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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들 Oct 05. 2023

왜 고대 그리스에는 여성 누드상이 없었을까?

솔01 -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

프락시텔레스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 기원전 350년경, 로마 시대 복제품, 대리석, 로마, 바티칸 박물관


이 여성 누드 조각은 고대 조각가 프락시텔레스의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이다. 현재 로마 시대 만들어진 복제품으로만 남아있지만, 그가 이 상을 처음 제작하였을 당시 이 누드상은 일종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흔히 볼 수 있는 여성 누드가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충격이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페플로스를 입은 코레> 기원전 530년경, 채색 대리석,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그 이유는 이 조각상이 등장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누드는 남성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이다. 폴리클레이토스의 <창을 들고 가는 사람>, 미론의 <원반 던지는 사람>처럼 나체의 남성 조각은 많았던 반면, 그동안 여성 조각들은 <페플로스를 입은 코레>와 같이 옷을 입은 채 표현되었다. 그동안의 여성 조각이 옷을 입은 채 모두 부정적인 역할로 묘사되어 온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첫 여성 누드 조각상은 큰 사건이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동안의 고대 그리스에는 남성 누드만 보였던 것일까?





미론 <원반 던지는 사람> 로마시대 복제품, 기원전 450년경, 로마, 국립박물관

고대 그리스에서 누드, 즉 나체 역시 의상의 한 형식이었다고 한다. 나체는 노예와 구별되는 시민으로, 여성과 구별되는 남자로, 김나지온(gymnasion)에서 운동하는 특권자의 의상이었던 것이다.

*김나지온(gymnasion) : ‘사람들이 나체로 다니는 장소’라는 의미를 가지는 고대 그리스의 운동 교육기관


 

‘건강한 신체에서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고 믿었던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건강한 몸만들기는 매우 중요한 덕목이었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권위 있는 옷보다는 누드의 남성성 자체를 숭배했으며, 젊고 생명력 넘치지만 절제된 남성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여겼다.

건장한 신체는 젊은 남성들이 도달해야 하는 이상이었으며, 이는 전쟁에서의 승리, 운동경기에서의 승리를 최고의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그리스 사회에서 길러진 이념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당대의 큰 충격을 안겨준 프락시텔레스의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 이야기로 넘어가자면, 로마인 플리니우스의 기록에 남아있는 이 조각상에 관련된 일화가 있다.


프락시텔레스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 기원전 350년경, 로마 시대 복제품, 대리석, 로마, 바티칸 박물관

코스 섬에서 당대 그리스 최고의 조각가였던 프락시텔레스에게 조각을 의뢰했다. 그러나 프락시텔레스는 2개의 아프로디테 상을 만들었다. 하나는 기존 다른 작품들처럼 ‘옷을 입은’ 채로, 다른 하나는 기존에 본 적 없는 완전한 ‘누드’ 차림으로 제작하여 동시에 같은 가격으로 내놓았다. 우선권을 갖고 있었던 코스인들은 ‘격식 있고 정숙하기 때문에’ 옷을 입은 아프로디테를 선택했고, 우선권이 없었던 크니도스인들은 나머지 여인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누드의 아프로디테 조각상이 유명세를 타자, 코스의 왕은 크니도스인들에게 많은 부채를 삭감해 준다고 하며 다시 사고자 노력했지만 크니도스인들은 거절했다. 결과적으로 이 조각상으로 크니도스는 외부인들이 배를 타고 보러 올만큼 유명한 지역이 되었다.








서기 2세기의 또 다른 여행기에 따르면, 이 조각상이 안치된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 신전은 사실 신전을 먼저 만들고 그 안에 신상을 모신 것이 아닌, 유명해진 이 조각상을 모시기 위해 이후에 신전이 지어지고 정원이 꾸며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신상의 종교적 의미는 사라지고 유명한 작가의 걸작으로 숭배의 대상이 아닌 감상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누드 아프로디테 상의 유명세가 긍정적인 방향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로마의 수사학자 루치아노에 따르면, 당대 아프로디테 조각상에는 남성들의 ‘정액’의 흔적들이 있었으며, 이 또한 사람들의 볼거리였다고 한다. 여성이 음부를 가리고 그녀를 바라보는 남성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듯한 이 조각상은 남성들의 욕망의 대상이자 관음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부끄러운 듯 남성의 시선을 의식하는 이 조각상은 근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여성 누드를 남성적 응시의 대상이자 수동적으로 묘사했던 오랜 서양미술사의 첫 시작점이었다.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를 시작으로 여성 누드가 서양미술사에 점차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누드의 여성들은 대부분 신화 속 여인이었다. 이는 후대에 비현실적 신화는 누드로 그려도 된다는 암묵적인 통념을 생산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 짐작된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남성 미술가들이 비판을 회피하기 위해 수많은 신화 속 여인을 누드로 그렸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아프로디테 여신으로, 여성을 성적 대상화, 관음의 대상으로 정당화시키기 위해 수없이 많이 이용되어 왔다. 단지 '미의 여신'이라는 칭호 하나로 아프로디테는 성적 대상화되었던 반면, '전쟁의 여신' 아테네는 고대 그리스에서 숭배되었던 현실을 통해 우리는 고대 그리스 사회가 전쟁에서의 승리, 운동에서의 승리 등의 승리 이념에 집착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서양미술사, 이은기,김미정 지음, 미진사


이미지 출처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2198923&memberNo=4873889

http://www.art2me.org/images-art/08-gamsang/02-godae/02-greece/image06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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