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현실을 마주하다

by 석우

귀촌 이후의 삶이 봄날의 햇살처럼 마냥 따스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른손잡이인 내가 하루아침에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할 수 없듯이, 이곳에서의 생활 역시 충분한 시간과 노력이 있어야 오롯이 내 삶이 되리라. 제법 단단하게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시련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이사한 다음 날부터 세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주택에 살면 빗소리가 크게 들린다고 하더니 사실이었다. 우리 집은 2층에 노출형 테라스가 있는 목조주택인데, 굵은 빗방울이 테라스 덱을 때리는 소리가 고스란히 1층에 울려 퍼졌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큰 빗소리에 당황했지만 이내 적응이 되었다. 비 오는 날 마시는 막걸리에 운치를 더해줄 것 같다는 생각에 살짝 설레기까지 했다. 이 맛에 주택에 사는구나!




이사 후 삼 일째 되던 날, 운치 있는 막걸리를 마셔보기도 전에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집이 부서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거친 빗소리에 잠을 깨 1층으로 내려왔는데 거실 한구석에 누런 물이 흥건한 게 아닌가? 우리 집에 배변 실수를 할 개가 있는 것도, 과음을 한 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저 정체불명의 액체는 무엇인가? 찬찬히 살펴보니 물은 천장에서 벽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빗물 누수. 일단 물을 닦아내고 양동이를 받쳐놓긴 했지만, 이후에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우비를 꺼내 입고 무작정 2층 테라스로 올라가 구석구석을 살펴봤지만 누수의 원인을 찾을 길이 없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억수 같은 빗줄기는 한 달 동안 이어졌다. 많게는 하루에 200밀리 이상, 내렸다기보다는 쏟아부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살면서 그렇게 많이 오래도록 내리는 비는 처음이었다. 바람 역시 못지않았다.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초속 15미터 돌풍이 하루 종일 불어댔다. 마당에는 재활용 쓰레기통과 화분들이 나뒹굴고 접어놓은 파라솔은 갈가리 찢겨나갔다. 텃세 없는 동네라고 생각했는데 하늘이 텃세를 부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귀촌을 준비하면서 체크해야 할 사항들은 대부분 확인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체크리스트에 날씨는 없었다. 하긴 있었다고 한들 살아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사계절을 몇 번씩 겪어보니 여름엔 비가 많이 오고 겨울엔 눈이 많이 온다. 그리고 망할 놈의 바람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세차게 불어 재낀다. 살아보니 참 지랄 같은 날씨지만, 눈이 한 뼘 이상 쌓이는 겨울을 생각하면 미워할 수만은 없다.




다시 누수 문제로 돌아와서, 비가 내리는 한 달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똑똑 떨어지는 낙수를 받아내는 것밖에 없었다. 전원주택을 고를 때 2층 노출 테라스는 일단 거르는 게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나중에야 안 사실이다. 아무리 잘 지은 집이라 해도 시간이 지나면 빗물 누수를 피하기 힘들고 해결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귀촌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찾아보니 대부분 테라스 덱 아래 징크 이음새에서 누수가 생긴다고 했다. 업체에 의뢰하면 우선 덱을 철거하고 지붕 누수를 잡은 후에 다시 덱을 시공하는 식으로 작업이 이루어지는 듯했다. 그런데 여기서 덱이란 놈이 또 골치 아픈 녀석이다.


우선 덱이 있다면 주기적으로 오일 스테인을 발라 줘야 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당연히 비용과 노동력은 덱의 면적과 비례한다. 1, 2층 포함 총 20여 평의 덱이 있는 우리 집이 그렇다. 심지어 2층 테라스는 지붕이 없는 구조라 하루 종일 직사광선에 노출되어 있어서 송진이 엄청나게 배어 나온다. 집이 지어진 지 5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여름이 되면 꾸엑하고 송진을 토해낸다. 매년 끈적끈적한 송진을 제거하고 스테인을 바르는 일은 절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어찌 됐든 업체에 의뢰한다면 우선 덱을 철거해야 하는데 원형 그대로 뜯어내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누수를 잡은 후 새로운 덱을 재시공해야 했다. 중고차 한 대 값은 들여야 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아반떼 사러 갔다가 싼타페 계약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당장 누수를 잡아도 지붕을 씌우지 않는 이상 누수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몇 년 후에 똑같은 짓을 하지 않으려면 지붕을 덮어야 하는 데 어차피 돈 들일 바에야 아예 썬룸을 만드는 쪽이 나을 것 같았다. 수리가 아니라 증축, 결국 싼타페 한 대 값은 태워야 하는 것이다.


항상 문제는 돈이다. 이제 막 귀촌한 반백수에게 여윳돈 몇천이 있을 리 없었다. 일단 셀프로 급한 누수부터 잡기로 마음을 먹었다. 혼자서 테라스 전체를 뜯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누수가 의심되는 순으로 부분 작업을 했다. 뜯어낸 덱을 무조건 재사용한다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해체 작업에 들어갔지만 나무에 파묻힌 피스 머리는 도무지 뽑아낼 방법이 없었다. 간혹 머리가 보이는 피스들도 나무에 고착되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뒷일은 미래의 나에게 맡기기로 하고 빠루를 집어 들었다.


“빠각!”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인지 내 허리가 부러지는 소리인지 모를 정도로 고된 작업이었다. 대여섯 장을 뜯어내고 징크 이음새에 실리콘 작업을 했다. 부서진 덱을 보수하여 스테인을 발라 다시 깔면 일단 작업 완료! 성적표는 다음 비 오는 날에 받아볼 수 있었는데 보통은 근처 다른 곳에서 물이 떨어졌다.




시간 날 때마다 이 짓거리를 반복하여 비가 와도 보송보송한 천장을 가지기까지 1년 6개월이 걸렸다(최소한의 돈벌이는 해야 했기에 집수리에 올인할 수는 없었다). 물론 지금도 비가 많이 오면 온 집안을 돌며 천장을 찬찬히 살펴야 마음이 놓인다. 2층에서 자다가도 1층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반응하는 신비한 능력도 생겼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임이 확실하다.


주택에 살면 신경 쓸 일도 해야 할 일도 많다. 비 온 후엔 잡초도 뽑아야 하고 여름엔 방역도 해야 하고 겨울엔 눈도 치워야 한다. 하다못해 쓰레기 하나 버리는 일도 아파트보다 수고스럽다. 똑같이 사람 사는 집인데 주택이라는 이유만으로 왜 이렇게 할 일이 많을까?


생각해 보면 아파트도 다르지 않다. 여름엔 제초 작업을 하고 주기적으로 세대 소독과 수목 소독을 한다. 장마 전엔 방수 작업을 하고 겨울엔 눈을 치운다. 다만 내가 직접 하지 않을 뿐. 주택에 살면 관리비를 내지 않는 대신 관리비 사용내역서에 있는 수많은 항목을 셀프로 하는 셈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나의 가사 노동이 제법 생산적인 일인 것 같아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심지어 집을 살피고 뜯어보면서 내 집에 대해 조금씩 알아간다는 뿌듯한 느낌마저 든다. 내가 속속들이 알아야 진짜 내 집이 되는 거겠지. 비록 대출금은 산더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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