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제국의 영광과 유산-에필로그
오스만제국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오스만제국의 가장 번성했던 황금기는 술래이만 대제 시절이었다. 이 시대에 오스만제국의 꿈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지정학적으로 아시아와 유럽이 맞닿은 지점에 제국의 기틀을 세운 오스만 투르크인들의 꿈은 단순한 영토 확장 이상의 것이었다. 그들은 이슬람 세계의 중심이자 수호자로서, 모스크를 중심으로 신앙을 전파하고 상호 존중과 법의 원칙에 기반한 통합 사회를 꿈꾸었다.이때 오스만 제국은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 관용의 통치를 통해 지중해와 유럽, 중동을 넘나드는 번영의 상징이 되기를 열망했다.
특히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은 이러한 오스만 제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상징적이고 이상적인 곳이었다. 비잔티움 제국의 심장을 차지한 이곳에서 오스만 제국은 전통과 혁신이 융합된 도시 건축을 발달시켜 웅장한 모스크와 궁전, 공공시설을 통해 종교적, 문화적 위대함을 표현했다. 도시 설계와 건축물에는 이슬람과 비잔티움, 페르시아 스타일이 혼합되어 제국의 이상적 모습과 다문화적 유산을 보여주고자 했다.
궁극적으로, 오스만 제국의 꿈은 동서양을 아우르며 화합과 번영을 추구하는 대제국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 꿈은 실크로드를 따라 이어지는 상업적 번영과, 세심하게 조직된 관료제와 정비된 제도를 통해 이루어지며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스만의 황금기’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필자가 부르사와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탐방했던 오스만 제국의 유적과 문화유산은 그들의 역사였고 꿈이었다. 한때 지중해 해상권을 장악하고 강성한 제국으로 동서 교역로의 허브에 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그들은 이곳에서 제국의 첫 발을 내딛으며, 한때 소박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았던 그들의 꿈을 키워 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품었던 열망과 다양한 문화적 발상과 추구하고자 했던 이상이 하나하나 퍼즐이 맞추어지며 대제국을 이루었다.
특히 울루 자미에서 마주한 장엄한 돔과 미나렛은 단순한 종교 건축을 넘어, 신앙과 권력의 중심으로 성장한 제국의 상징이었다. 사원 내부의 고요하고 정갈한 아름다움 속에서 필자는 오스만 투르크인들의 이상을 보았고 그들과 함께 숨쉬는 듯한 감동을 느꼈다. 간접적이지만 독자들은 어떤 느낌을 받았을 지 매우 궁금해진다.
튀르키예 여행을 시작하는 이스탄불에서의 첫날, 이 도시는 거대한 장막을 두른 채 그 웅장함을 미묘하게 감추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유럽 대륙과 아시아 대륙이 만나는 경계 지점에 위치한 이스탄불의 진가는 튀르키예 중부를 지나 중남부 돌아 서쪽 해안의 역사도시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왔을 때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금각만을 사이에 두고 아시와와 유럽의 두 대륙이 나뉘어져 있지만, 이스탄불은 세계사의 커다란 문명과 유산을 품은 두 세계를 이어주는 지점이었다.
튀르키예 땅은 한 발짝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그리스와 로마, 오스만 제국은 물론 고대 문명의 흔적을 드러내며 무거운 역사의 숨결을 뿜어냈다. 동서양의 문화가 서로 융합된 제국의 유산은 이슬람의 세계관과 가치관으로 구체화되었고 섬세한 그들의 예술적 영감과 결합되어 제국의 이상을 담아내고 있었다.
부르사와 이스탄불의 유적들은 단순한 역사적 유산이 아닌, 오스만의 꿈과 그들이 남긴 문화적 비전을 담고 있는 시간의 유리병과도 같았다. 너무나 투명하게 들여다 보이는 유리병 안에 그들의 역사적 유산이 고스란히 남아있었고, 오늘날까지도 박물관에 박제된 유물이 아닌 튀르키예 사람들의 실생활 가까이에 살아 숨쉬고 있었다. 마흐메트 2세가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한 해인 1453년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이미 60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튀르키예인들은 과거 선조들의 유산과 함께 오늘을 살아가고 있었다. 여행자의 시각에서 볼 때, 이러한 점은 매우 매력적이자 감동적이었다.
필자는 오스만 제국의 유산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세상을 이해하고자 했는지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오스만 제국은 한때 강성한 정복자이자, 동시에 그들이 통합했던 다양한 문화와 관습을 존중하며 발전했던 이상적인 사회를 꿈꿨다. 이 여정의 끝에서 필자는 오스만 제국의 유산이 단지 과거의 유물로 남지 않음을 느꼈다. 톱카피 궁전과 아야 소피아, 부르사의 옛 성곽을 보며 이들의 역사가 압축된 시간을 걷고 있는 필자를 발견하기도 하였다.
서쪽 해안으로 향하면서 필자는 더 넓은 터키의 풍경과 지중해 바다가 한눈에 펼쳐지는 요충지들을 지났다. 성경이나 문헌에서만 듣고 보던 고대 유적들이 시야에 들어올 때, 알 수 없는 경이로움이 필자를 압도했다. 긴 여정과 마주했던 이 땅의 깊이를 안고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온 필자에겐 더 이상 첫 날의 낯섦은 없었으며, 여행의 시작과 끝을 모두 품은 상징적이고 친근감이 느껴지는 익숙한 공간이었다.
오늘도 금각만 다리 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튀르키예 국민들이 굉장한 인플레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업자가 늘어나면 금각만 다리위에 낚시꾼이 더 늘어난다고 한다. 공식적인 인플레가 세 자릿수에 가까운 두 자릿수라는 사실은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치라 매우 놀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겐 “인샬라”라는 긍정적인 말이 있다. 이 긍정적인 국민성이 “인샬라”로 인해 크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긍정의 힘은 희망을 품고 있기에 잠재된 그 능력은 생각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발산된 예는 과거 인류 역사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오스만 제국의 영광과 유산이 그들 가까이에 살아 숨쉬는 한, 오스만 제국의 꿈은 여전히 오늘날 튀르키예와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이러한 그들의 잠재력을 ‘인샬라’에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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