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들이 만드는 특별한 아틀란티스 크루즈
작년 6월 시애틀의 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한 가지 신기한 점을 발견했다. 화장실을 가려고 찾았는데 화장실에 남녀 구분이 없는 것이다. 물론 어디서든 종종 남녀공용 화장실을 발견하긴 하지만, 대게 남녀공용이라고 표기되어 있거나 아님 남녀의 사인이 같이 그려져 있는데 시애틀의 그 화장실은 어떤 남녀를 표시하는 그림도 글자도 없었다. 그냥 ‘화장실(TOLEIT)’이었다. 화장실을 들어가도 역시나 남녀 구분 칸이 없다. 그렇다고 칸 밖에 남성용 소변 변기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여성, 남성 외국인들은 아무렇지 않게 화장실에 들어가 줄을 섰고, 남성이 볼일을 보고 나온 칸에 다음 여성이 들어가고, 여성이 볼일을 보고 나온 칸에 남성이 들어가고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게이 친구들이 많은 나 역시 그 환경에서 놀라고, 적응하는데 몇 초가 걸렸다.
스타벅스를 나와 주변의 거리를 걷는데, 상점, 건물 곳곳에 걸린 무지개 깃발이 눈에 띄기 시작했고, 그제야 방금 들린 화장실과 그 모든 것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LGBT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레즈비언(lesbian)과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성적 소수자를 의미한다. 그리고 요즘은 LGBT라는 말 보다도 인터 섹스(Intersex), 무성애자(Asexual), 자신의 성 정체성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Questioner)까지 성소수자 전체를 지칭하는 포괄적인 단어인 퀴어(Queer)를 더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LGBT, 퀴어. 이와 같은 성소수자를 표현하는 단어들이 생겨나고, 그리고 성소수자라는 단어 안에서도 성역할에 따라, 성격에 따라 이를 구분하는 단어들이 생겨나고, 규정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 미주, 유럽에 비교하면 아직 한국에서는 성소수자들의 목소리가 크지는 않지만, 여러 관련 활동들을 통해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크루즈 세상에서는 어떨까?
놀랍게도 크루즈 세상에서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는 아주 높다.
럭셔리 선사부터 대중 선사들까지 아마 대부분의 크루즈 선사에는 게이, 레즈비언 여행자들을 위한 상품들을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혼자 여행을 온 LGBT 여행자들과의 1대 1 만남부터 LGBT를 위한 칵테일파티, 콘서트, 그룹 데이트 같은 대규모 이벤트까지 크루즈 안에서의 성소수자들을 위한 활동들은 다양하다. 게다가 크루즈 선사 중에서 럭셔리 라인에 해당하는 셀러브리티 크루즈(Celebrity Cruise Line)는 2017년 4월 마이애미 비치 게이 프라이드 페스티벌(the 2017 Miami Beach Gay Pride festival)의 스폰서로서 활동을 하기도 했을 정도로 LGBT커뮤니티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성소수자들을 지지하며 다양한 활동을 기획한다.
크루즈 선사들의 이러한 적극적인 지지활동으로 인해 성소수자들은 여러 여행 중에서도 특히 크루즈 여행을 선호하며, 이 때문에 크루즈 여행을 가면 쉽게 성소수자들을 만날 수 있고, 매일 크루즈 안의 일정을 소개하는 크루즈 플래너(크루즈 일정을 안내하는 선상신문) 에도 ‘LGBT만남의 시간(LGBT Gathering’과 같은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크루즈 여행을 온 소수의 성소수자들을 위한 데일리 프로그램도 있지만, 일 년에 몇 번 전 크루즈 일정, 전체 프로그램을 성소수자들을 위해 야심 차게 준비하기도 한다. 바로 성소수자 차터(Queer Charter) 크루즈, 즉 성수자들만 승선해서 이벤트를 열고 즐기는 전세선이다. LGBT 크루즈 또는 퀴어 크루즈라 부르는 것이 맞지만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게이 크루즈라고 부른다.
셀러브리티(Celebrity), 홀랜드 아메리카(Holland America), 로열캐리비안(Royal Caribbean), 오세아니아(Oceania) , 아자마라(Azamara)와 같은 굵직굵직한 크루즈 선사에서는 퀴어 크루즈를 운영하고 있고, 말 그대로 크루즈선 전체를 빌려서 퀴어 커뮤니티만을 위해 운영하기 때문에 크루즈 노선, 크루즈 안의 프로그램을 맞춤형으로 기획할 수 있게끔 적극 협조한다. 퀴어 크루즈는 이미 퀴어 커뮤니티에서 너무나 잘 알려진 크루즈이다. 그리고 주로 게이 차터를 운영하는 회사, 아틀란티스 이벤트 (Atlantis Events)와 레즈비언 차터를 운영하는 회사, 올리비아(Olivia) 그리고 LGBT리버크루즈 차터로 유명한 Brand G vacation은 크루즈 세상, 퀴어 세상에서는 이미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회사들이다.
아틀란티스 이벤트는 2018년, 2019년에 이어 2020년에도 세계 최대 선박인 오아시스 클래스를 차터 하여 5500명의 LGBT승객과 함께 세인트 마틴(St. Maarten), 산후안(San Juan), 로열 캐리비안의 사유 섬인 라바디(Labadee)를 항해하는 7박 8일 크루즈를 즐길 예정이다. 그리고 7박 8일 크루즈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3월 1일 출항하는 셀러브리티 크루즈의 셀러브리티 섬밋(Celebrity Summit)을 차터 하여 7박 8일의 크루즈 일정을 운항하며 유명 DJ와 특별 게스트를 초대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바다에서는 아틀란티스 이벤트와 올리비아가 퀴어 이벤트를 장악하고 있다면 강에서 바로 브랜드 지 베케이션 (Brand g Vacation)이 있다. 그리고 2019년 9월 말 인도 갠지스 리버크루즈 차터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또한 앞서 언급한 이 세 이벤트 커뮤니티 말고도 바카야 (VACAYA), RSVP vacation 등 세계 곳곳 크고 작은 퀴어 이벤트 커뮤니티들이 있다.
이미 크루즈 세상에서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운영했던 퀴어 크루즈이고 더 적극적으로 퀴어 커뮤니티를 지지하고 있지만 여전히 다수에게는 생소한 크루즈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퀴어 커뮤니티의 목소리는 과거에 비해 점점 커지고, 그들이 이 설 자리도 많아지도 있다는 변화를 본다면 미래엔 그들을 나누고 지칭하는 LGBT라는 분류도 사라지고 “시간이 더 흘러 굳이 그들을 따로 부를 명칭조차 필요하지 않을 세상이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럼 그땐, "LGBT크루즈도 사라지게 되는 걸까?”
그때의 크루즈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지 궁금해진다.
Written by K
@bakkum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