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분만으로 아기를 만나기까지, 그 생생한 기록
오래 기억하기 위해 상세히 기록하여 글이 상당히 깁니다.
개인적 경험으로 모든 산모에게 적용되지 않을 수 있음.
의료인이 아니므로 내용에 의료적 견해가 부족함.
의료적 판단은 본인의 주치의와 상의하시길 바랍니다.
6시 20분까지 병원에 도착해야 해서, 병원까지 가는데 20분이 채 걸리지 않으니 우리는 한 시간 전에 일어나기로 했다. 나는 일어나기로 한 시간보다 더 일찍 잠에서 깨, 씻고 이것저것 정리하다 보니 남편이 방에서 나왔다. 우리 둘 다 무언가 전쟁터로 떠나는 사람들처럼 결연한 의지를 다지며 집을 나섰다. 나는 자정부터 물을 포함한 금식이어서 일어나서 물로 가글만 했고, 남편은 먹을 것을 좀 챙겼다. 나는 분만 과정 동안 수액을 맞아 배고픔을 모르겠지만, 남편은 오랜 시간 동안 긴장하고 옆에서 같이 고생할 거라 과일과 간식류를 좀 챙겨두었다.
6시 20분, 병원에 도착해 입원수속을 했다. 1인실을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남은 병실은 특실과 2인실 뿐이었다. 일단은 2인실로 신청해두고 1인실 자리가 생기면 바꿔달라고 요청한 후 분만실로 들어갔다. 야간응급으로 2번이나 왔었던 분만실인데, 오늘은 좀 느낌이 다르다. 이제 여기를 나갈 땐 이 불룩한 배도 조금 들어가고, 써니와 떨어져 있겠지. 아, 물론 응급 수술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우리 병원은 가족분만실을 운영해서, 남편과 함께 진통, 분만, 회복의 전 과정을 함께할 수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다른 가족 구성원도 함께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보호자 1인 외 출입이 불가하다. 남편과 함께 출산이 이루어질 분만실에 입성해 짐을 풀고, 나는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바로 태동검사와 내진을 했다. 현재 자궁경부는 3cm 열렸는데, 3일 전 외래 때보다 1cm 더 열린 상태였다. 수액을 맞을 관을 꼽고 조금 기다리니 관장을 하러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산모가 분만하면서 곤욕스러워한다는 3가지-내진, 제모, 관장. 개인적인 나의 경험으로는, 내진은 사람바이사람인 것 같다. 나는 그렇게 고통스럽진 않았다. 그냥 좀 불편하다 정도? 그런데 내진을 고통스러워하는 산모가 훨씬 많은 것 같긴 하다. 그리고 제모는 사전에 미리 브라질리언 왁싱을 하고 가는 경우 따로 병원에서 제모하지 않는다.
나는 브라질리언 왁싱 예찬자로서... 임신기간 중에는 왁싱을 하지 않았지만 분만을 위해 지난주 금요일에 임신부 왁싱을 하고 왔다. 개인적 의견으로는 왁싱을 하는 것이 출산 이후 오로가 나올 때 관리도 훨씬 쉽고 덜 찝찝하다고 생각한다. 왁싱 추천!! 그리고 마지막, 관장... 이것이 문제다...
옆으로 누우면 간호사 선생님이 항문으로 무언가 액체를 주입한다. 나는 임신기간 동안 배변활동에 문제가 있어왔고, 최근 며칠은 유독 대변을 제대로 보지 못했었다. 그래서인지 약이 들어가는 그 순간부터 내 뱃속은 무언가 심상치 않았다... 간호사 선생님은 5분 동안 참으라고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 5분까지 못 참으니 걱정하지 말고 그냥 최대한 참는다 생각하고 참아보라고 했다.
그...그게 되나요...?
나는 간호사 선생님의 처치가 끝나자마자 바로 화장실로 향했고 변기에 앉아 채 1분도 참지 못한 채... (^_^;;)
간호사 선생님이 촉진제를 시작하기 위해 들어오셨지만 아직 화장실에 뛰쳐가고 싶을 것 같은 느낌이 남아있어서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했다. 간호사 선생님은 자궁수축되는 느낌과 헷갈릴 수 있다고 일단 조금 더 기다려주겠다고 하셨다. 화장실을 3번이나 갔다 오고 나서야 나의 격정적인 관장은 끝이 났다.
드디어 내 대장이 조금 진정되고, 8시 30분이 되어서야 촉진제를 맞기 시작했다. 촉진제가 들어가면 수축강도가 세지면서 지금까지 느꼈던 진통과는 차원이 다른 진통이 찾아올 거라고 했다. 나의 경우, 이미 자궁 경부가 어느 정도 열려있는 상태라, 진행이 빠를 수 있다며 생리통보다 센 진통과 수축이 규칙적으로 1시간 지속되는 것 같으면 의료진을 부르라고 했다. 진통이 올 때 옆으로 누우면 견디기 조금 수월할 것이라고 했고,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상관없이 돌아누우라고 했다.
촉진제가 들어가고 얼마 뒤 주치의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내진을 했고 현재 자궁경부가 3cm 열린 상태이나 열린 상태에 비해 자궁 경부가 많이 얇아지지는 않았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진통이 강해지면 자궁 상태에 따라 무통주사를 놔줄 테니 못 참을 진통이 오면 의료진에게 알려달라고 했다.
촉진제가 들어간 지 10분이 지나지 않아 심상치 않은 수축이 느껴졌다. 이제 진진통의 시작인 것인가..!
9시 22분,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촉진제 강도를 높였다. 점점 규칙적으로 참을 수 없는 진통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진진통은 허리부터 다리까지 오징어처럼 오그라든다더니, 진통이 지속되는 1분 동안 나는 사전에 열심히 공부한 호흡법을 따라 하며 견뎠다. 이 시기에는 오히려 근육이 이완되어야 하는 시기라 힘을 빡 주면 안 되고 호흡을 하면서 이완을 시켜야 한다. 근데 그게 말처럼 쉬운가. 진통이 찾아오면 나도 모르게 불 위의 오징어처럼 잔뜩 오그라들면서 힘이 들어간다. 그래도 이 진통은 1분이면 지나간다. 딱 1분만 참으면 끝난다는 것을 알기에 호흡 6번만 하자! 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9시 51분, 이제 진짜 못 견딜 진통이 찾아왔다. 남편과 딱 10시까지만 버텨보자, 결심하고 남편은 내 손을 꼭 붙잡고 호흡을 도와줬다.
남편이 의료진을 불렀다. 10시 13분, 수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진행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내진을 했다. 내진을 하는 도중 수축이 찾아왔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데, 힘주지 말라고 하셨다. 어떻게 그게 되죠..? 진통을 견디기 위해 호흡을 해보려던 중, 갑자기 뽁! 하는 소리와 함께 양수가 터졌다. 따뜻한 물이 줄줄...
"진행이 빠르네요, 무통주사 준비할게요~"
양수가 터진 이후, 나는 왼쪽으로 돌아 누워서 항생제 반응 주사를 맞았다. 항생제 반응 주사는 팔뚝이 불타는 느낌(!!!)이었는데, 진통 중에 맞아서 그런지 참을만했다. (진통이 더 아파...) 양막이 파열되어 수축이 올 때마다 양수가 줄줄줄 새는 것이 느껴졌다. 제발 무통... 무통을 주세요...!!!!!!!
10시 25분, 마취과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무통주사에 대한 설명을 해주시고, 보호자인 남편에게도 무언가 설명을 하고 서명을 받는 것 같았다. 나는 진통이 주기적으로 찾아와 그걸 견디느라 뭐가 어떻게 진행되는 지도 모르겠고 마취과 선생님이 뭐라고 설명을 해주셨는데, 네~~ 대답만 잘하고 기억은 한 개도 안 난다. 뭔가 부작용에 대해 설명해주신 것 같은데... 빨리 무통!!!!!!!
진통이 올 때 베드를 부여잡고 끄응하면서 진통을 견디는데 수간호사 선생님이 나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워주면서 "진통 올 때 이러면 안 돼, 자 힘 빼고 호흡법 알죠? 숨 쉬어요~ 잘 안 되는 거 아는데, 그래도 해야 해요. 다들 잘 못해, 그래도 해야 하니까 자 호흡해 봐요~" 정신을 다시 차리고 호흡을 했다.
무통주사를 맞기 위해선 새우등을 하고 무릎을 거의 가슴에 닿도록 최대한 등을 말아야 한다. 배가 나와서 하기 어려운 자세이지만 최대한 등을 말아야 카테터를 삽입할 수 있다. 국소마취를 먼저 한 후 카테터를 삽입한다. 이제 움직이면 안 된다고 말할 땐 절대 움직이면 안 된다고 했는데, 계속 주기적으로 진통이 오고 있어서 카테터를 삽입할 때 진통이 오면 어떡하지 마음속으로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옵니다..!!
"으.. 진통이 와요..." 그 이후엔 어떻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언제 삽입했더라.. 난 안 움직이기를 잘했나... 모르겠다. 어쨌든 내 척추에는 카테터가 삽입되었고 마취제가 들어가는 느낌이 났다. 뭔가 시원한 게 스윽 등을 타고 가는 느낌이랄까...
10시 40분, 남편이 다시 분만실로 들어오고 나에겐 무통 천국이 찾아왔다. 약간 피곤하고 졸린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잠들지는 않았다. 지금 쉬어야 이 마라톤 레이스 같은 분만 과정을 끝까지 잘 버틸 수 있다는 마음으로 최대한 체력을 비축했다.
11시 10분,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산소마스크를 잠시 떼고 촉진제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하셨다. 아니, 촉진제를 끈 상태였다고요? 무통주사를 놓을 때는 잠시 촉진제를 중단하나 보다. 진행 속도가 빠르니 제일 저용량으로 촉진제를 놓겠다고 하셨고, 잠시 우리의 쉬는 시간이 찾아왔다.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친구들과 무통 천국에 대해 카톡으로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이 잘 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수축이 올 때마다 아프진 않았지만 수축이 온다는 느낌은 느껴졌고, 그때마다 양수가 쪼로록 샜다.
다시 수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내진을 했다. 벌써 자궁경부는 6cm 열렸다. 제일 저용량이었는데도 이 정도면 초산인 것 치고 상당히 빠른 진행속도라고 했다. 산소마스크를 다시 차고, 왼쪽으로 돌아누워서 호흡을 열심히 하라고 했다. 그리고 무통을 달고 있더라도 못 참을 것 같은 고통이 다시 올 텐데, 그러면 의료진에게 다시 말해달라고 했다. 저, 지금 너무 평온한데요...
그런데 왼쪽으로 돌아 누워있어서 인지 다리가 좀 불편했다. 특히 위에 놓여진 오른쪽 다리, 특히 골반이 좀 뻐근했는데, 오랫동안 같은 자세로 있어서인가 싶어서 반대쪽으로 돌아누웠다. 그랬더니 곧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왼쪽으로 누우라고 했다. 아... 네...
왼쪽으로 누워있는데 자꾸 오른쪽 골반이 아팠다. 똑바로 라도 누우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잠깐 자세를 바꿨는데 배에 연결된 태아감시장치에서 삑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얼마뒤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아기가 힘들어하니 왼쪽으로 누우라고 했다. 그리고 산소를 잘 마시며 호흡 열심히 하세요, 하고는 나가셨다. 아, 골반이 너무 아픈데...
결국 나는 왼쪽으로 누운 상태에서 무릎 사이에 뭘 껴보기도 하고, 남편에게 마사지를 부탁하기도 하고 여기저기 주무르고 지압해보고 했으나, 어느 순간 이건 단순한 뻐근함? 근육통? 불편함?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른쪽 다리를 어떻게 해도 너무 아팠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주기적으로 아픈 것 같았다.
결국 12시 44분, 호출을 했다. '오른쪽 골반이 너무 아파요.' 근데 아까 오시던 수간호사 선생님도 안 오시고, 아무도 날 찾아오지 않았다. 결국 남편이 나가서 다시 의료진을 불렀는데, 10분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곧 점심시간이라서 그런가..? (ㅠㅠ) 점점 골반이 으스러질 것 같다 싶을 때 수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제가 점점 못 참을 것 같은 진통이 올 거라고 했죠?",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았다. 나는 진통이 골반으로 온 것이다. 이때부터 촉진제를 다시 껐다.
1시 4분, 주치의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내진을 했다. 7cm 열린 상태, 그러나 아기가 빨리 나오려고 해서 자궁 경부가 열린 상태에 비해 아기 머리가 내려와 있다고 하셨다. 수축이 규칙적으로 느껴졌냐 물으셨지만, 무통 이후 처음엔 느껴졌으나 이내 골반이 아파진 이후로는 이 고통에 집중돼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진통이 한쪽 골반으로 오는 경우도 있냐 물었는데, 아기가 골반쪽에 끼어있을 수도 있고, 산모에 따라 진통이 허리로 오는 사람, 골반, 항문 등등 다양하다고 했다. 통증을 조절해 줄 테니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하시고는 더 센 마취제를 맞았다. 다시 등을 따라 시원한 무언가가 쭈욱 퍼지는 느낌. 약이 들어가고 몇 분 뒤, 1시 20분,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1시 47분, 소변줄을 연결해 소변을 뺐다. 거의 하반신 마취 수준으로 마취제가 들어간 상태라 무언가 꼽는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그런데 자세를 바꾸던 도중 느껴진 것이, 왼쪽 다리에 운동성을 잃은 것 같았다. 아마도 무통주사가 왼쪽에 더 많이 들어가 왼쪽은 통증이 없었고, 이후에 추가 마취제를 넣어서 오른쪽 통증이 잡히니 왼쪽은 운동성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손으로 잡고 있지 않으면 무릎을 세운 다리가 맥없이 떨어질 것 같았다.
옆방에서 힘주기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종종 바깥에 나가있을 일이 많았는데, 지금 분만장엔 나 포함 3명의 산모가 있다고 했다. 그중 내 옆방에 있는 산모가 힘주기를 시작한 듯했다. 간호사 선생님들의 구호가 들려왔다. "하나, 둘, 셋!"
그러나 옆방 산모는 힘주기가 쉽지 않은 듯했다. 여러 번 구호가 들렸지만 고통스러워하는 산모의 목소리가 들렸고, 수 분 진행된 힘주기 이후 잠시 쉬기로 했는지 구호가 멈췄다. 그러다가 다시 힘주는 소리가 들렸고, "너무 아파요" 하는 산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옆에 앉아있던 남편이 울기 시작했다. 평소에 눈물이 별로 없는 사람이 갑자기 울다니. '조금 더 잘해줄걸,' 하면서 울길래 갑자기 나도 눈물이 났다. 임신 기간 동안 남편의 잦은 출장 때문에 거의 주말부부를 하면서 혼자 입덧을 견뎌내고, 외롭게 임신기간을 보냈던 것이 조금 원망스러웠는데, 남편의 저 말 한마디에 원망스러운 맘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따뜻한 말 한마디면 나는 나쁜 맘이 다 녹는다구~ 남편, 앞으로도 예쁜 말만 해줘 :)
옆방 산모는 한동안 조금 더 힘주기를 하다가 마침내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는 옆에서 같이 화이팅을 외치다가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자 함께 축하했다.
2시 45분, 간호과장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내진을 해보시고는 "9cm 열렸는데, 이미 아기 머리가 많이 내려와 있네요."라고 하셨다. 조금 더 내진을 하시다가, "이제 10cm 열렸어요. 힘주기 해볼게요."
네? 갑자기요? 그런데 그 말씀을 하시자마자 아래에 무언가 낀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간호과장 선생님은 지금부터 혼자서 힘주기 연습을 해보는데, 수축이 느껴질 때마다 아래로 밀어내듯이 힘을 줘보라고 하셨다. 연습을 하다가 아기가 내려온 상태를 보고 분만준비를 하신다고.
지금부터 빠르면 1시간 이후 아기를 만날 수 있다고 하셨다. 빨리 이 길고 긴 분만 과정을 끝내기 위해 수축이 찾아올 때마다 남편과 함께 힘주기 연습을 했다. 무통이 워낙 잘 들어서 수축이 제대로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배에 손을 대고 희미하게나마 느껴지는 수축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크런치를 하듯이 상복부부터 쭈욱 쥐어짰다. 남편에게 "하나, 둘, 셋", 10까지 천천히 세어달라고 하고 그것을 한 수축 당 두 번씩 반복했다. 밑에 무언가 끼어있는 듯한 느낌은 계속 지속되었다.
3시 5분, 사전에 미리 신청해둔 회음부 열상방지 주사에 대한 반응 검사를 했다. 오전에 했던 항생제 반응 검사랑 동일한데, 똑같이 아팠다. 과연 회음부 열상방지 주사는 비급여 15만원의 가치를 다 할 것인가..!
그 이후, 간호사 선생님들이 여러 번 드나들면서 나와 아기의 상태를 확인했다. 힘주기를 정말 잘한다면서 금방 낳겠다고 하셨다. 그러다가 곧 분만준비에 들어갔고 수술방에 있을 것 같은 조명이 설치되고, 분만실 베드는 트랜스포머처럼 무언가 변신을 하고 있었다. 그 사이 남편은 파란 수술복을 입으러 나갔고, 그동안 나는 계속 힘주는 연습을 했다. 무통 덕분인지 고통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힘주는데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계속해서 힘줄 때마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잘한다고 칭찬해주셔서 더 힘이 났다. 다리를 잡고, 머리를 든 크런치 자세로 상복부부터 쥐어짜는 느낌!! 그렇게 계속 힘주기를 하다 주치의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분만실에 들어오셔서 주치의 선생님의 첫마디, "산모님 잘하신다~"
그렇게 의료진 선생님들의 칭찬과 응원을 한 몸에(?) 받으며 본격적인 힘주기를 시작했다. 남편도 곧 들어와서 내 머리맡에서 분만 과정을 지켜봤다.
간호사 선생님이 아기 엉덩이 쪽을 푸시하시면서 힘주기를 도와주셨는데, 남편이 들어온 이후 두 번째인가 세 번째 수축이었을까, 남편 기억으로는 아기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푸싱 이후 힘 빼라는 간호사 선생님들의 말에 '하~' 하면서 힘을 빼는데 갑자기 옆에서 남편이 울기 시작했다. 아기가 태어났나 보다! 그리고 이내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오후 3시 49분 여자아이입니다"
눈앞이 뿌예지면서 꿈꾸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써니가 태어났다!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를 들으니 나도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근데 옆에서 남편이 나보다 더 오열을 하기 시작했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아빠가 더 우셔~'라고 농담 섞인 말을 건넸는데도 계속 울었다. 나는 정신없는 사이 남편은 아기 탯줄을 잘랐고, 나가서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그동안 나는 후처치를 받았는데, 전혀 아프지 않았다. 심지어는 왼쪽 다리에 운동성을 잃어 다리가 툭 떨어지기도 했다. 아마 내 앞에 앉아계시는 주치의 선생님을 발로 찬 것(...) 같았는데, 스스로 다시 들 수가 없었다. 후처치를 하는 동안 나는 "현실이 아닌 것 같아요"라고 했다. 진짜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아기를 낳았다니!
후처치가 끝나고, 1시간 반 정도 회복하며 지켜보다가 병실로 이동할 거라고 했다. 남편은 곧 들어왔고, 고생했다고, 정말 잘 해내었다고 말해주었다. 왜 그렇게 울었냐고 놀렸는데, 정말 남편이 그렇게 우는 건 남편을 만난 지 5년이 되어가도록 처음 봤다. 남편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었겠지.
회복 정도는 좋았고, 자궁 수축도 좋고 출혈 특이사항도 없었다. 나는 휠체어를 타고 병실로 옮겨졌는데, 왼쪽 다리 운동성이 돌아오지 않아 베드로 걸어가는 동안 왼쪽 다리가 거의 새끼 고라니였다.
자연분만의 장점, 바로 밥을 먹을 수 있다! 준비되어 있었던 저녁식사를 바로 먹었다. 역시나 메뉴는 미역국. 오늘의 첫 끼니가 이렇게 맛있을 수 없다.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막상 많이 먹지는 못했다.
주치의 선생님이 병실로 오셔서 회복 상태를 확인했다. 많이 부어있으니 아이스팩을 열심히 대고 있고, 무통주사로 인해 움직이지 않는 왼쪽 다리는 늦어도 내일이면 돌아올 것이니 너무 걱정 말라고 하셨다.
마지막까지 내가 자연분만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주치의 선생님의 영향이 크다. 유도분만 시작부터 끝까지 주치의 선생님을 볼 때마다 마음이 놓이고, 선생님의 판단을 전적으로 믿기에 끝까지 버텨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믿고 있는 선생님이 아기까지 받아주셔서 더 좋았다.
분만실 간호사 선생님들, 간호조무사 선생님들, 주치의 선생님, 모두모두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들이 도와주셔서 건강히 출산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병원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분만실 의료진 선생님들은 숨은 영웅들이다.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출산의 전 과정을 함께한 우리 남편, 할 수 있다고 마지막까지 응원해주어 정말 고맙다. 남편이 손 잡아줘서 마지막까지 힘이 되었어! 그리고 우리 써니, 엄마 뱃속에서 나오느라 고생했다! 엄마 고생 많이 안 시키고 순풍 나와줘서 고마워, 이제 엄마와 떨어져서 시작된 너의 우주가 행복으로 가득 차도록 많이 많이 사랑할게! 우리 가족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