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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고 Feb 17. 2021

활자 딜레마

아, 진짜? 근데 그걸 왜 너가 느껴?

우연히 내 브런치를 발견했다는 친구의 말에 부끄러웠다. 일단은 대단한 글을 쓰고자 런칭(!)한 것이 아니고, 그럴 포부를 가질 깜냥(ㅠ)도 안 됐다. 가끔 신내림이라도 받은 양 삘 받은 대로 글자들을 늘여 놓고 싶은 순간들이 있는데, 그럴 때 최적의 플랫폼이 브런치였을 뿐이다. 내 마이너함을 뽐낼 기회랄까. 무언가 진지한 대화를 시도하려는 듯한 UI와 궁서체st의 서체들이 어떤 헛소리든 전문성 있어 보이게 만든다. 그래서 조금 대중적인 콘텐츠를 써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친구의 피드백에 공감하면서도, 여기만큼은 나의 내면 속 믹스견들이 짖어대는 걸 방치해두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안일한 마인드를 재료 삼아 조잡한 글을 쓰는 나에게도 딜레마라는 게 노크할 때가 있다. 가끔씩 그리고 자주 나의 개소리가 얼마나 퍼졌을까 하곤 조회수를 보는데, 뜬금없이 높은 날이 있다. 처음에는 나 같은 활자소수자에게도 이런 날이 있구나 하곤 설렘이 찾아오는데, 곧바로 의심이 간다. 이딴 걸 누가 읽지. 이럴 때 유용하게 구글링이다. 키워드를 조금 맞춰 보면 내 개소리를 엿듣게 만든 용의자를 쉽게 찾을 수 있는데, 대개 유튜브다.


그 유튜브란 것에 말을 간드러지게 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어쩌다 내 브런치에도 들리나 보다. 그래서 내 무미건조한 글씨들에 알록달록 색을 칠해 들려주는데, 나조차도 아니 이게 이렇게 흥미진진했나 싶을 정도다. 호기심을 누르지 못해 조회수를 살피면 1만 회는 기본이요, 30만을 넘은 것도 있다. 연연하지 않으려 해도 내 헛소리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어 기쁜 나에게는 50회도 뿌듯했는데, 수 만회라니. 놀람도 잠시 내가 구체제의 산물은 아닌가 하는 고민이 든다. 이 시대에 활자 노동이라니. 정녕 내 헛소리를 전파하고 싶다면, 활자가 아니라 이미지를 택해야 하는 건 아닌지 하고 말이다.


이런 순간이 오면 초심을 떠올리곤 한다. 오롯이 내 개소리를 담을 공간이 필요했던 그때. 너는 그냥 개소리를 하고 싶었을 뿐이지, 누가 듣기를 바랐던 건 아니라고. 남 눈치를 보는 순간부터 개소리도 우아하게 짖어야 한다고. 그런데도 찝찝함이 가시지는 않는다. 유행이 지나서 아무도 찾지 않는 맛집을 오롯이 고집으로 지키는 주인장이 된 기분이다. 세대가 변하면 백종원의 골목 솔루션이라도 받아야 하는데, 옆 가게에 백종원이 들러도 나의 길을 걷겠다는 똥고집. 앗, 그런데 내가 맛집이었던 적이 있나.


행복회로와 딜레마회로를 착실히 굴리다 보면, 어느새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나올 법한 영웅들 사이에서 고뇌하는 나를 발견한다. 이 일장춘몽을 두고 누군가는 자기객관화가 부족하다는 평을 내리곤 한다. 그래, 요상한 소리나 하면서 글이냐 영상이냐 내가 따지는 것은 과몰입이지. 윈도우 미디어 플레이어를 실행시킬 의지조차 없으면서. 잠깐의 딜레마는 접어둔 채, 영상 플랫폼의 시대가 절정에 이르렀다는 것과 어떤 주제도 매혹적인 게 될 수 있음을 체감한 것으로 하자. 또 삘 받으면 글이나 쓰고 맞춤법 검사나 받고 있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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