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기록적인 폭우와 힌남노라는 태풍으로 한반도가 고통받던 그때, 기자협회보에 칼럼을 썼다. 자연재난을 다루는 언론과 사람들이 정작 중요한 ‘스모킹건’을 놓친 채 주변만 맴돌고 있다고. 기후변화가 만들어낸 이 재난의 본질을 외면한 채, 눈에 보이는 작은 원인만 추적하느라 분주하다고 지적했다.
그로부터 2년 반이 지났다. 다시 3월, 또다시 강원도와 경상도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예전엔 뉴스 속 먼 나라 이야기 같던 ‘초대형 산불’이 이제는 매년 찾아오는 익숙한 사건처럼 느껴질 정도가 됐다. 이런 현실 앞에서 나는 무력감과 동시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산불을 감지하고 예방하는 기술과 불을 끄는 ㄴ하우는 분명 좋아지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한 걸음씩 더 거대한 재난 속으로 끌려가고 있는 것일까.
애플TV 오리지널 '2050: 벼랑 끝 인류(extrapolation)'에서 묘사된 지구촌이 떠오른다. 8연작 옴니버스 방식의 드라마는 33년에 걸친 이야기 속에서 인류가 기후대응에 실패하고 지구 평균 기온이 상승해 임계점 이후의 상황을 펼쳐놓고, 거기서 살아가는 인물의 모습을 그린다. 에피소드 1은 가장 근미래인 2037년 이스라엘 텔아비브가 배경이 된다. 첫 장면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건 가정 밖으로 보이는 노란 풍경이다. 산불로 연기와 재가 도시 대기를 뿌옇게 만든 것이다. 처음 그 장면을 봤을 땐, 너무 과장된 연출이 아닐까하는 것이 솔직한 생각이었다. ‘겨우 십몇 년 후인데 정말 저럴까?’ 하는 의심이 컸다.
하지만 그 모습이 현실로 나타나는 데는 2037년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2023년 6월 캐나다 산불이 1000km 떨어진 뉴욕시 하늘조차 노랗게 뒤덮었을 때, 사람들은 “마치 화성 같다”고 말했다. 이젠 멀리 있는 나라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바로 지금 한국의 하늘 역시 연이어 벌어진 산불로 인해 희뿌옇게 위협받고 있다.
과학자들의 경고는 명확하다. 기온이 단 1도 오르면 대기 중 수증기량은 약 7% 증가하고, 오히려 땅은 더 건조해져 산불에 훨씬 취약해진다(Clausius–Clapeyron 관계, IPCC AR6 보고서). 최근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연구 결과를 보면 지구 온도가 1도 상승할 때마다 매년 산불로 사라지는 지구의 면적은 평균 14%씩 늘어난다고 한다. 과학은 덤덤하게 숫자를 말하지만, 그 숫자가 현실의 광경으로 옮겨져 오면 며칠 몇날 동안 산불 뉴스에 착잡한 마음만 부여잡아야 한다.
나는 이런 문제를 바라볼 때마다,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일을 하는 내 역할을 다시금 고민하게 된다. 뉴스를 통해 쏟아지는 수많은 재난 속보들을 보면서 늘 아쉬운 점은,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 생략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건을 전달하는 언론이 문제의 본질과 마주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면, 사람들도 그저 잠깐 놀라거나 안타까워할 뿐, 더 이상의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나 기업은 임시방편을 찾느라 바쁘고, 사회 전체가 산불 진화 기술이나 예방 시스템 같은 단기적 대응에만 집중한다. 물론 그런 대응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모든 문제의 근본적 원인인 기후변화에 맞서는 일이다. 산불은 모두가 안타까워하지만 다시금 그 산불로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지 않게 노력하는 일에는 많은 이들이 간과하고 있다.
이번 산불로 고운사, 가운루, 만휴정 같은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불타버렸다는 뉴스를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사라진 것들은 단순히 나무나 건물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이자 기억들인데, 우리가 치르는 대가가 점점 더 커져만 가는 것을 지켜보며 무력함을 느끼게 된다.
이제는 산불이나 홍수, 태풍 같은 기후재난 앞에서 ‘슬픔과 회한’을 표현하는 걸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온실가스 배출은 이어질 것이고, 과학과 통계가 말하듯 자연은 무심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더 많은 산불과 극단적인 날씨로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보다는 함께 막기 위해 힘써야 한다. 언론의 역할도 거기서 시작돼야 한다. 산불 소식을 전하는 사회면 앞뒤로는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을 초래하는 화석연료 사업에 얼마나 뛰어들었고, 화석연료 기업 주가가 얼마인지가 더 중요한 뉴스로 장식되어선 안 된다. 국내 조선사들의 LNG 운반선 수주는 잭팟으로 묘사되고, 한국의 알래스카 LNG 사업 투자는 경제와 외교의 묘수처럼 묘사된다. 미디어는 사건의 표면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 바로 ‘기후변화가 가져온 현실’을 정확히 짚고, 변화를 위해 사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더 강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외삽법(extrapolation)에 따르면, 언젠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도 노란 하늘이 떠오를 확률이 그렇지 않은 확률보다 높다. 그날이 오기 전, 우리는 지금을 기억할 것이다. 부디,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