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진진통을 기다리며 가진통을 견딘다.
37주, 태동이 갑자기 줄어서 응급으로 병원에 방문했다. 써니는 괜찮았다.
38주, 매일 밤 가진통, 그리고 유도분만 예약, 그러나 어느 날 밤 양수가 터졌다?
외래가 있는 날이다. 지난번 외래 이후, 빠르면 일주일 내에도 진통이 찾아올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주말에 가장 친한 친구들과 계획해둔 마지막 여행을 눈물과 수수료를 머금고 취소했는데, 결국 일주일 동안 진통은 오지 않았다. 그래도 매일 밤마다 가진통이 찾아오고, 그 강도는 조금씩 세졌다.
점점 가진통이 세져서, 처음엔 생리 전 좀 불편한 정도였다가, 생리통처럼 아팠다가, 이건 생리통보다 좀 더 아픈데, 싶은 고통까지 느껴졌다. 아마 여행을 갔더라도 불안한 마음에 가진통 겪는 나를 데리고 남편은 밤에 집으로 돌아갔을 게 뻔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독 밤에 시작되었던 가진통과 수축은 아침에 깨어난 이후에도 조금씩 지속됐고, 불규칙적인 수축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기도 했다. 도대체 언제 나오려는 걸까, 써니의 시계는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 건지 너무 궁금했다.
지난주에 못 만난 주치의 선생님, 오늘도 아기가 잘 크고 있는지 확인했다. 머리 사이즈는 여전히 9.5cm 정도에 머물러있었다. 우리 아기는 머리가 30주에 훌쩍 컸던 아이였나 보다. 아기마다 성장 속도에 차이가 있을 텐데 엄마아빠가 너무 성급히 걱정했던 것 같다. 예상 몸무게는 3.3kg 정도. 주치의 선생님은 이어서 내진을 해보셨고, 이미 1cm 정도 열려있는 자궁경부를 마사지하여 2cm 정도까지 열어두셨다고 하셨다. 내진으로 인해 집에 돌아가 오늘 밤에나 조만간 진통이 올 수도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며칠간 피가 좀 보일 수 있고, 생리 끝날 때쯤처럼 조금 묻어 나오는 정도면 괜찮지만 빨간 피가 생리대를 적실 정도면 병원으로 와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자궁경부가 잘 준비되는 중이고, 아기 크기도 적절하여 39주에 유도분만을 하기로 했다. 40주까지 기다릴 수도 있지만, 아기 머리가 더 크면 자연분만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 나는 굳이 1월생을 고집하지 않았기 때문에, 39주 1일인 12월 26일 월요일에 유도분만을 하기로 했다. 나의 주치의 선생님은 의학적 사유가 특별히 있지 않는 이상 38주 6일 까지는 유도분만이나, 산모의 선택으로 인한 제왕절개를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도 39주 이후로 예약을 잡았다. 남편의 연말 휴가일정도 고려해야 했고, 월요일 오전 정규 시간이 모든 의료진들이 가장 컨디션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사실 마지막까지 선택제왕절개 수술과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자연분만을 잘할 수 있을까 너무 두렵기도 했고, 진통에 대한 두려움, 자연분만 후유증에 대한 공포, 자연분만을 했을 때의 더 늘어나는 변수들... 그래서 주치의 선생님께 "저 자연분만 잘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더니, 주치의 선생님이 너무나도 씩씩하게 "그럼요! 산모님 나이도 젊고, 충분히 하실 수 있어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말을 듣자마자, 왠지 모를 힘이 났다. 담당 선생님을 믿고 한 번 해봐도 좋겠다는 무언가 마음속 용기가 샘솟았다.
38주 외래를 다녀온 이후, 내진 때문인지는 몰라도 계속 생리 마지막 때처럼 갈색 분비물이 묻어져 나왔다. 패드를 대야할 정도로 꽤 많이 묻어 나와서 좀 불편하다, 싶었다. 요즘은 항상 새벽 4시에 잠에서 깬다. 계속 이 시간이면 잠에서 깨서 화장실에 다녀오고, 다시 잠들지 못하면 결국은 거실로 나가 시간을 좀 보내다가 아침 해가 뜨면 다시 잠들곤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4시에 잠에서 깼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일어났는데 뭔가 주르륵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어라? 이게 양수인가? 휴지에는 투명한 액체가 묻어 나왔고 내가 조금 힘을 주는 것 같으면 더 주르륵 나오는 것 같았다. 얼른 남편을 깨워서, 나 양수가 새는 것 같아, 하고 얼른 출산가방을 챙겨 집을 떠났다.
잠들기 전날 밤, 우리는 오랜만에 야식을 먹었다. 그리고 치우기 조금 귀찮아서 다음날 아침에 치우지 뭐~ 하고 그냥 잠들었다. 게다가 나는 매일 밤 언제 진통이 올지 모르니 저녁마다 머리도 감고 목욕재계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날 따라 내일 아침에 감지 뭐~ 하고 그냥 잤다. 하필 이런 날 새벽, 양수가 샌다니, 머피의 법칙도 이럴 수는 없다.
머리를 박박 대충 감고 두피만 말린 다음 병원으로 후다닥 가는 길, 정말 써니가 나오려는 것일까? 병원으로 향하는 내내 무언가 흐르는 느낌은 지속되는 것 같았다. 오늘도 병원 분만장으로 직행했다. 양수가 새는 것 같다고 하자 일단 태동검사를 먼저 하고,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내진을 했다. 피가 계속 섞여 나와 육안으로는 양수가 정말 새고 있는지 확인이 안 된다고 하셨고, 태동검사가 끝난 다음에는 진료실로 이동해 양수가 맞는지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마침 수요일밤~목요일새벽 당직은 나의 주치의 선생님이셨고, 진료실로 들어오시는 주치의 선생님을 보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검사를 하시면서 피가 좀 많이 난다며, 지난 외래 이후 피가 많이 났었냐고 물었다. 갈색 분비물의 형태로 좀 묻어나긴 했지만 빨간 피는 본 적이 없어요,라고 하니 지금은 빨간 피로 출혈량이 꽤 된다고 하셨다. 양수가 새는 게 맞다면 바로 항생제를 맞고 24시간 안에 분만해야 하고, 양수가 아니더라도 오늘이나 빠른 시일 내에 유도분만을 진행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양수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검사는 니트라진 검사(Nitrazine Test)라고 하는데, 질 분비물의 ph를 확인하여 양수인지를 확인한다. 검사 결과는 다행히도 양수는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현재 출혈이 있어서 조금 더 지켜보다가 출혈이 멎지 않으면 오늘 유도분만을 진행하고, 출혈이 멎는다면 내일 유도분만을 진행하기로 했다. 오늘 주치의 선생님이 당직 이후 병원에 안계시기 때문에, 담당 선생님이 돌아오시는 내일 유도분만을 하는 게 나에게는 마음 편한 결정이었다.
분만실 베드에 누워있는 1시간 동안 2명의 아기가 태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마지막 힘주기를 하는 산모의 고통 섞인 목소리, '하나, 둘, 셋!' 하고 힘주기를 도와주는 간호사 선생님들의 목소리, 그리고 이내 태어난 아기가 우렁차게 우는 울음소리.
다행히 나는 출혈이 멈췄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의 다정한 주치의 선생님은 계속되는 분만에도 중간중간 나를 찾아와 주셨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도 찾아오셔서 오늘 돌아가서 진통이 오면 병원으로 꼭 오고, 피가 또 많이 나는 경우에도 꼭 병원으로 바로 오라고 하셨다.
집으로 돌아오니 이미 아침 해가 떠있었고, 남편과 나는 거의 기절하듯이 잠들었는데, 정규시간인 9시가 되니 간호사 선생님과 주치의 선생님이 전화를 해주셨나 보다. 변경된 유도분만 일정에 대해 설명해 주셨는데, 내가 기절잠을 자는 바람에 남편이 대신 전화를 받았다.
갑자기 오늘이 임신 마지막날이 되어버렸다. 후다닥 나가느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집을 다시 정리하고, 출산가방을 한 번 더 확인했다. 그리고 남편과 최후의 만찬을 함께했다. 나 잘할 수 있겠지?
이제 새로운 생명을 맞이할 준비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