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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를 베고 누운 발렌시아의 아침, 그리고 몬세랏

by 조영환

여행의 계절, 다시 걷는 스페인-지중해를 베고 누운 발렌시아의 아침, 그리고 몬세랏



지중해를 베고 누운 발렌시아의 아침


새벽 5시, 눈을 뜨자마자 하루가 시작된다. 샤워를 마치고 호텔 조식으로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는다. 여느 때처럼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노트북을 켜 음악을 들으며 어제 남긴 여행 메모를 다시 살펴본다. 주변이 고요한 이른 새벽, 이 시간이 특히 좋다. 집중이 잘 되는 몇 시간 동안 평온한 시작을 즐길 수 있다.


잠시 여권을 확인하고 짐을 정리하며 아침을 보내는 이 시간, 여행지에서도 일상처럼 알차다. 창밖을 내다보니 발렌시아의 거리가 바빠진다. 번잡했던 어제의 흔적을 지우려는 듯 거리 곳곳에서 청소가 한창이다. 늘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이 도시에서, 새로운 하루가 깨어나는 순간이다.


문득 시계를 보니 어느새 7시 30분. 우리가 머물고 있는 지중해변의 도시, 발렌시아도 서서히 하루를 시작한다. 저 멀리 바다에서부터 어둠에 잠겨 있던 도심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환히 빛나는 라이트를 켠 차량 행렬이 도로 위를 따라 질서 정연하게 이어진다. 전형적인 도심의 아침 풍경이다.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간 도로 위, 차량들은 이내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진다.


수평선 위로 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바다는 다시 빛의 향연을 시작한다. 붉게 물든 하늘이 바다와 맞닿으며 깊은 색감을 만들어내고, 원근 곳곳에서 야자수 나무 가지들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나뭇가지 사이로 붉은 하늘이 살며시 걸려 있는 풍경은 이른 아침의 발렌시아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아침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다. 하늘을 향해 곧게 자란 싸이프러스 나무들, 그 뾰족한 검은 실루엣이 붉게 물든 하늘과 맞닿아 있다. 죽은 자의 영혼이 하늘에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무덤 주변에 심는다는 이 나무들은, 대성당의 종탑 위로 높이 쌓아 올린 수많은 탑들과도 묘하게 닮아 있다.


강렬한 햇살이 비추자 성당의 종탑은 우뚝 솟은 기세로 빛을 받아낸다. 빛은 나무 그림자 사이로 흩어지며 여행자의 마음속에 조용히 스며든다. 멀리 산꼭대기, 이름 모를 성채는 붉은 태양 아래 오래된 위용을 드러내며, 이제는 시간 속에 박제된 존재처럼 서 있다.


이곳의 태양은 늦게 떠오르지만 그만큼 강렬하다. 아직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산 아래, 붉은 태양빛이 마을로 내려오며 고요한 움직임을 더한다. 하늘 위로 길게 늘어선 띠구름들은 마치 태양의 눈썹처럼 낮게 드리워져 있고, 다가오는 햇살을 반갑게 맞이한다.


지중해에서 떠오른 태양은 어느새 산언덕을 지나 봉우리에 걸렸다. 그 찬란한 순간처럼, 이른 아침의 설렘으로 가득한 여행자의 마음도 이미 산봉우리에 걸려 있다.



몬세랏 Montserrat


발렌시아를 떠나 네 시간 남짓 달려왔다. 창밖으로 이어지는 풍경은 어느새 뾰족한 바위산들로 채워진다. 마치 톱날처럼 이어지는 그 형상은 단조롭던 평지를 단숨에 벗어나게 한다. 가까워질수록 선명해지는 몬세랏의 윤곽. 이곳은 바르셀로나 근교에 자리한 몬세랏(Montserrat), 울산바위의 먼 사촌쯤 되는 인상을 주는 산이다.



왜 몬세랏일까? Mont(산)과 serrat (톱니), 즉 이네들이 쓰는 카탈란어로 ‘톱니 모양 산’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 설명이 필요 없는 풍경이 내내 이어진다. 주변은 평지임에도 유독 몬세랏만 솟아오른, 단층작용으로 인하여 산맥에서 따로 떨어져 나와 있는 산 덩어리, 주변 침식으로 나타나는 커다란 암석괴로 이루어진 산이다. 자연이 빚어낸 이 불가사의한 조형물은 그 자체로 신비롭다.


지질학자들은 몬세랏 같은 이러한 형태를 ‘산괴(山塊, Massif)’라 부른다. 단단히 응집된 바위덩어리가 침식과 풍화에 굴하지 않고 그 뼈대를 드러낸 산. 거대한 자연의 손길에 의해 조각된 이 산괴는 마치 평범한 주변 풍경에 던져진 도전장 같다.

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본 몬세랏은 내내 경외심을 자아낸다. 드넓은 평지 위로 솟아오른 기묘한 암석들은 주변의 나지막한 대지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마치 평화로운 자연을 배경으로 거대한 조각을 올려둔 듯 독보적인 형상을 만들어 낸다. 그 모습은 가히 경이로운 예술작품처럼 보인다.


평범한 풍경 속에서 홀로 돋보이는 이 뾰족한 산줄기는 자연이 수백만 년 동안 깎고 다듬어낸 흔적이었다. 카탈루냐의 하늘 아래 거침없이 서 있는 몬세랏. 그 존재는 단순한 지질학적 현상을 넘어, 그곳에 서야만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신비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순간, 자연이 깎고 다듬어낸 이 뾰족한 산줄기가 카탈루냐의 하늘 아래 거침없이 자리 잡은 이유를, 깨닫게 된다.


가까스로 붙어있는 듯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바위가 조금은 불안하다.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바위가 끝없이 톱니처럼 이어지는 바위산이다. 바람만 불어도 흔들릴 것 같다. 손가락으로 튕기면 곧 튕겨 나갈 듯 뾰족뾰족 날 선 바위들이 이어진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바위산 풍경을 마치 피아노 건반을 누르듯이 하나하나 누르며 몬세랏으로 오른다. 자연이 남긴 경이로운 유산이 낯선 방문자에게 말을 걸어오는 몬세랏 풍경은 그렇게 속삭이듯 우리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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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해발 720m에 위치한 몬세랏 전망대에 올라섰다. 이곳은 수도원과 순례자들이 묵는 숙소, 기념품 상점들이 함께 자리한 곳이다. 둥근 벽체와 아치형 구조의 뷰포인트인 사도들의 전망대(Mirador dels Apòstols)에서, 몬세랏의 경관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좌우의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잠시 그 자리에 머물며 자연이 만들어낸 웅장한 풍경에 감탄하고, 몬세랏의 고요함 속에서 여유를 느끼며 알 수 없는 신비감과 성스러운 경외감에 깊이 빠져든다.


전망대 맞은편, 계단처럼 이어진 단층지형 언덕 위로 그림 같은 시골길이 펼쳐진다. 마치 수놓은 듯 예쁘게 자리한 마을 풍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실오라기처럼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도로는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며, 몬세랏과 마을 사이를 흐르는 료브레가트(El Llobregat) 강은 그 물길을 따라 사람들의 삶이 이어지는 마을들을 지나, 결국 지중해로 흐를 것이다. 우리는 전망대에서 몬세랏이 선사하는 지중해까지 내다보이는 전경을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본다.


약 900만 년 전에 해저에서 융기한 몬세랏은 한때 200년간 프랑스와 국경을 이루었던 곳이다. 그 흔적이 남아 있는 이 지역의 구릉지에는 작은 마을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시선을 몬세랏 동쪽으로 돌리면, 단층 절개지 위에 위치한 모니스트롤(Monistrol de Montserrat)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모니스트롤은 몬세랏산과 동쪽 료브레가트 강가에 자리한 카탈루냐 자치구의 중심 마을로, 이곳은 지역의 중요한 거점이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료브레가트 강은 남쪽으로 흐르며, 그 강을 가로지르는 빌로마라 고딕 다리(Pont Gòtic de Vilomara)가 모니스트롤과 연결되어 있다. 이 다리는 현지인들 사이에서 'Pont Gòtic'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Santiago_de_Compostela


‘성 야고보의 길’은 엘카미노, 카미노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또는 산티아고 순례길로 불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야고보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걸었던 길로 전해진다. 이 길은 9세기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된 사건을 기점으로, 유럽 전역에서 수많은 순례자들이 이 길을 따라 걸으며 신앙을 다져왔다. 순례의 최종 목적지는 바로 성 야고보의 유해가 안치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위치한 성당으로, 이곳에서 순례자들은 믿음을 새롭게 하고 여정을 마친다.


티아고 순례의 배경에는 당시 이슬람 군대의 위협 속에서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보루를 지키려는 정치적인 목적이 있었다. 8세기 후반부터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를 침략하면서 기독교 세력은 국토를 방어하기 위해 연합하고, 그 과정에서 성 야고보를 스페인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게 되었다.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었고, 이를 기리기 위해 순례길이 만들어졌다. 이 순례길은 단순한 종교적 의례에 그치지 않고, 국가적인 정체성을 확립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점차 많은 순례자들이 이 길을 걸으며 영적인 의미와 더불어 역사적 가치도 함께 느끼게 되었다.


"혼자 걷는 사람만이 진정한 인생을 알 수 있다"는 말은 순례길을 걷는 과정에서 얻는 내적 깨달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길 위에서의 고독과 고난 속에서 자신과 마주하고, 그 과정을 통해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깊이 탐구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이 길은 단순히 물리적인 여정이 아닌, 영적인 순례이자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몬세랏(Montserrat)과 엘 카미노(Camino de Santiago)는 스페인의 중요한 순례지로서, 역사적으로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몬세랏 수도원(Montserrat Monastery)에는 '검은 성모상'(Virgen de Montserrat)이라는 유명한 성상이 있으며, 이는 많은 순례자들에게 영적인 힘을 주는 상징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이 성모상은 순례자들이 기도하고 축복을 받기 위해 방문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였다. 몬세랏은 스페인의 북부로 향하는 엘 카미노와는 다소 떨어져 있지만, 그곳에서의 기도는 산티아고 순례를 시작하거나 완주하기 위한 영적인 준비를 돕는 중요한 의식을 차지했다.


몬세랏에서의 기도와 축복을 받은 후, 일부 순례자들은 엘 카미노를 통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달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몬세랏과 산티아고는 기독교 신앙에서 중요한 두 성소로 여겨지며, 이들 간의 연결은 많은 순례자들에게 신앙의 여정을 더욱 의미 깊게 만든다. 몬세랏은 카탈루냐 지역의 신앙 중심지로서, 그곳을 경유하는 많은 순례자들에게 깊은 신앙의 다짐과 영적 축복을 선사하는 성지로 여겨지고 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순례자들이 몬세랏을 거쳐 산티아고로 향하며, 두 장소는 서로 연관된 순례 경로로 여겨지고, 그 영적 의미는 수 세기 동안 이어져 오고 있다.


모니스트롤 마을에서 수도원까지 걸어서 오르는 대표적인 몬세랏 순례길 Camí de Montserrat이 산을 에워싸듯 구불구불 산자락을 휘감으며 몬세랏 정상으로 오른다. 절벽으로 길을 낸 잔도만 내려다보았을 뿐인데도, 가슴이 마구 쿵쾅거린다. 이 길을 걸으며 순례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곳을 향해 갔을지 상상하게 된다. 기회가 된다면, 나도 이곳에서 온전히 저 순례길을 따라 몬세랏으로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으로 스쳐서이지 싶다. 아마도 그 길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신앙과 의지의 여정일 될 것이다.

몬세랏_산악열차01_Google_캡쳐


몬세랏을 오르는 길은 각기 다른 난이도와 풍경을 자랑하는 여러 코스로 나뉘어 있다. 수도원 주변을 걸어 돌아보는 비교적 쉬운 코스인 Vía Crucis de Montserrat에서부터, 뾰족뾰족한 톱날을 클라이밍 하며 도전하는 Pla de la Trinitat 같은 난이도 높은 하이킹 코스까지, 선택의 폭이 넓다. Miranda de Santa Magdalena는 푸니쿨라를 타고 30여 분만에 카탈루냐 평야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코스이며, 가족과 함께 오를 수 있는 중간 난이도의 Cova de l'Arcada는 기암괴석으로 이어지는 장엄한 전망을 제공한다. 또, 다소 전문적인 코스를 원한다면 La Portella에서는 몬세랏 산괴의 멋진 풍광과 동굴, 싱크홀을 경험할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코스들이 모니스트롤 마을을 비롯해 동쪽, 남쪽, 서쪽에서 몬세랏으로 이어지고, 그 길을 걷는 순례자들의 모습은 여기저기에서 간헐적으로 보인다. 그만큼 이곳은 순례의 길로서도, 산티아고 순례길 못지않은 깊은 의미를 지닌 곳이다. 수도원까지 오르는 길을 따라 걷는 순례자들의 기도는 그 자체로 이미 응답을 받았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이 길은 단순히 신체의 여정이 아닌, 영혼의 여정이기도 하다.


몬세랏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에 빠져들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무아지경에 빠져드는 듯했다. 자연과 함께하는 이 순간은, 마치 세상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온전히 그 자리에 녹아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연을 벗 삼아 노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이곳 몬세랏은 그야말로 깊은 인상을 남길 수밖에 없는 선물이었다.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몬세랏은 단순한 풍경 그 이상으로 내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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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퉁불퉁한 기둥을 모아 세운 듯 우뚝 솟은 몬세랏의 정상은 마치 자연이 만든 거대한 조각상 같다. 카탈루냐 평원을 내려다본 후, 이제는 이 웅장한 산을 좀 더 가까이에서 바라봐야겠다는 생각 끝에 산을 올려다보았다. 싸이프러스 나무들이 마치 몬세랏을 호위하듯 둥글게 산을 감싸며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시선을 왼쪽으로 돌리니, 낙타 등처럼 솟아오른 암봉들이 마치 "나도 몬세랏이다."라고 외치는 듯하다. 전체를 하나로 놓고 보니 가히 절경이 아니라 할 수 없는 석상으로 가득 채워진 몬세랏이다.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몬세랏은 마치 '만물상(萬物相)'과도 같았다. 이네들은 어찌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한 자리에 모인 온 세상'이란 뜻이다. 어찌 이리도 모질게도 바위로만 이런 멋진 풍경의 산이 되었을까... 싶다. 바위틈으로 드문드문 키 낮은 관목들만이 보이는 몬세랏,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자립 잡은 수도원, 눈으로 들어오는 몬세랏의 풍경이 믿기지 않는 순간이다.


호세 마리아 수비라치(Josep Maria Subirachs)의 작품 ‘천국의 계단’은 마치 지중해에서 떠오르는 강렬한 태양과 함께 카탈루냐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한 계단 한 계단 밟아 오를 때마다 천국에 이를 수 있을 것만 같은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내는 이 작품은, 몬세랏의 풍경과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수비라치의 작품은 단순히 조각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가 만든 천국의 계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신성한 천국에 이르는 순간을 경험하게 만든다.


호세 마리아 수비라치는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수난의 파사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조각가로, 또한 올림픽 공원에 전시된 ‘하늘기둥(The Pillars of the Sky)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가우디의 영향을 받으며 그를 잇는 스페인의 국보급 작가이자 건축가로 자리매김한 수비라치는, 그의 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강렬한 시각적 인상뿐만 아니라, 깊은 영적 감동을 전하고 있다. 천국의 계단은 그런 그의 예술적 깊이를 잘 나타내는 작품으로, 그가 추구한 미적, 철학적, 그리고 영적인 차원들이 모두 응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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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편 절벽에 뭔가 글자 같은 형상이 보였다. 뭘까? 절벽에 누군가 글자를 새겨 놓았을 리도 없고, 각자도 아닌 것 같았다. 아마도 자연의 빛과 그림자의 조화로 생긴 일시적인 착시일 것이다. 아치형 뷰 포인트를 통해 빛이 특정 각도로 투사되며 절벽에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그것이 마치 글자처럼 보였다. 순간, 신이 계시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어렸을 때 봤던 십계라는 영화의 장면이 떠올랐다. 그런 신비로운 느낌은, 아마도 사람의 상상력과 감성이 만들어낸 결과일지도 모른다. 자연 속에서 마주한 이 신비로운 체험은, 그 자체로 내 마음을 깊고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순간이었다.



몬세랏 관람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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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세랏에는 세 가지 중요 관람 포인트가 있다.

첫째는 수도원의 성가대, 에스꼴로냐(Escolania de Montserrat)이다. 세계 3대 소년합창단 중 하나로 유명한 이 성가대는 오후 1시에 있는 성가대 연습을 보러 몬세랏을 방문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로 명성이 자자하다. 이곳에는 에스꼴로냐 음악대학도 자리하고 있다.

https://youtu.be/VNGBS3sckvY?si=08ZOTHAzqlP1wOdk



또한, 검은 성모마리아 상이 전시된 성당이다. 이 성모상은 특별한 기도를 통해 기도의 응답을 받는다고 전해져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는다. 성당으로 들어가는 길에 길게 늘어진 줄을 보니, 대부분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 따라서 몬세랏에 도착하면 바실리카 성당으로 가서 1시 이전에 검은 성모마리아 상을 보고, 1시 이후에는 성당에서 소년합창단의 성가를 들으면 된다. 에스꼴로냐 소년합창단의 천상의 소리를 들으며 몬세랏을 마주한 여행자는 경이로운 신비감과 영적 충만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헌 책방에서 발견하고 세상에 내놓은 파블로 카잘스가 이곳 수도원에서 출발한 에스꼴로냐 성가대 출신이라는 점이다. 그의 음악적 여정은 이곳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가 남긴 음악은 오늘날에도 몬세랏을 찾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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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몬세랏은 바르셀로나의 위대한 건축가인 안토니 가우디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영감을 얻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가우디는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건축을 추구한 대표적인 건축가로, 몬세랏의 기암괴석과 자연의 형상은 그의 건축적 상상력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곳의 자연과 풍경을 보면 가우디가 어떻게 자연의 요소들을 건축에 녹여냈는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몬세랏을 방문할 때,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성당을 관람하면, 가우디의 독특한 건축 세계와 그가 받은 영감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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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몬세랏에서 40분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코스를 따라 자연경관을 즐기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경험이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은 바로 검은 성모 마리아 상이 발견된 동굴인 Santa Cova이다. 이곳은 왕복으로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리며, 기암절벽 위에 자리한 수도원과 함께 자연의 웅장함을 만끽할 수 있다. 동굴 안에는 800년 전, 검은 성모 마리아 상이 발견된 이후 기도의 응답을 받은 순례자들이 남긴 물건들이 가득하다. 아기의 배냇저고리나 하얀 웨딩드레스와 같은 물건들이 그들의 기도를 대신해 놓여있다. 그래서인지 결혼을 앞둔 신자들은 물론, 가톨릭 신자가 아닌 젊은이들도 이곳을 많이들 다녀간다 한다. 이처럼 Santa Cova는 단순히 자연의 경이로움을 넘어서, 신앙과 기도가 담긴 성스러운 공간으로, 많은 순례자들이 잠시 발길을 멈추고 영적 여정을 되새기는 곳이다.



베네딕토회 수도원 산타 마리아 데 몬세랏 Santa Maria de Montserrat


몬세랏수도원_francis_P.villar_Lazano_디자인_대성당_정면_조각_예수와_사도들의_동상은_Agapit_Valmitz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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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전망대를 지나 성당으로 향했다. 상가를 지나면 좌측에는 산악기차 푸니쿨라를 탈 수 있는 기차역과

몬세랏 케이블카의 상부 역이 보인다. 상부 역 오른쪽에 있는 계단을 따라 오르면 벽면에 전시된 조각, 누가 봐도 딱 스타일이 호세 마리아 수비라치의 작품임을 알 수 있는 조각이다. ‘산 조르디 기사 (Saint George)’이다.


언어에 따라 "산 조르디"의 이름은 다양한 형태로 불린다. 스페인어에서는 산 조르헤(San Jorge), 로마어(라틴어 기반)에서는 산트 게오르기우스(Sanctus Georgius), 터키어에서는 생트 조르주(Saint George), 영어에서는 세인트 조지(Saint George), 프랑스어에서는 생 조르주(Saint Georges)라고 한다. 각 언어에서의 발음과 표기가 다르지만, 모두 동일한 성인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산 조르디는 오늘날 튀르키예 카파도키아 지역에서 태어난 그리스 혈통의 무장으로,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근위대원이었지만 기독교 신앙을 철회하기를 거부하고 결국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는 카탈루냐의 수호성인으로, 전설에 따르면 흉포한 용을 물리치고 공주를 구한 불멸의 성인으로 기억된다. 또한, 산 조르디가 물리친 용의 피에서 붉은 장미꽃이 피었다고 전해지며, 이로 인해 바르셀로나에서는 매년 4월 23일을 ‘산 조르디의 날’로 기념하며 축제가 열린다.


이 조각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산 조르디의 눈이 음각으로 되어 있어,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눈이 따라 움직이는 듯한 효과를 주어 더욱 생동감이 느껴진다. 우리는 그렇게 그 작품을 지나 성당의 파사드 앞에 다다랐다.


몬세랏 성당은 9세기에 세워졌지만, 19세기 나폴레옹의 공격으로 파괴되었고, 그 후 복원되어 현재의 모습에 이른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성물은 검은 성모 마리아 상(Virgen de Montserrat)이다. 12세기경, 한 양치기 소년이 빛을 보고 따라가 보니 그곳에 검은 성모 마리아 상이 놓여 있었고, 이를 수도원에 모시면서 이 상은 유명해졌다.


몬세랏은 카탈루냐의 가톨릭 성지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 이유는 나폴레옹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검은 성모 마리아 상을 지켰고, 프랑코 독재 시대에는 카탈란어 사용이 금지되었음에도 이곳 예배당에서는 카탈란어로 예배를 드렸기 때문이다. 이곳 성당의 파사드에는 열두 제자를 대성당의 조각으로 새겨 놓았는데, 이는 다른 성당들과는 달리 매우 인상적인 특징을 지닌다. 몬세랏 성당은 카탈루냐를 수호하는 검은 성모 마리아 상이 있는 성지로서, 깊은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푸니쿨라 Funicu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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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을 둘러보고 나온 우리는 상가에 들려 구경을 하고 노점상까지 순례(?)를 한 후에야 산악기차 푸니쿨라 Funicular를 타고 몬세랏을 내려온다. 기차보다는 강삭철도(鋼索鐵道 Cable Railway)가 맞지 싶은데, 레일 위에 설치된 차량을 와이어로 견인하여 운행하는 철도를 강삭철도라 한다. 이곳의 강삭철도는 경사가 제법 가파른 경사면에 설치하였다. 이런 경우 경사면철도(傾斜面鐵道 Incline Railway) 또는 케이블카(Cable Car)라고도 하는 푸니쿨라는 제법 속도가 빠르게 몬세랏을 내려오고 우리는 빠르게 지나가는 카탈루냐의 아름다운 풍경을 내려다본다.


우리나라에도 일제강점기 때, 영동선 통리역에서 통리재 구간을 화물용 강삭철도로 운영한 적이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 구간을 걸어서 이동해야 했고, 강삭철도는 물자 수송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 강삭철도는 1963년에 폐지되었고, 이후 오랜 시간 동안 그 자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남았다. 하지만 2014년, 푸니쿨라로 복원되어 현재는 관광용으로 운행되고 있다. 이 복원된 푸니쿨라는 당시의 강삭철도가 가지던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며, 지금은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매력적인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Brogi,_Giacomo_(1822-1881)_-_n._5231_-_Contorni_di_Napoli_-_Versante_della_f


푸니쿨라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노래인 **‘푸니쿨리 푸니쿨라’**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이 노래는 산악철도를 타고 등산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작곡된 배경은 18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폴리 시청은 베수비오 산으로 오르는 기차를 설치했지만, 사람들은 그 기차를 타기를 두려워했다. 이유는 베수비오 산이 활화산이었기 때문에, 불을 뿜는 산으로 기차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 위험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작곡가 루이지 덴차와 작사자 페피노 코투르코는 노래를 만들었다. 노래의 가사는 사람들이 산악기차를 타고 베수비오 산으로 올라가자고 권유하는 내용이었으며, 이로써 사람들은 두려움을 덜고 기차를 타게 되었다.


노래 제목 ‘푸니쿨리 푸니쿨라’에서 푸니쿨라는 바로 산악기차의 이름으로, 음률과 잘 맞아떨어지도록 선택된 단어였다. 그러나 나폴리의 푸니쿨라는 베수비오 화산의 잦은 활동으로 인한 인명 피해와 여러 문제로 인해 1943년에 폐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는 여전히 전 세계에서 사랑받으며, 산악기차와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노래로 기억되고 있다.


몬세랏에서 내려오며 이탈리아 노래 ‘푸니쿨리 푸니쿨라’가 생각나는 것은 어쩌면 용어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 노래를 조금은 알고 있었던 나는 경쾌하게 산을 내려가는 푸니쿨라에서 산 아래 펼쳐진 경치를 내다보며, 잠시나마 그 노래에 담긴 기분을 느껴본다. 대개 사람들이 이 노래는 한 번쯤 들어봤을 것 같다. 그럼, 이 기분을 이어서, 내친김에 노래 한 곡 듣고 가자.


https://youtu.be/STB0S0JdHVA?si=C7h2XxyHikHGMDb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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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하게 산을 내려온 우리는 이제 바르셀로나로 향한다. 스페인 여행이 거의 막바지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련해진다. 우리의 버스 기사 엔리케는 고속도로와 철도가 나란히 이어지는 해안 도로를 따라 시원하게 달려가며, 오후 2시경에 바르셀로나 몬주익에 도착한다.


특별한 빠에야로 점심 식사를 마친 우리는 바르셀로나 항구에 있는 정박지 포르트 올림픽 Port Olímpic 주변에서 따듯한 햇볕을 즐기며 오후 산책을 나온 이네들과 함께 걷는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풍경 속에서 달콤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thebcstory

#몬세랏 #스페인여행 #여행 #푸니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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