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리 힘드냐고 질문을 받는다면 특별할 것 없다고 대답해야 한다. 정말 특별히 힘든 일은 없기 때문이다. 지긋지긋한 출근도 직장 스트레스도 인간관계의 사소한 문제들도 나를 둘러싸고 있는 어떠한 문제도 지금은 없다. 특별한 일 없이도 힘든 일상이 내게 힘들다.
이런 이상한 반복적인 질문과 답변을 겪으면서 나는 나 스스로에게 되뇐다. 어쩌면 힘들지 않은데 힘든 척하고 싶은 건 지 아니면 뭐가 힘든지 몰라서 힘든 건지 말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걱정하느라 지금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건 아닌 지 걱정 대마왕인 내가 또 모든 걱정을 끌어모아서 그 많은 시간들을 걱정으로 보내고 있느라고 힘든 건지 오늘도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근래를 떠올려보면, 가장 큰 걱정은 나의 대화 욕구에 대한 부재이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언제 누군가와 대화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정한 대화 상대의 기준이 조금은 까다로워서 누군가를 만나서 얘기하기 무척 힘들다. 그 누군가는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사람이어도 되지만 나와 정서나 감정 혹은 취향이 비슷해야 하고, 나를 잘 이해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나처럼 시간이 많아서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사람 이어야 한다. 이런 확고한 취향 덕분에 나는 여전히 아무에게도 내 감정을 말할 수 없다. 말할 기회조차 만들기 힘들다.
정말 어쩌다 누군가를 만난 게 돼도 나의 엄격한 친구 기준에 의해서 쉽게 낙오되고 만다. 그래서 내가 이곳에서 친구를 사귈 확률에 대해서 길을 걷다가 천둥번개를 맞거나, 어느 날 갑자기 복권에 당첨되는 희박한 확률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면 기준을 좀 더 낮추고 친구를 사귀어보는 건 어떨까. 물론 그런 시도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내 마음에 흡족한 대화 상대가 아니면 당연히 깊이 있는 얘기를 꺼내기가 힘들다. 내 마음속 고민이나 걱정들을 털어놓을 수 없고 결국 대화는 맴돌게 된다. 그저 그런 이웃이 되는 것이다.
물론 언어의 장벽(영어)도 한몫을 한다. 하려던 말을 자주 삼키게 되기 때문이다. 대화를 이끌어가는 동안에 이런저런 생각들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어떻게 영어 문장을 만들어야 할지, 방금 내가 말한 영어가 맞는 건지, 그러다가 결국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입을 닫아버리고 만다. '굳이 내가 말 안 해도 뭐'라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또 대화에서 소외시켜 버리고 만다.
그래서 남편에게 집착했던 시간들도 있었다.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남편, 넌 듣기만 해. 말은 내가 한다!"라고 외치던 시간들. 그렇지만 나는 서서히 아주 서서히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지는 날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프로 리스너가 되었다. 남편의 회사 이야기가 내가 하루 종일 집을 지키면 했던 일들보다 더 재밌었고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주 천천히 서서히 말하는 방법을 잃어버렸다. 고작 몇 개월일 뿐인데도 사람을 만나는 것도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도 해서 뭐하나 하는 생각에 스스로 시작도 전에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나의 문제에 대해서 나 스스로 걱정한다. 이렇게 살면 우울증에 걸리거나, 괴로워서 미국을 떠나 한국으로 도망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문제라고 생각하고 고민한다. 그렇지만 해결책, 내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행동에는 다가가지 못한다. 이대로 어둠에 내가 잠식되고 싶은 건지, 모든 것이 다 싫고 그냥 차라리 이렇게 괴로운 상태가 더 좋은 건지, 기대감 없이 사는 게 더 편한 건 지 모르겠다.
어떤 냉정한 생각들도 긍정적인 에너지들도 지금은 모두 내 주변에서 사라지고 오롯이 괴로운 나 혼자만 남아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