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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바리 Nov 07. 2018

누구를 위한 2030 세대 노동 이야기일까

[책 리뷰] 자비없네 잡이없어 (2018)

순전히 제목 때문에 책을 샀다. "자비없네 잡이없어". 제목 때문에 샀는데 내용은 제목만큼은 재미있지 않았다. 이 책을 마냥 즐겁게 즐길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을 내기 위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이 누구인지와 관련이 크다. "논의의 대표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2030 세대의 노동에 대한 연구 및 조사, 출간 작업 경험이 있으면서 스스로가 2030 세대이기도 한 연구자들을 모았다"며, 공인노무사, 처음부터 특정 키워드를 잡고 일해온 사람, 1~3 섹터를 두루 경험한 사람, 시사잡지 기자, 대학 교직원 출신의 연구 노동자, 박사 수료 문화 평론가, 여러 사회 프로젝트에 참여 중인 프로 N 잡러, 언론사 기자 출신 연구원을 모아다 그들의 이야기를 실었다. 2030 세대의 노동 이야기를 하겠다면서 모은 사람들이 내 기준으로는 특출 난 사람, '힙'한 사람들이라서 읽으면서 묘한 거리감을 느꼈다. 프로젝트의 구성원을 봤을 때, 이 책은 2030 세대의 목소리를 직접 드러내기보다는, 분석과 정책제안에 더 중점을 둔 것 같다. 


한 참여자는 "저는 세대를 대표할 만한 사람은 아니에요. 처음부터 대기업에는 관심이 없었고 비영리 분야에서 일을 시작했으니까요."라고 고백하며, "그렇지만 이야기를 들어 보면 고민하는 부분들이 겹치더라고요. '이 일이 나와 맞는 일인가?' '일을 하면서 소진되지 않고 나 자신으로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 등등이요."라고 말하는데,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의 위치는 이 참여자가 이야기한 정도인 것 같다.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는 대표성은 그렇게 높지 않지만, 2030 세대의 노동 문제를 분석해보려고 한 사람'.


자비없네 잡이없어: 생존, 그 이상을 꿈꾸는 2030세대 노동 이야기. 희망제작소. 2018.


대표성이 좀 애매하다 보니 중간중간 너무 평면적으로 문제를 보거나,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예를 들면 가치 지향 조직에 일하는 2030 세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가치 지향 조직에 들어가는 젊은 세대는 기업보다는 이쪽이 더 민주적이고, 인간적이고, 노동자의 권리도 잘 지켜 줄 거라고 기대하기 쉽거든요.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으니까 갈등이 생기고, 갈등 양상도 기업에서보다 더 복잡해요. 차라리 단순하게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서 사장님과 직원으로 만났으면 협상이 될 수도 있죠. 양쪽이 추구하는 가치가 금전적으로 환산된다는 면에서도 일치가 되고요"라고 말하는데, 영리와 비영리를 너무 단순한 이분법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리 기업의 의사결정구조도 비영리만큼이나 복잡하다는 건 기업들의 비이성적 행태에서 충분히 드러난다. 그리고 비영리도 대놓고는 아닐지라도 금전에 기준을 두고 의사결정할 때가 많다. 


"가치 지향 조직을 선택한 이들이 실망하는 결정적 요인은 경제적 측면이 아니다. 경제적 어려움은 사전에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 감내할 각오로 온다"라는 말도 나오는데, 이 부분도 동의하기 어려웠다. 높은 월급은 포기했을 수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마저 예상하고 일을 시작한다고 일반화하는 건 무리가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2030 세대는 임금이나 안정성보다는 조직문화, 개인의 성장 등을 선호한다는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나오고, 이것이 2030 세대가 유독 노동시장에서 고생하는 이유로 나오는데, 2030을 떠나서 모두의 마음속에는 그냥 다 좋은 회사가 좋다는 생각이 있지 않을까. 임금 조건도 좋고, 사내 문화도 좋은 그런 회사. 그런 사람이 굳이 설문조사에서 뭔가를 고르라고 하니 한국 노동 시장에 특히 결여된 것, 조직문화나 개인의 성장을 선택한 건 아닐까.


몇몇 거리감이 느껴지는 내용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공감하면서 읽었다. 생각할 수 있는 우리의 노동 문제 대부분이 책에서 언급된다. 예를 들어서, 2030 세대는 조직이 아닌 자신을 중심에 둔다는 것, 조직에서 보호받고 존중받아본 경험이 극히 드물다는 것, 취업 시장이 구직자들에게 너무 불리한 구조로 되어 있다는 점 등이 나와 있고, 끝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안을 쭉 적어놨다. 그런데 2030 세대를 위한 노동 환경 개혁, 혹은 개선에 대한 제안은 있지만, 당사자인 우리가 어떤 전략을 택해야 할지에 대해선, 노조를 해라 정도만 나와 있어서, 이 책의 타깃은 누구일까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이 책의 타깃은 우리 사회의 기득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책의 끝에 마침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지금 스무 살인, 혹은 더 어린 세대가 좀 더 나은 사회에서 좀 더 만족스럽게 자기 일을 시작하고 해 나갈 수 있도록 사회를 바꿔야 한다. 2030 세대와는 다른 환경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40대 이상 세대들도 그런 변화를 간절히 원하고, 힘을 보태야 한다. 그래야 불과 십수 년 후면 사회에 나갈 그들의 자녀도 각자가 원하는 '좋은 일'을 하며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계기로 쉽지 않은 여정에 선뜻 발을 들이는 사람들이 한두 사람이라도 더 많아지기를 기원해 본다."


제목이 너무 좋아서 오히려 약간 아쉬웠던 책이다. 노동 문제로 마음이 복잡한 사람은 한 번쯤 쓱 읽어보면 괜찮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친구들과 푸념처럼 하는 이야길 조금 더 세련되게 적어놓았다.


이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페이스북 친구분이 "가난한 청년은 왜 눈에 보이지 않는가" (안수찬 기자)라는 기사를 추천해주셨다.(기사 보기) 책에서 말하는 것과 비슷한 주제인 청년의 노동과 빈곤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인데, 책과는 전제와 사례가 완전히 다른 점이 흥미로웠다. 안수찬 기자는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80%에 이르고, 모든 취업·실업 정책은 이들 대졸자에 맞춰져 있지만, 아예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나머지 20%에 대해선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데, 이 질문이 정확히 내가 「자비없네 잡이없어」에서 느낀 불편함을 대변해주는 것만 같았다.


「자비없네 잡이없어」의 기획자는 만 열여덟에 특성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해서 내내 잡무만 하고, 대졸과 비교당하며 차별당하고, 성희롱에 시달리는 한 여성의 사연을 듣고 "뭐라도 좀 더 해야겠다"라고 생각해 이 책을 기획했다고 했는데, 책의 내용은 전문성을 갖기 위해 고심하거나 워라벨을 추구하거나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대졸, 그것도 상위권 대학 대졸자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데 표지에는 마치 2030 세대를 대표하는 것처럼 적혀있었다. 기획자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약간 그의 기획의도에서 시혜적 태도를 느꼈고, 부분적인 대표성을 과장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읽으면서 좀 불편했고, 거리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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