행위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배심원들은 무죄를 판결하여 판사가 진노할 정도였다. 그러나 펄이 권총을 훔친 것과 우편물 배달에 방해한 것이 인정돼 유마 감옥에서의 5년형이 선고됐다. 공범인 조는 30년 형을 받았다. 그곳에서 펄은 유일한 여성이었기에 특별한 방이 따로 마련되었다.


수감번호 1599. 펄의 수감생활은 의외로 평탄했다. 직원의 증언에 따르면 그녀는 정숙한 여성이었다. 또 종교에 심취한 그녀는 복음을 수감자들에게 전하다 모범수로서 1902년, 18개월 만에 석방된다. 다른 한편에서는 교도소에서 임신한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하는 지방당국의 입김이 들어가 있다는 설도 있다.


이후 그녀의 행적은 묘연하다. 담배장사를 하다 훔친 자산을 받아준 죄로 벌금을 내기도 했다. 1928년 감옥에 잠시 모습을 드러내고, 1940년 인구조사원이 다른 이름으로 사는 그녀를 발견한 보고가 있기도 했다. 묘비로 사람의 행적과 관계를 알려주는 사이트에서는 그녀가 이후 50년 동안 바이워터라는 사별한 남성과 재혼하여 살다 1955년, 79세의 나이로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묘비를 통해 추측한 설에 따르면, 카우보이의 자유로운 삶을 갈망하던 펄이 조지 캘빈 바이워터(George Calvin Bywater)와 결혼해 그녀의 바람을 이룬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이렇게 19세기 말 유일무이했던 여성 역마차 노상강도는 은둔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자유로운 삶을 갈망하던 펄. 현실을 이기지 못해 범죄를 저질렀지만, 특유의 당참으로 여권주의자를 비롯한 여론의 힘을 입었고, 서부 유일무이한 여성 역마차 강도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각주, *= 윌리엄이 아니라 프랭크(Frank)라는 설도 있다.  **출소 이후의 삶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아 추측이 기반이 되며, 이전에 대해서도 숫자나 이름에 대해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참고,

(인터넷)

Pearl Hart Holds up an Arizona Stagecoach(www.History.com)

Pearl Hart: Lady Bandit of the Old West, Jay Robert Nash(www.annalsofcrime.com)

Pearl "Bandit Queen" Hart(www.findagrave.com)

Pearl Hart: The Bandit Queen of Yuma Territorial Prison https://nationalparktraveling.com/listing/pearl-hart-the-bandit-queen-of-yuma-territorial-prison/


(기사)

Stagecoach Senorita: Pearl Hart is singularly famous for robbing a stagecoach, Jana Bommersbach(True west magazine, May 1, 2005)


(다큐멘터리)

Women of the Wild West- Annie Oakley, Calamity Jane, Pearl Hart(Wild West History)


(도서)

Cowgirls: Stories of Trick Riders, Sharp Shooters, and Untamed Women, Erin H. Turner(Morris Book,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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