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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컴퍼스 Apr 01. 2020

#15. 일 년에 몇 번 없는 크루즈 노선, 리포지셔닝

일생에 한 번은 리포지셔닝 크루즈

작년 4월 18일 로열캐리비안 인터내셔널 크루즈 회사의 새 크루즈선인 스펙트럼호(Spectrum of the seas)의 첫 항차이자, 바르셀로나에서 출발해 로마, 그리스, 수에즈 운하, 요르단을 거쳐 두바이에 도착하는 리포지셔닝 크루즈를 출장차 다녀왔다. 


수에즈 운하를 지날 때 브릿지에서.


리포지셔닝 크루즈?


크루즈를 몇 번 타본 적이 있다는 사람들도 리포지셔닝 크루즈가 생소하기도 하고 리포지셔닝 크루즈가 무엇인지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어 이번 글의 주제를 리포지셔닝 크루즈로 정했다.  


리포지셔닝 크루즈(Repositioning cruise)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다른 장소로 옮기는 크루즈, 위치를 바꾸는 크루즈로 해석된다. 크루즈 상품중에서 리포지셔닝 크루즈는 바로 승선지와 하선지가 다른 크루즈 노선을 말한다. 승선지와 하선지가 다른 노선은 주로 페리에서 볼 수 있는 노선으로 크루즈 여행 노선에서는 자주 보기 힘든 노선이다. 대부분의 크루즈 노선은 승선지와 하선지가 같기 때문이다. 승선지와 하선지가 다르면 승객들은 비행기 티켓 역시 출발지와 도착지가 다른 항공편을 구매해야 하며, 크루즈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도 매번 반복되는 노선이 아니라 새로운 항구, 또 항구에 따라 다른 출입국 절차, 규정들 때문에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노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크루즈 선사 별로 리포지셔닝 크루즈는 꼭 있기 마련이다. 여기엔 크게 2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크루즈는 운항하는 국가, 지역의 날씨에 따라 시즌별로 움직이며 운항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크루즈가 여름에는 유럽을 운항하고, 추운 겨울이 되면 따뜻한 곳인 캐리비안으로 이동하거나, 여름 시즌 알래스카를 운항하는 크루즈가 겨울이 되면 호주나 싱가포르로 이동한다고 이해하면 쉽다. 그래서 8월 스페인에서 탔던 한 크루즈선이 있는데 그때 그 배에 대한 기억이 좋아서 훗날 또 타고 싶어 12월의 노선을 조회해보면 그 크루즈는 마이애미에서 카리브해 노선을 운항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게다가 날씨는 하늘의 결정권이다 보니 대부분의 선사들의 노선 변경 패턴과 리포지셔닝 시기가 비슷하다. 또한 리포지셔닝 크루즈는 대서양 횡단 크루즈 (트랜스아틀랜틱 크루즈:Transatlantic cruise) 그리고 태평양 횡단 크루즈 (트랜스퍼시픽 크루즈:Transpacific cruise), 수에즈 운하 트랜싯 크루즈 (Suez canal transit cruise)라며 구체적으로 어디를 지나치는 크루즈인지 구체적인 크루즈 노선명으로 세분화되기도 하는데 리포지셔닝은 이들을 통틀어 부르는 크루즈 노선을 일컫는다. 



여기서 잠깐?


종종 '크루즈 여행을 언제 가면 좋을 까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리포지셔닝 크루즈가 존재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크루즈 여행은 날씨에 따라 노선이 결정되다 보니 크루즈가 운항하여 기항하는 국가는 주로 성수기 시즌이며, 여행하기에 좋은 날씨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즉, 관심 있는 선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자신이 여행을 갈 수 있는 시기를 선택하면 그 시기에 운항하는 크루즈 노선들이 쭉 펼쳐지는데 그 노선들 중에 아무것 하나 선택해도 가장 좋을 시즌에 크루즈 노선을 배정하다 보니, 가는 나라의 날씨 걱정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두 번째, 크루즈 산업이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즉 매년 새 크루즈선들이 건조되고 세상에 태어난다는 말이다. 작년 2019년 한 해 동안만 해도 약 24척의 크루즈 선이 세상에 태어났다. 또한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의 크루즈 조선소에는 이미 앞으로 몇십 년 간의 크루즈 건조 계획이 설계되어 있는 것을 보아, 크루즈 세상은 더 커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리포지셔닝 크루즈와 새 크루즈선의 건조가 무슨 관계가 있냐? 왜냐면 새로 건조된 크루즈선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조선소:Ship yard)을 떠나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며 살 곳(모항: Home port)으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출장차 승선했던 스펙트럼호는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중국 상하이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터를 잡아야 했던 크루즈선이다. 그래서 스펙트럼호는 독일에서 출발해 약 46일간의 항해 후 상하이로 도착해야 했고, 이 기간에 크루즈를 타면 승, 하선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로열캐리비안 인터내셔널 웹사이트 리포지셔닝 노선 소개


그렇다면 리포지셔닝 크루즈에는 어떤 매력적인 노선이 있을까?


        알래스카 <-> 캐리비안/남태평양, 아시아      


더운 여름 동안 알래스카를 운항하던 크루즈가 가을이 되면 파나마 운하를 지나 캐리비안 바다로 이동하거나 하와이, 오스트리아, 아시아로 겨울 시즌에 이동하는 크루즈이다.


        유럽 <->캐리비안 /남미      


북유럽에서 운항하던 크루즈가 지중해 바다로 이동하여 대서양을 건너 플로리다 혹은 뉴욕으로 가는 대서양 횡단 크루즈가 있다. 플로리다에 도착한 크루즈는 카리브해를 주로 운항하며, 푸에르토리코, 쿠바, 멕시코, 바하마의 섬들을 운항하게 된다. 그리고 봄에 남미에서 출발하는 크루즈가 플로리다로 이동하거나, 혹은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건너가 발틱해 또는 지중해 크루즈로 운항한다.


        영국/지중해 <-> 아프리카      


또 하나 매력적인 크루즈가 바로 아프리카의 동쪽 해변 주변으로 운항하는 아프리카 크루즈이다. 가을 시즌에 영국(주로 사우스햄튼)에서 출발하여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 혹은 케나 남부에 있는 섬 몸바사로 이동하며 봄이 되면 케이프타운에서 영국 혹은 지중해로 돌아오는 노선이 있다. 


리포지셔닝 크루즈로 지났던 수에즈 운하


리포지셔닝 크루즈가 노선의 유니크함도 있지만, 일반 크루즈 노선과 다른 몇 가지 특징들도 있다. 가장 큰 특징은 크루즈 기간이 길다는 것입니다. 리포지셔닝의 크루즈는 아무래도 대서양, 태평양을 횡단해야 하고, 알래스카에서 파나마 운하를 지나 캐리비안 바다로 가야 하는 거리가 길다 보니 리포지셔닝 크루즈는 대체로 12-20일 정도로 크루징 기간이 길기 마련이다. 그리고 동시에 시데이(Sea day:항해일)가 많다. 하지만 시데이 동안 충분히 크루즈 내의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고, 휴양지에서 편안히 쉬고, 독서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에 이를 오히려 좋아하는 승객들도 많은 편이다. 그리고 리포지셔닝 크루즈는 일반 크루즈 노선 크루즈와 비교했을 때 가격이 저렴한 편이며 풀북 킹이 아닌 가능성이 높아 좀 더 여유롭게 배안의 시설을 이용하고 번잡함이 덜하다는 특징도 있다.  


스펙트럼호 위에서 약 5일간의 시데이 동안 빠짐없이 오픈덱에 나와 여유를 즐기던 승객들.


리포지셔닝 크루즈가 아무리 장점을 갖고 있고, 항로가 매력적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분들이 즐길 수 있는 크루즈이긴 하다. 12-20일이라는 긴 크루징 기간 외에도 승선 전 미리 비행기를 타고 승선지에 도착하고, 하선 후 다시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는 시간만 해도 최소 5일 정도는 필요하니 말이다. 이 기간들만 다 합치면 20일을 훌쩍 넘고 못해도 한 달 정도의 휴가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리포지셔닝 크루즈에 승선하는 승객들의 연령대는 일반 크루즈 노선에 비해 높은 편이다. 퇴직 후 시간 여유가 있는 승객들, 그리고 크루즈 여행 마니아 고객층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휴가가 최소 한 달이야~”라고 말하는 젊은 유럽 커플들도 종종 볼 수 있는데 (우린 언제쯤 한 달을 마음 편하게 쉬어보는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 그럴 때마다 그들이 너무나도 부러울 따름이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말고 언젠가 타보고 싶은 크루즈로 일 년에 몇 번 없는 크루즈 노선, 리포지셔닝 크루즈를 여행 목록 리스트에 적어보며 꼭 한 번은 타볼 수 있게 되길 바란다. 


Written by Kim @bakkum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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