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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망 the Amant Jul 31. 2019

오늘이 몇요일인가요

따갑도록 피부를 태워대던 해가 고개를 감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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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저녁을 먹어도 해가 져있지 않아 하루가 긴 듯한 기분이 들면서도, 내일로 데려다 줄 어둠이 오지 않는 탓에 생각 없이 기다리는 시간만 더 길어질 뿐. 더 이상 해의 길이가 별 의미 없어진 나이와 몸뚱이는 오히려 겨울이 서둘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할머니는 생각 없이 하루를 보내다가 그냥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하고 다시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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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부부가 할머니를 모신답시고 데려다 놓은 작은 아파트 단지에는 나무 하나를 주위로 원 모양의 벤치가 있다. 푹푹 찌는 여름이 오면 거기만큼 시원한 곳이 없지. 에어컨이 다 무어야. 늙어서까지 자식들에게 부담 줄까 봐 선풍기도 제 맘대로 못 트는데. 그냥 아침에 부채 하나 들고 나가 사람 구경하다 보면 다시 저녁이 오는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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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정각. 테레비 뉴스에서는 폭염주의보니 경보니 하는 이상한 소리만 해쌌지만 할머니는 어김없이 벤치로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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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몸 만한 가방을 메고 바삐 걸어가는 청년이 보인다. 내리쬐는 햇볕에 더울 텐데도 귀에 무언가를 꽂고 앞만 보고 걸어간다. 공부하러 가는갑다. 아침부터 고생하네. 집안 형편이 좀만 더 나았다면 아들레미 대학 가는 것도 볼 수 있었을 텐디.

자기 몸 만한 딸아이 둘을 데리고 바삐 걸어가는 아줌마도 보인다. 한 손에는 애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전화기를 귀에 갖다 댄 채 무어라 이야기하며 간다. 요새 어멈들은 뭐가 그렇게 바쁘대. 나 때는 애 셋도 거뜬하게 키웠는디.

대낮이 되자 트럭 몇 대가 지나간다. 택배차들은 뭐 이리 많은지. 트럭에서 내린 아저씨 둘은 자기 몸만한 박스를 옮겨가며 아파트 동을 오르락내리락한다. 문득 아들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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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할머니는 아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 날씨가 이럴 때마다 큰맘 먹고 전화하면 낮이고 밤이고 일하느라 바쁘다는 대답뿐. 그래도 며칠 전 통화를 아직도 기억한다.

“금요일쯤 되면 애들이랑 찾아갈 테니까 전화 좀 그만 하세요 어머니”

할머니는 괜히 바쁜데 방해했을까 봐 미안하면서도 ‘금요일’이란 말에 괜히 화색이 돌았다. 금요일이 며칠 뒤인지는 모르지만. 여태 살아있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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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에 하루 종일 앉아있노라면 사람들은 어디론가 끊임없이 움직이는데, 나만 멈춰서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여기로 이사 오기 전까지만 해도 장가가더니 도망가버렸다는 옆집 할매네 아들 욕도하고 손주 본지 7년만에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앞집 할배와 은행나무 그늘 아래서 수박 까먹고 그랬는디. 참 불쌍한 사람들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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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 온 뒤로 수개월간 대화를 할 사람이 없어 그런가, 그새 말이 어눌해져 버렸다. 쓸 일이 있어야 말이지. 집에는 오래된 테레비와 며느리가 선물해준 작년 달력만이 나뒹굴었고, 매일 새로운 하루를 위해서는 그나마 밖으로 나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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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갑도록 피부를 태워대던 해가 고개를 감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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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은 언제 오려나? 한 사흘은 남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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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어디론가 급히 가던 그 많은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오늘은 기필코 물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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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에 애들 손을 잡고 돌아오는 아줌마가 앞을 스쳐 지나간다. 매일 보는 사람이라 조심스레 말을 걸어보았다.

“ㅈ.. 저기어.... 죄송한ㄷ...”

아줌마는 할머니를 힐끗 보더니 아이 둘을 휙 자기 몸 쪽으로 힘껏 끌며 빨리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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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뻘 되는 교복 입은 여학생 세명이 다가온다.

“하..하썡들 하나만 물ㅇ...”

“아 죄송합니다아~”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학생들은 전단지라도 받을까 봐 급하게 손을 감추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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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차 한 대가 지나간다. 우리 아들 차랑 비슷하네. 하지만 차는 끝내 멈춰 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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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본 아저씨 한 명이 지나간다. 할머니는 이 사람도 놓칠까 봐 느린 몸을 이끌고 다가간다.

“져기 아쟈씨...”

“어이쿠 씨 깜짝이야!!! 뭐야 진짜.. X바 졸라 짜증나게 하네.. 쯧”

“정말 미안합니다....” 할머니는 예상치 못한 아저씨의 반응에 괜히 연신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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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무슨 요일인지 알지 못하고 집에 들어가게 될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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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본 청년이 지나간다. 여전히 귀에 뭘 꽂고 앞만 보고 잘도 걷는다.

“ㅈ...져기”

청년은 못 들은 건지 못 들은 척한 건지 반응 없이 계속 걸어간다. 청년의 빠른 발걸음을 따라잡지를 못하겠다. 청년은 이미 크게 벌어져버린 둘 사이의 거리를 의식한 듯 슥 돌아보더니 B동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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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계에서 철저히 이방인이다.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 없지. 나는 그냥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만 알고 싶었던 것뿐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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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차가 내 앞에 섰다. ‘희망 어린이집’이라고 쓰인 문짝이 옆에서 드르륵 열리면서 6살 정도 되어 보이는 꼬마애가 폴짝 내린다.

“지영아, 선생님께 인사!”

“선생님! 감사합니다!”

꼬마애는 선생님께 인사하고 나서 A동 현관을 나오는 엄마를 보고서는 뛰어가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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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기요오,,,,,”

차에 다시 타려던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보이는 사람이 뒤돌며 화들짝 놀란다.

“네?”

“오느이 며됴이이에요?”

“네???”

어린이집 선생님은 할머니를 경계하면서 되물었다.

"며됴이."

"..."

“오느리.... 몇요일이에요?”

어린이집 선생님은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은 채 할머니를 응시했다. 노망난 할매가 왜 저런걸 나한테 물어보는거야. 오늘 토한거 치우느라 신경이 곤두설만큼 짜증이었는데. 그녀는 적당히 응대하고 차문을 닫아버릴 작정으로 대답했다.

“토요일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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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토요일..? .....토요일.......”

“네 토요일이요”

“아이고 미아납니다..... 정말 미안해요..........”

“아니에요”

“미안....정말로..미안합니다......”

"괜찮다니까요? 출발해야하니까 떨어지세요.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가족들 기다리는데 얼른 집에 들어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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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떠나고, 할머니는 한참을 그 자리에서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뭐가 미안한지는 자기도 모른다. 그저 평소처럼 새로울 것이라곤 단 하나도 없는 A동 103호로 들어가는 순간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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