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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A Jul 01. 2021

파란 봉지의 밤, 파란 조명 아래 진실 된 이야기.

새 하얀 벽에 물들은 파란 빛깔이 품은 마력.

그때 느낀 감정에 대한 행복. 부정할 수 없는 진실된 우리의 모습이었다. 분명 그날에도 진심을 다해 소중했고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이 더욱 또렷해질 뿐이다. 그날 밤은 파란 조명과 함께했다.



나에게는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는 재주가 있다. 대단하지 않아도 멋있게 포장해 이야기한다던가 혹은 글의 목적이 사건에만 초점을 두지 않으며 기승전결에 확실성도 없을뿐더러 전말, 발단이 이야기가 될 수도 때론 앞뒤, 맥락 없는 이야기가 전달될 수도 있다. 그래도 이 덕분에 이 이야기는 깊은 비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어떤 방식으로 깊어진 시간이었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그 순간 느낄 수 있는 감정에 대한 공유다.



늘 낭만 속에 살아가자는 마음가짐이 있다. 어긋나는 경우는 말해 뭐해 허다하다. 다만 노력하는 데 있어 내가 존재하는 곳에서 느끼는 오감 아니 육감이 온전히 낭만적일 수 있다면 나는 곧장 노력한다. 어느 장소에서든 무드가 나타난다. 온도, 향기, 조명, 음악 그리고 내 앞에 사람까지. 결국 인테리어가 답이다 할 수 있겠지만 아니다. 값비싸고 멋있고 아름다운 것만이 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엉뚱하게 느껴질 수 있는 나의 낭만에 동의하고 공감하며 함께해주는 것. 동감이야말로 아름다운 관계이며 낭만이다.


그곳은 여행의 추억이 담긴 사진 몇 장이 벽에 붙어있는 빳빳한 흰색 페인트가 요령 없이 칠해진 새 하얀 방이었다. 개인적으로 편안하게 쉬고 싶을 땐 노란 조명을 켠다. 하지만 그날 밤에는 다른 감정을 갖고 싶었다. 급하게 얻고 싶은 그 감정을 밤이 깊어진 곳에서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원하는 빛깔의 조명을 만들기 위해 마트에서 장을 보고 구석에 박아둔 얇은 비닐봉지들을 꺼냈다. 초록색, 노란색, 파란색 별 봉지들이 다 있었다. 여러 가지 봉지를 (스탠드)조명 위에 얹어보며 한 가지를 선택했다. 몇몇 친구들과 시애틀에서 에어비앤비로 하루를 묵고 다음 날 아침, 취한 정신이 가시지 않는 날. 그날 아침, 숙소 근처 작은 마켓에서 음료니 뭐니 이것저것 구매하고 어쩌다 보니 그 하얀 방까지 가져오게 된 봉지였다. 그 봉지는 탄탄한 플라스틱 재질의 파아란 봉지였고 덕분에 조명 위에 얹었을 때 방 전체가 파랗게 빛날 수 있었다.


침대 옆에 놓인 파란 조명을 켜고 저 앞에 테이블에 놓여진 하얀 향초에 불을 붙였다. 이윽고 선물 받은 향초의 향기는 온화한 마음 가짐에 더할 나위 없이 도움을 주었다. 그날의 밤은 깊었고 밤하늘에는 듬성이 별이 떠있다. 선선한 공기의 흐름이 느껴졌다. 창밖에 불 꺼진 고요한 동네의 모습이 비쳤다. 일단 하얀 블라인드를 내려 더 파란 방이 되도록 했다. 누군가는 싫어할 수 있는 공간 혹은 분위기라 비난해도 그들을 존중해야 마땅하다. 부드럽고도 거친 느낌이었지만 나와 내 친구에게는 소중했다. 아 참, 빠질 수 없는 게 음악이다. 우리는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듣곤 했다. 힙합, 클래식, 재즈, 테크노, 칠힙합, 시티팝, 인디팝, 종종 80s-20s팝을 듣는 것을 좋아했고 서로에게 DJ가 되며 가장 좋아하는 멋있는 아티스트와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곤 했다. 파란 기억이 가득한 그날 밤은 테크노로 시작해서 잔잔하고 릴렉스한 칠, 인디팝이 우리 시간을 아우렀다. 내가 기억하건데 그날밤 우리에게 술은 존재하지 않았다.


근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오늘과 어제 일어난 재미난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근간 발생하는 다양한 동네, 사회, 정치, 연예, 연애, 세계, 관계, 문화 이슈에 대해 토론하다 보면 각자의 생각을 하나, 둘 꺼내기 시작한다. 진실된 대화의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수없이 대화한 후에야 진심을 꺼낼 수 있게 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여러 번의 여행과 함께 다사다난한 삶을 겪고 이를 공유하고 있는 사생활. 미칠 듯 행복하고 신났던 순간과 들추기도 싫은 최악의 기억 그리고 각자 살아온 길, 깨알 같은 일들과 지금의 내가 될 수 있던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그 밤은 끝이 없다. 우리 대화에는 행복만이 담겨있는 게 아니다. 살면서 느꼈다. 가끔 피하고 싶은 대화가 있다. 누군가와는 이런 이야기 다른 누군가와는 저런 이야기를 한다. 대화의 상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그 불편함 앞에 맞서는 일이 왜 이렇게 두려운지 혹은 입 밖으로 꺼내기가 이렇게 힘이 드는지 온 에너지를 쏟아내도 어려운 일이다. 슈퍼맨도 스파이더맨도 피할 수 없다. 타노스라면 모를까. 띵(반짝). 하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그 불편하고 어려운 이야기까지도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였다. 쉬워서 통한 게 아니라 서로 노력했기 때문에 공유할 수 있었다. 서로 장단점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서운하고 속상한 점, 미웠던 점 혹은 내가 배려 없이 굴었던 무례함 모두 우리의 이야기였다. 이런 대화에 끝에 눈물이 글썽이기도 하고 혹은 생각이 더 많아지기도 하지만 이렇게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너무 감사했고 진심 어렸다. 내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임에도 혹은 너무 가까워서 말하지 못할 이야기들도 있다. 하지만 그 파란 조명 앞에서는 진실되었다. 분위기 탓인지 나의 이야기를 하게 되고 친구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서로 공감하게 된다. 바쁘게 치여 사는 삶은 분명 이런 분위기고 나발이고 존재하기 어렵기 마련이다. 팍팍한 삶에서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게 행복이다. 다만 이런 새벽은 끝이 없어 다음 날 눈에 빨간 핏줄을 만들어 내지만 말이다.


좋은 기억이 예쁘게 매듭을 졌고 그 후로 대화의 티끌이라도 쌓이면 훌훌 털어내기 위해 아이컨택을 하고는 파봉(발음할 때엔 '빠봉'이라 해야 재격이다)을 외치곤 했다. 우리만의 은어가 탄생했다. 이 말은 즉슨, 파란 봉지를 조명 위에 올려라! 나는 할 말이 많아 너와 이야기를 해야겠어. 라는 비밀스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파봉의 탄생 일화는 이렇다.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던 중, 파리에서 구매 한 물품의 봉지를 파봉이라 불렀다. 괜히 시야가 번뜩였고 우리는 우리의 봉지에도 이름을 붙이자며 이야기했다. 시애틀에서 사서 시봉이라 할까 고민하다가 어감이 별로였다. 그래서 파란색이라는 이름을 따다가 '파봉'이라고 불렀다. 시간 많아서 쓸모없는 일이나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맞는 말이다. 밤이 깊어 곧장이라도 해가 떠오를 기세였으나 대화를 나눌 생각에 분위기를 깨지 않고 그 시간을 잘 활용했다. 덕분에 남들은 모르는 우리 둘만의 비밀스런 추억하나가 생긴 것이다. 둘만 아는 비밀과 조크 그리고 둘만의 은어는 그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만든다. 둘만의 은어가 곧 관계의 시작이자 서로에 대한 호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란 봉지 하나로 이렇게 깊은 생각과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시간이 지난 지금 그 봉지는 친구의 손에 있고 나는 꽤 오랜 시간 그 봉지를 볼 수 없었다. 때로는 그 밤이 너무 그립기도 하다. 주어진 상황에서 내 주위에 존재하는 소중한 사람들과 낭만적인 밤을 지새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 혹은 또 다른 분위기에 새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이라도 말이다. 아무래도 근래 정서적이고 감성적인 낭만에 대하여 여유를 느낄 틈이 없었던 것 같아 아쉬움에 끄적여본다. 모두의 낭만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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