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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nine Oct 14. 2022

옷 정리

버리기, 버려내기

살면서 처음으로 옷 정리를 했다. 옷을 개어 서랍에 잘 넣어놓고 옷걸이에 예쁘게 걸어놓는 옷 정리가 아니라 잘 입지 않는 옷을 버리기 위한 정리였다.


사이즈가 맞지 않아 입지 않는 옷, 너무 많이 입어 헤져서 더 이상 입을 수 없는 옷, 예쁘다고 샀을 텐데 지금은 너무 화려한 것 같은 옷. 이런저런 이유들로 골라내고, 어쭙잖은 핑계를 들어 남겨놓기를 반복하다 보니 잊고 있던 기억들이 쌓여있던 먼지처럼 떠다닌다.


고등학생 때 당시 친했던 친구와 몇 시간을 돌아다니며 이걸 살까 저걸 살까 고민을 반복하다가 힘들게 고른 재킷이라든가 일본에 간지 얼마 안 됐을 때 입을 옷이 없어 엄마와 함께 샀던 마치 행주 같은 무늬의 체크 셔츠. 그냥 구경하러 들어갔다가 싼 맛에 충동구매해놓고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화려한 코트... 분명 더 이상 입지 못하거나 입지 않는 것들을 버리려고 하는데 괜히 한 올 한 올 얼기설기 얽혀있는 기억들도 함께 떠나보내는 것만 같아 몹시 아쉬운 마음이 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정리를 마치고 방안에 남아있는 옷들을 둘러보니 그래도 정돈된 느낌이 드는 게 이제 그만 아쉬움은 놓아주고 남아있는 옷들에게 조금 더 애정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 있는 옷들도 또 언젠가는 헤지고 낡아서 버리는 순간이 오겠지 하는 생각도.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낡아빠진 옷이든 그 옷에 얽힌 이야기이든. 사람이든 사랑이든, 아니면 다른 무엇이든. 살다 보면 언젠가는 그것들과 헤어져야 하는 때가 찾아온다. 경험상 그런 순간들은 보통 내가 원하지 않을 때 찾아오곤 했었는데 앞으로 내게는 또 어떤 이별이 불쑥 찾아오게 될까?


그게 언제이든 또 어떤 모습이건 아마도 지금처럼 초연하게 지나쳐 보내지는 못하겠지만 이제는 내게 남아있는 것들. 내가 있을 자리를 기꺼이 내어준, 내가 더 아끼고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것들에 대하여 더 생각하려 한다.


추운 날 나를 따뜻하게 감싸줄 옷과 사람들, 사랑. 그리고 그들과 이리저리 얽히고설킬 이야기들을 상상하면 왠지 모르게 어떤 아픔도 사뿐히 즈려밟고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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