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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해 Aug 03. 2024

어떻게 하면 미쳐버릴 수 있나요

나는 충분히 미치지 못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불능에 관한 것이다. 나는 충분히 미치지 못할 것이다.


언제나 과잉을 원했다. 이왕이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이 흘러넘치기를 바랐다. 넘치다 못해 감당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미치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미침보다 선행하는 천재성이든 천재성을 가져올 미침이든 간에 그것이 과도하여 나를 비범함으로 인도해줬으면 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은 개나 줘야 한다. 과잉과 불급은 분명히 질적으로 다르다. 과잉은 정상을 능가하고 초월하기 때문이다. 사유의 과잉, 감각의 과잉, 고통의 과잉만이 가져다주는 힘이 있다. 나는 그렇게 미침으로써 탁월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미침으로써 특별해지고 싶었다.


미치지 못했다는 불만은 착하다는 콤플렉스와 통했다. 착한 아이는 규범에 순응하고 질서정연하고 얌전한 여자애였으므로, 너무 정상인 나머지 착하기까지 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쁘고 미쳐있고 탁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탁월한 재능을 가지지 못했으니, 미치지 못했으니, 일단 나쁘고 봐야 할 것 같았다. 욕설을 사용했고 (어렵지 않았다) 술을 마셨고 (역시 어렵지 않았다) 수업을 빠졌고 (놀랍게도 어려웠다) 타인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는 척했고 (나는 사회불안도가 높다) 호의를 받으면 의심부터 했고 (나는 사람을 쉽게 믿는다), 이 모든 것을 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이것이 가장 어려웠다). 나를 갉아먹는 감정을 방치했고 우울과 불안을 가까이했다. 가끔은 나를 해하는 상상을 했다가 그것을 행하지 못하는 나를 자책했다.


그러나 나는 정말 나쁜 사람이 될 수 없었다. 어떤 것이 나쁜 것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아니다. 방금 이 문장은 거짓이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나쁜 것은 타인을 해하는 것이고 나는 그것을 상상할 수 없다는 점에서 ‘완전히’ 나쁠 수는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무엇이 나쁜 것인지 알았고 나도 모르는 새에 그것을 한다는 점에서 나빴지만, 그것을 주체적으로 상상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완전히 나쁠 수 없었고, 대신 나를 조금씩 나락으로 밀어내는 상상을 한다는 점에서 나쁘다가 만 사람이었다. 실천으로 옮길 정도의 용기는 없었으므로 비겁했다. 결국 나는 그저 위악을 겉치레로 두를 뿐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체 했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었고, 위악이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한다는 사실이 내가 하는 가장 나쁜 일이었다.


미치고 싶다는 바람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일까, 아니면 노력을 통해 미쳐버리는 데 성공한 것일까.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도해 모범생이었는데 많이 달라졌네’라는 말을 들었다. 의사로부터 우울증과 사회불안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것들은 내가 미쳤다는 증표와 같았다. 정신과 약을 먹다니, 떠벌리고 다닌 적은 없지만 나는 내가 드디어 미친년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은밀하게 흡족해 했다. 나쁜년이 되는 데는 실패했지만 미친년이 되는 데는 성공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왕이면 나쁜년보다는 미친년이 되고 싶었기에, 꽤 만족스러웠다.


대학에 오니 정말 미친 사람들이 많았다. 정말 다채롭게 미친 연놈들이 천지에 널려 있었다. 이곳은 이상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들만 모인 것 같은 집단이었다. 이상하다는 것은 타인과 다르다는 것이고, 정상성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탈중심화·탈제도화를 울부짖는 청년들에게 훈장과 같은 것이었다. 이것은 특별하고 싶다는 실존적 고민의 소산일 뿐만 아니라 이 특별함이 특별한 창작 활동으로 이어지는 것에 대한 열망이기도 했다. 자신은 이상하지 않다며 항변하는 이들조차 내심 그 말을 즐겼고, ‘이 새끼 미쳤다’고 놀리는 이들조차 내심 그것을 부러워했다. 의미의 비약을 조금 해보자면 ‘미쳤다’는 정상적이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에너지를 가졌다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특히 창작에 대한 열망이 있는 인문대생 사이에서는 ‘이상하다’, ‘미쳤다’는 칭찬일 따름이었다.


민감한 감수성과 그것이 가져오는 고통을 끌어안은 채 살아가고 있는 미친 이들은 그들만이 아는 언어로 그들만이 아는 삶과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애매하게 미친 나는 그 다채롭게 돌아버린 이들을 선망하고 질투했다. 그들의 대화에 끼고 싶어 초조해했고 그들과 나눴던 대화를 혼자 복기했다. 그들이 나를 너무 지루한 사람으로 여길까봐 전전긍긍했다. 보르헤스니 가속주의니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는 동기에 미친 대답으로 그를 놀라게 하고 싶었고, 자신은 한남이라고 말하는 여자 선배에게 왜인지 되묻기보다는 당연하게 동감하며 웃고 싶었다. 나는 그들 곁에서 같이 미쳐버리고 싶어 옴짝달싹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확실하게 미쳐있는 이들과 대화하면서, 나는 내가 미치지 않았음을, 미친 체를 하고 있지만 이것은 척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절대로 제대로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의 미침은 대체로 선천적이거나 계기적이었다. 안온하게 살아온 중산층 막내딸인 나는 충분히 이상하지도 미쳐있지도 않았다. 그 광기 어린 대화에 내가 낄 틈은 없었다. 나는 그저 그들 곁을 맴돌며 조금씩 그들의 세상을 엿보았을 뿐이다. 일그러진 욕망만을 붙든 채 말이다.


이 모든 말을 마친다면 나는 비난받을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패션-정신병을 욕망하는 것이라는 정당한 비판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따질 것이다. 미친 상태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느냐고,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못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비참한지 아느냐고 말이다.  분명히 나의 동경은 그들에게 상처를 줄 것이다. 그들을 아프고 분노하게 만들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일 테다. 나의 소원이 이뤄지는 것일까. 그러나 타인을 해하는 글을 썼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 없이 슬퍼져 이 글을 전부 지워지고 싶어진다. 결국 나는 제대로 미칠 수도, 제대로 나쁠 수도, 제대로 파괴적일 수도 없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착하고 선하고 유순하고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나는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할 수 없는 애매하게 미쳐있는 사람이다.


궁극적으로 내가 욕망하는 것은, 미쳐버린 사람의 거친 날 것이다. 정상성의 규범을 부수고 그 너머를 상상하게 만드는 힘. 어쩌면 너무나 파괴적이어서 자신마저 파괴해 버릴지도 모르지만, 그렇기에 보는/듣는/읽는 이의 세계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무언가. 아방가르드하다 못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나는 그것을 간절하게 욕망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미친 상태를 선망한다. 그렇기에 나는 여전히 나의 삶이 특별하게 미쳐있기를 바란다. 미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미친 짓을 하고 싶어서 미쳐버릴 지경이다. 하지만 내가 도달하는 곳은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패배감, 미치더라도 탁월하게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망가져 버릴 것이라는 예감이다. 결국 이 욕망의 종착지는 자기혐오와 자기연민이다.


물론 내가 원하는 파괴적이고 아방가르드한 힘은 미친 상태를 통해서만 도달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삶을 성실하게 꾸려나갈 때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일 수도 있다. 나도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자기파괴적인 생활을 버리고 꾸준함과 성실함의 미덕을 믿으며 비범해지려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안다. 미친다는 벼락 맞는 듯한 계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안다. 빌어먹게 머리로만 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미친 친구들을 곁에 두고 미친 생각을 해내는 그들을 부러워하며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공전을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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