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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한 Apr 02. 2021

산책가가 보내는 편지

2021년 3월 20일

 당신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이 얼마 만인지 잘 모르겠군요. 어쩌면 처음인지도 모릅니다만 분명한 것은 저는 지금 또 다른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변변하게 이룬 것도 없는 사람이 거창하게 시도만 하는 것 같아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게 될 것이 조금 두려웠습니다만, 정말 감사하게도 곁에서 지켜봐 주는 좋은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소로우가 쓴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에게도 그 편지가 도달했으면 좋으련만. 저는 그 편지를 읽고 산책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산책가가 된다는 것은, 삶의 중심과 본업을 산책으로 삼는다는 말입니다.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그것을 직업으로 삼는다니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혹시 당신은 산책을 하면서 신과 자연, 강물 위의 새와 길가의 꽃들과 친밀한 대화를 해보셨는지요? 거기서 존재의 어떤 충만함을 느껴보셨는지요? 새로운 심장에 피가 공급되고, 생명의 향기가 담긴 호흡을 하게 되는 경험을 해보셨는지요? 영원이라는 시간의 실마리를 느껴보셨는지요?


 제가 그렇게 훌륭한 사람도 아니지만, 혹시 뭐가 되더라도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벌더라도 산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그런 신성한 것들은 돈으로 살 수도 없을뿐더러, 그것이 없으면 저는 곧 죽은 사람과 같게 될 것입니다.

 매일 산책을 하며 돈은 적당히 쓸 만큼만 벌고 지낼 만한 외진 곳이 있다면 당장에라도 가고 싶습니다만, 아직 그런 곳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그나마 집 근처에 한강으로 이어지는 좋은 산책로가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입니다.


 편지를 쓰다 보니 얼마 전에 백매화가 저에게 말을 건네었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저는 그의 이름도 몰랐습니다만, 그는 친절하게도 그가 가진 향기를 아낌없이 베풀어 주었습니다. 오늘 그는 바람과 비를 맞으며 많은 꽃잎을 떨어뜨렸지만, 슬퍼하는 기색 하나 없이 웃으며 저를 맞이해 주었고, 자연의 이치를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변변찮은 사람의 글이라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쩌면 당신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거나 제가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제가 깨달은 것들을 정리하고 또 게을러지지 않도록, 틈틈이 또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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