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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AL 02] 존재와 영원에 대한 초월적 고찰

뮤지컬 <이터니티>와 연극 <모든>

by 현일


*앞선 글들에서 다뤘던 것처럼 극예술은 관객의 경험, 가치관, 중시하는 요소에 따라 해석을 얼마든지 달리할 수 있으며, 한 역할에 여러 배우가 캐스팅되는 한국 시장의 특성상 실제로 무대에서 본 것이 배우, 회차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본 글의 해석에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이는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며, 본인이 느낀 바가 옳다는 전제에서 참고만 해 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선정해 다루는 공연들은 그 성공 여부, 완성도와는 별개로 공연이라는 매체를 잘 이용하고 있다고 느꼈으며 해당 글의 주제에 따라 긍정적으로 평가할 여지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글에서는 주로 그 공연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는 지점들이 논의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이 공연을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보았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경험과 해석이 매번 바뀔 수 있는 공연예술의 특성상, 집중할 수 있는 좋은 지점이 분명히 있다면 논의의 가치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모든 분석문에는 스포일러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는 누구이며 이 세상에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는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본질적인 질문이다. '나'라는 존재는 구분된 신체와 의식을 가진 존재로서 분명히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자신의 존재를 통일적으로 이해하고 분명한 경계를 정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수많은 생명체들이 상호작용하는 생태계 하에서, 신체는 이미 하나의 복잡한 세계이다. 우리의 생물학적 기능들은 수많은 미생물들의 작용들과 함께한다.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우리의 정체성은 역사와 문화,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형성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 사람의 존재는 특정한 개체만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한 개체의 시간을 넘어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작용들에 포함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최근에 나는 이처럼 개인, 혹은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나 존재에 대해 고찰하는 공연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극이 스토리, 드라마를 전달하는 목적을 넘어 참여하는 모두에게 본질적인 고찰을 일으킬 수 있는 주제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은 내게 상당히 긍정적으로 여겨졌는데, 특히 이런 관계적인 존재방식에 대한 고찰이 공연이라는 형식과 효과적으로 상응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공연이라는 전달 방식은 존재에 대한 고찰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가며, 관객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1. 뮤지컬 <이터니티> : “나는 너, 너는 나,” 내재된 미분화 상태의 따뜻함


2024년, 현재 초연중인 뮤지컬 <이터니티>는 ‘글램 록’*이라는 다소 생소한 장르를 소재로, ‘블루닷’이라는 스타 가수의 갈등과 몰락, 그리고 그를 롤모델로 동경하는 가수 지망생 ‘카이퍼’의 관계를 통해 전개된다. 이 두 인물을 오가며 과거와 미래가 중첩되어 전개되는 무대 위에서 ‘머머’라는 인물은 다양한 역할을 오가며 이들을 갈등 상황으로 이끈다.

*’매혹적인 록’이란 의미로, 화려한 머리 모양과 짙은 화장, 독특한 의상 등 파격적인 이미지를 특징으로 시각적인 효과로서 완성되는 록 장르를 가리킨다. 글램 록은 남성과 여성, 게이와 레즈비언을 포괄하는 성(性) 관념, 개인과 세대를 가로지르는 메시지, 우주적 상상력, 문학적 감수성을 두루 갖추었으며, 장르 면에서도 아트 록, 로큰롤, 포크 록 등을 결합한 록-콜라주(Rock-Collage) 성격을 띠고 있었다고 평가된다.


스토리는 단순하다. 한때 많은 사랑을 받은 글램 록커 블루닷은 지구를 대표해 우주로 발사될 음악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어렸을 때부터 학대와 외로움 속에서 성장한 블루닷에게 이는 자신의 음악, 더 나아가 자신을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으로 만들 결정적인 기회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의 실험적인 음악은 선정되기는커녕 대중들에게 점점 외면받고, 글램 록이라는 음악 자체가 퇴락한 음악으로 잊히게 된다. 한편, 미래의 가수 지망생 카이퍼는 자신이 외로울 때 함께해 준 블루닷의 음악을 기억한다. 자신의 노래를 선보일 기회를 찾던 중 카이퍼는 ‘마그네틱 하이웨이’ 음악 페스티벌에서 노래할 수 있는 초청장을 얻게 된다. 여기서부터 두 인물의 여정은 마치 평행우주처럼 그려진다. 하루 뒤에 열릴 페스티벌에서 부를 블루닷의 곡을 고르는 카이퍼, 그리고 마그네틱 하이웨이에서 우주로 갈 마지막 노래를 선보이겠다고 선언하는 블루닷의 긴박한 상황은 중첩된다. 그리고 카이퍼가 노래를 고르는 과정은 음반을 찾고 이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우주로 가기 위한 블루닷의 거듭된 시도들을 따라간다. 이 과정은 대중들에게 외면받고 평단으로부터 조롱당하며 괴로워하는 블루닷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 와중에도 자신을 기억해줄 누군가를 생각하며 ‘이터니티(eternity, 즉 ‘영원’)’라는 노래를 작곡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카이퍼가 이 곡을 부르기로 결정함으로써 둘 사이의 시공간적 간극은 메워진다. 그리고 이들은 각자의 시간에 전개되는 마그네틱 하이웨이에서 ‘이터니티’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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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두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시간에서 실패한다. 잊히지 않기 위해 그들은 현실과 타협하려 하고, 그들의 무대, 정체성을 구성했던 글램 록커의 상징들 (독특한 의상과 가발, 분장 등)을 버려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특히 카이퍼는 TV 쇼 출연 제안을 받으며, 글램 록 그리고 블루닷을 배신할 것을 요구받는 방식으로 그려진다. 그가 글램 록을 돈 안되는 음악으로 폄하하는 PD의 말에 동의할 때, 그는 영원히 사라지라는 저주와 같은 말에 맞춰 블루닷을 응시하게 된다. 그리고 방송국에서 노래를 부를 때 그는 마치 바닥에 쓰러진 블루닷 위에 서서 노래하는 것처럼 위치한다. 하지만 결국 그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카이퍼는 자신의 자작곡을 부르며 내가 너를 기억함을 외치고, 블루닷은 마치 이를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일어선다. 누군가가 자신을 기억한다면 자신은 절대 혼자가 아님을 알게 된 블루닷과 카이퍼는 직접 무대 위에서 분장을 하고 열정적으로 ‘이터니티’를 부르며, 공연 내내 이들의 이야기를 전개하며 주변을 멤돌던 머머는 그들을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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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이야기를 통해 <이터니티>는 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을 점유하는 인물들 사이의 비현실적인 소통을 보여주며,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혹은 물리적으로 현존하는 접점 없이도 모든 존재에는 그를 구성하는 세계, 물질, 혹은 기억의 측면에서 서로 다른 존재가 전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개별화되고 소외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근원에서부터 하나였으며 이로 인해 타자와의 연결 가능성을 폭넓게 가지는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는 극의 연출적 요소부터 인물 설정까지 모든 요소에 반영되어 있다.

먼저, 이 공연이 수많은 스크린을 무대 위에 등장시킨다는 점은 무대로부터 관객이 가장 먼저 발견할 특징일 뿐 아니라 인물들 사이의 연결 가능성을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블루닷을 기억하고 그를 미래에 재현하는 카이퍼의 행위는 아카이브, 즉 기록물의 저장 및 그것과 사용자의 소통을 전제로 한다. 카이퍼는 극의 초반부터 블루닷을 담은 음반들이나 녹화 영상들을 보며, 블루닷은 무대 위 혹은 뒤에서 녹화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이들은 기록물의 생산과 소비라는 점에서 직접적으로 연결되며, 이는 무대 위에서 현재화된 행동으로 보여진다. 즉, 스크린들은 시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인물들의 소통을 무대 위에 현재화시키는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개별적인 시공간에서는 소외되었지만 진정으로 혼자는 아니라는 위로의 메시지가 무대 위에 구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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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머머’라는 미스터리한 인물은 그 자체로 모든 존재에 잠재된 연결성을 대표한다. ‘머머(murmur),’ 즉 ‘속삭임’이라는 명칭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인물은 주인공들을 둘러싼 수많은 목소리들을 대변하여, 다양한 상대역들을 소화할 뿐 아니라 인물들이 겪는 불안감을 촉진시키는 위협적인 목소리, 대중의 태도 등을 구현한다. 하나의 얼굴로 수많은 존재들을 대변하는 그는 존재의 통일된 개별성을 따르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여러 면에서 그는 블루닷과 카이퍼를 나누고 있는 ‘시간’을 상기시킨다. 첫 등장부터 우주선 발사까지 남은 시간을 카운트다운 하는 그의 목소리는 이후 극이 진행됨에 따라 망각에 대항하는 곡을 쓰고 불러야 하는 인물들의 긴박한 상황과 겹쳐진다. 또한 그는 블루닷과 글램 록을 철 지난 음악으로 취급하는 대중들, 블루닷 대신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후배 가수, PD, 글램 록 클럽을 접고 타코집으로 업종 변경하려는 사장 등의 인물들을 연기함으로써 시간의 흐름이라는 측면에서 일관성을 갖는다. 후배 가수 ‘제이제이’로서 폐허 위에서 그저 춤출 것을 말한다거나, 블루닷에게 ‘사라져 영원히’라는, 그에게 가장 끔찍할 말을 내뱉는 머머는 영원을 바라는 인물들의 적대자로 여겨지기 충분하다. 하지만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이터니티’를 쓰고 부르는 인물들을 바라보며 밝은 무대에서 흐뭇한 표정을 짓고 춤추는 머머의 모습은 일반적인 적대관계로 설명하기 힘들며, 선과 악, 찬성과 반대를 벗어난 세력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머머라는 인물이 갖는 양면성, 그리고 시간을 대변하는 듯한 인물이 등장하는 것이 주제면에서 중요한 이유는, 시간이라는 형태의 대립적인 힘이 인물들로 하여금 다른 의미의 영원, 즉 관계를 통한 존재의 영속성을 깨닫도록 하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그것이 우주의 원리로서 단일한 기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머머가 극의 시작과 마지막, 그리고 극중 여러 지점에서 반복하고 있는 다음 넘버(“시작이 시작된 이야기”)는 빅뱅으로 우주가 창조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에 따르면 점 하나로부터 출발한 우주의 모든 존재는 본래 하나였으므로, 인물들이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은 “이미 정해진 오래된 이야기”라고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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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점 하나/ 59 거대한 폭발/ 58 시작된 시작/ 태어난 별

57 팽창되는 공간/ 6 세워진 모든 법칙/ 5 부딪힌 강한 힘

54 낯선 떨림과 울림/ 53 뿌연 안개/ 어두운 너에게

52 51/ 빛이 있으라

이건 시작이 시작된 이야기/ 너와 내가 하나였던/ 그 시간에 대한 노래

나는 너였고 나는 시간이고/ 너는 나였고 너는 공간이고/ 나는 별들이었다/ 너는 시작이었다


인물들이 영원을 위해 시간에 저항하는 것은 결국 이 오래된 이야기를 발견하는 과정, 즉 시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발전시키는 과정이다. 이 극에서 시간은 하나의 방향으로 선형적으로 흐르기보다는 상호 영향 하에서 순환적이고 병렬적으로 전개되는 것처럼 보인다. 애초에 블루닷과 카이퍼의 상황이 동시에 전개되고 본인들이 직접적으로 자각하지 못하는 와중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시간에 대한 역동적인 이미지를 갖도록 한다. 과거는 단지 지나간 것이 아니고, 미래는 과거로부터 별개로 존재할 수 없으며,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것도 가능하다. 이를 깨달았을 때 인물들은 시간의 흐름이 사라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하나됨이라는 기원으로 그들을 인도함을 알게 된다. 개별화와 사라짐이라는 시간의 흐름은 소외와 관련된 부정적인 의미 대신 그들이 다른 존재였을 수 있다는 잠재성의 의미를 갖게 된다. 따라서 우주선이 발사되기까지의 카운트다운은 사라짐을 말하는 시간의 불길한 속삭임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결국은 새로운 의미의 영원을 향하는 설렘의 정서를 갖게 된다. 숫자를 반대 방향으로 세는, 직관적인 시간의 흐름이 ‘영원을 향한 카운트다운’이라는 대사는 시간과 영원함의 대립 관계를 해소시킨다. 그리고 우주선이 지구(‘블루 닷’, 즉 푸른 점)를 떠나 태양계 저편의 ‘카이퍼’까지 도달할 것이라 말함은 이 ‘발사’가 서로 다른 시간 속의 두 인물이 만나는 것과 동일시될 수 있게 한다. 이에 부합하듯 무대의 바닥은 마치 우주선의 설계도 같은 느낌을 주는데, 극중 인물들의 행위가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우주선의 출항과 비교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게 존재의 불변함으로 나타나는 영원, 즉 시간과 대립하는 영원은 존재 사이의 유동적인 관계로부터 계속 흘러가며 존재하는, 하나된 기원과 존재 사이의 상호 교환 가능성에 근거한 영원의 개념으로 이동한다. 따라서 머머는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나는 너였고 나는 나무였고/ 너는 나였고 너는 바위였고/ 나는 강물이었다/ 너는 불꽃이었다/ 너는 시간이었다


이런 개념의 변화, 그리고 그것이 가리키는 성장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카이퍼이다. 이는 카이퍼의 자작곡이 완성되는 과정으로 보여진다. 카이퍼의 자작곡, 즉 “달의 발자국”은 달의 반대편에 있는 흔적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 달의 뒤편은 누구도 보지 못한 미지의 세상을 가리키며, 거기 남겨진 흔적이 자신의 발자국이라는 말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발자국의 존재를 막연히 주장하던 미완성된 상태와 달리, 완성된 곡은 그것이 ‘불가능한 이야기’라는 모든 사람들의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달에 살았으며 스스로 갖는 의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달 너머를 본 사람임을 믿는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특히 자신이 지금의 존재 이전에도 존재했음을 믿는다는 이런 강화된 선언은 카이퍼가 블루닷을 자신에게서 지울 수 없음을 깨닫는 장면에서 완성된다. 따라서 카이퍼에게 시간의 형태로 전개된 모든 시련은 한 번도 직접 만난 적 없는 존재인 블루닷에 대한 강렬한 소통, 즉 그가 자신의 내면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음을 확신하는 계기가 되며, 이를 통해 자신의 존재가 지금 여기의, 개인으로서 나 자신에게 한정될 수 없음을 깨닫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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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 아니라, 이 극은 관객의 존재를 통해 관계를 통한 영원성을 증명한다고도 볼 수 있다. 관객의 입장에서, 이 극이 그려내는 영원성은 환상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그들은 공연을 봄으로써 이를 증명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는 극장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극장은 지금 여기에서 펼쳐지는 스펙터클을 통해 효과적으로 공감을 자아내고, 관객은 가상적인 인물들에 대한 공감을 통해 그들의 존재를 완성시킨다. 특히 관객은 극이 보여주는 사건들이 자신이 겪지 않은, 낯설고 환상적인 사건일지라도,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 한계가 있을지라도 적극적으로 환상을 받아들인다. 공연 관람이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이라는 점도 이런 관객 태도와 참여의 정도를 강화시킨다. 공연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관객의 집중도로 인해 경험되는 정서가 훨씬 강화되며, 모두가 공연의 흐름에 일관된 방식으로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특히 <이터니티>에서 관객은 인물들의 음악과 함께하며 마치 ‘제 2의 카이퍼’처럼 인물들을 ‘기억한다.’ 관객들은 극중 ‘가정된’ 관객으로서 콘서트나 토크 쇼 등 극중 상황에서 자신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데, 특히 마니아 관객층이 많은 대학로 창작뮤지컬의 특성상, 이미 많은 관객들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숙지하고 무대 위 진행자의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한다. 최근 <이터니티>의 제작사인 R&D Works는 실제 음원 사이트에서 블루닷과 카이퍼의 노래를 발매하는 방식으로 공연 내의 가정된 관객, 그리고 현실의 관객들을 연결하는 효과를 강화시키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무대의 환상은 별개의 현실이 아닌 현실과 맞닿아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가상이 된다.

또한 이 극에서 시도된 음악적 표현은 기억함으로써 존재하도록 하는 것의 의미를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카이퍼가 방송국에서 노래를 부른 후 자신이 블루닷의 존재를 지울 수 없음을 선언할 때, 내가 너를 기억한다는 카이퍼의 말과 음악으로서 되살아나는 블루닷의 목소리는 루프스테이션(음악의 일정 마디를 반복해 돌릴 수 있도록 하는 기기)을 통해 녹화 및 반복되며, 이들이 무대 위를 떠났을 때조차 서로 중첩되어 울려 퍼진다. 따라서 관객은 극중 반복적으로 보여진 아카이브와 기억의 형태로서 인물들이 부재하되 존재하는 양상을 직접 볼 수 있고, 이로부터 극이 말하는 ‘영원’의 이미지를 받아들일 수 있다. 이를 통해 <이터니티>는 단순하게는 누군가와의 비일상적인 관계를 경험토록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재고하며 존재를 고정된 것이 아닌, 유동적인 잠재성을 가진 것으로 인식하도록 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면서도 추상적인 개념이기에, 이런 극의 관람은 자신을 구성하는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고찰로도 이어질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터니티>에서 보여지는 인물 간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소통은 존재 자체로 수많은 기억과 경험, 그리고 관계로부터 이루어져 있으며 태초에는 하나의 기원으로부터 출발한, 소외되지 않은 존재로서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흥미롭게도 나는 이런 주제를 불러일으키는 공연을 또 최근에 보았다. 국립극단의 <창작공감: 작가> 프로그램으로 공연된 신효진 작가의 연극 <모든>에서 이런 가능성은 보다 환상적이고, 불길함과 아름다움이 혼용된 분위기 속에서 그려진다. 이 작품에서 인간은 합리적이고 정돈된 시스템 속에 존재하지만, 그 어느 순간에도 진정 혼자로서 존재할 수 없다. 이 극에서 그려지는 인간의 육신과 정신은 그것이 기인한 생태계의 관계들로 인해 그 자체로 타자성을 가지며,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 및 호환될 수 있고 죽음으로도 진정 끝나지 않는다.



2. 국립극단 [창작공감: 작가] <모든> : 개체성의 환상에 맞서는 '모든 것'의 환상


독특한 SF적 상상력과 이미지를 특징으로 하는 연극 <모든>은 환경이 크게 파괴되어 인간들이 돔이라는 비오염 지역에서만 살아가는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돔 속의 삶들은 철저한 인위적 통제 하에서 태어나며, 일정 나이가 되면 ‘라이카’라는 인공지능 시스템에 등록되어 이에 전적으로 의지한다. 주인공 ‘랑’은 등록을 앞두고 있는 상태일 뿐 아니라 시스템이 아닌 생물학적인 결합에 의해 탄생한 아이이기 때문에 경계에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페’라는 정체불명의 노인이 나타나, 돔 밖으로 나갈 방법을 찾으려는 그의 목표에 동조하도록 한다. 페의 목표는 아들-실제로는 죽은 아들에게서 자라난 버섯-을 심을 땅을 찾는 것이다. 랑은 자연적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틈’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그 과정에서 랑은 없어진 줄 알았던 자연을 발견하고, 자신을 마치 균사처럼 파편화된 존재로 재발견하고, 극은 거대한 울타리처럼 식물과 균사가 덮쳐오는 와중에 랑과 라이카가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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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극에서는 인간과 비인간, 혹은 개체와 환경 사이의 관계로부터 발생하는 개인의 해체가 환상적이고 폭넓게 그려지고 있다. 인물들은 환경으로부터 단절되어 있지만 이는 생물학적, 혹은 무의식적인 기억으로 남아 자신이 아는 것 이상의 현실과 인물들을 연결한다. 랑은 자연적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자연의 상징인 ‘흙’을 매개로 다른 인물들 앞에 비현실적으로 나타나며 교류하곤 한다. 즉 흙이 있는 곳에는 랑의 존재가 모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랑의 생물학적 아버지인 ‘가리’는 늪에서 옮은 무좀균으로 고통받는데, 그는 늪에 간 꿈을 꾸었을 뿐 실제로 간 적은 없다. 이후 그는 이 가려움증이 그의 존재 증명이라는 말을 듣는다. 따라서 항상 라이카에 의해 지배된 현실에 불만을 가지며 더 많은 선택지를 바라던 그의 행동은 현실적인 상황과 별개로 기원적, 무의식적으로 체화된 그의 ‘오염 상태’에 기인한다. 이런 오염의 가능성은 랑의 어머니인 ‘미무’에게서도 확인된다. 그가 시스템이 아닌 선택에 따라 가리와의 생물학적 결합을 했다는 점, 그럼에도 그에 대한 설명 불가능한 증오를 느낀다는 점은 그의 존재를 이성적인 시스템으로부터 분리시킨다. 페가 버섯을 아들과 동일시한다는 기묘함 또한 극의 주제를 반영한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본인의 기억과 신체적 개별성을 벗어난 세계와의 관계를 여전히 가지고 있으며, 개체를 초월해 존재할 수 있는 한편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릴 가능성을 가진다. 이런 오염 상태는 개인들을 괴롭게 만들 뿐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 낸 시스템과 충돌하지만, 보다 총체적인 존재에 대한 고찰을 발생시킨다. 따라서 시스템으로부터 방출된 인물들, 대표적으로 가리는 버려진 것, 더러운 것, 그리고 죽음은 어디로 사라지는지에 대해 질문하며 합리적인 제도에 의해 은폐된, 혹은 타자화된 존재와 과정에 대해 의문시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는 위와 같은 시원적이되 통제할 수 없는 관계로부터 벗어나려는 경향과 관련된다. 이는 기본적으로 인물들이 라이카와 연결되어 분명히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확인될 수 있다. 이들의 선택은 라이카에 의해 이루어지고 그들의 감각 등도 통제되며, 라이카를 통해 인물들은 불필요한 감각 및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특히 ‘킴코’라는 인물과 라이카 사이의 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킴코는 흙을 연구하는 것에 집착하면서도 자신이 더 나은 선택을 하지 못함에 괴로워하는 면모를 보이며, 이는 환경에 대한 내재된 관계와 이를 통제하려는 인위적인 열망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런 갈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킴코는 라이카에게 점점 더 많은 통제권을 넘기게 되고, 최종적으로는 자신을 데이터화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는 곧 생물학적 죽음을 요한다. 킴코 이전에도 원인 불명으로 (하지만 결국 라이카에 의해) 자살한 사람이 있었다는 암시는 극중 불안감을 형성한다. 결국 완전히 데이터화된 킴코는 기계 더듬이가 자라난 모습으로 등장해 ‘오염된’ 인물들을 추방하는 비인간 행위자가 된다. 문제는 이런 과정이 라이카가 인간 보존의 목적성을 상실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합리적인 판단이 살인을 야기하고, 인간을 위한 환경 보존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졌을 때 라이카는 이제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모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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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인간과 환경,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는 서로 충돌하는 듯하다가도 결국은 내재된 타자와의 관계 가능성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만나게 되며, 이는 결말에서 랑과 라이카의 마주함으로 구현된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환경이 그렇듯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는 서로간의 상호 침투를 보여주며 인위적인 통제도, 인간의 완전한 비인간화도 아닌 양자의 불안정한 존재 상태로 이어진다. 돔 밖으로 나온 랑과 존재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한 라이카는 서로에게 "안녕"이라는 인사를 건넨다. 이는 따뜻하면서도 불길한 느낌을 준다. 내재화된 타자성에 대한 이 모든 발견은 미무, 가리, 그리고 킴코가 보여준 자기 파괴를 배경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죽음이 필연적이고 시체가 수많은 생명체들과 뒤엉켜 흙으로 사라져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키듯, 존재가 그 자체로 관계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복수적인 존재를 담고 있다는 이해는 죽음, 부패의 이미지와 함께 전개된다.




이렇게 <모든>은 인간적인 통제의 환영이 존재하기 이전의 “모든 것”으로서의 시원적인 존재 상태를 상기시킨다. <이터니티>가 인물들의 기억을 통한 인간적인 연대를 보여준다면, <모든>은 관계를 통한 존재 상태 및 영속성이 비인간적인 세계의 발견으로까지 이어짐에 초점을 둔다. 따라서 <모든>의 결말은 명백히 아름답지도, 끔찍하지도,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덮쳐오는 균사를 받아들이는 것 같은 자기 소멸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그것이 진정한 존재 상태에 대한 고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극 내내 인물들은 마치 부유하듯 둥둥 뜨는, 사실적이지 않은 움직임을 기본으로 한다. 이들은 단절되고 위태로워 보이며, 때로는 과장된 기계음을 입으로 내며 뻣뻣이 움직인다. 이는 기술화된 환경에서의 인물들의 모습이 결코 자연적이고 건강한 것으로 여겨지기 어렵게 만든다. 또한 이들은 박스를 펼쳐놓은 것처럼 보이는 빈약한 보호막을 둘러싸기도 한다. 이들은 막을 둘러싸고 웅크리거나 문을 닫아 그 작은 세계 안에서 빙빙 돌곤 하지만, 돔이 그렇듯 이는 많은 틈을 가지고 있으며 랑의 경우에는 아예 투명한 소재로 만들어져 있다. 이런 돔, 그리고 막의 이미지는 존재가 분명한 경계를 가진 개별적인 상태로서 존재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반면에 ‘모든 것’으로서 자신을 재발견하는 것은 기존의 허위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일 뿐 아니라 물질적으로 확인 가능한 자기 존재보다 더 오래된 기억을 가진 상태로서 이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페는 랑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설사 모든 것으로서의 기원을 발견함으로 인해 자신이 사라지는 것 같을지라도, 이는 끝이 아닌 시작이 될 것이다.

“일단 열어. 그러면 네가 원하는 게 뭐였는지를 알게 될 거다. 저 너머엔 그런 것들이 있어. 문이 있기 전엔 나눠지지 않았으니까. 모든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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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이터니티> 공연사진은 제작사 R&D Works X 계정에서 가져왔다. (@rndworks)

연극 <모든> 공연사진은 국립극단 홈페이지에서 가져왔다. (https://www.ntck.or.kr/ko/performance/info/257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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