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최선을 다해 나를 지켜내리라

<내 안의 우주는 다시 광활해진다>

by 찬빛별

어깨와 머리가 땅속을 파고드는 날이 있다.

머릿속이 그날의 상처로 도배되는 날도 있고,

쓰라린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날도 있다.


초대한 적 없는 불청객이 제 발로 찾아오는 건 막을 도리가 없다. 매너라고는 밥 말아먹었나 보다. 돌격하듯 갑자기 찾아와 내 머리와 마음 곳곳을 헤집어 놓고 유유히 사라진다.



<너덜너덜 해진 마음 조각>

떠나고 난 자리에 우두커니 홀로 남아 있던 나는 버려진 기분이 들었다.

스스로 죄인이 된 거 같은 감정이 스멀스멀 목까지 차올랐고, 그런 감정을 느끼는 내가 싫으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곱씹고 또 곱씹는 이유도 알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되새김질했다.


부정적인 생각은 먹물이 되어 마음과 일상을 검게 얼룩지게 했다. 보이지 않는 족쇄로 생각의 자유를 구속했고, 행동과 의식까지도 제한하고 속박하려 했다. 마음 조각들이 너덜너덜 해져 다시 이어 붙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이었던가.



<내 안의 우주는 다시 광활해진다>

여전히 달갑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불쑥 얼굴을 들이밀며 쳐들어 온다. 침입하는 방식도 각양각색이고, 무기도 다양하다. 내 영역 밖에 일이니 예상할 수도 없고, 대비도 어렵다.


그러나, 나에게는 비밀 병기와 방패가 있다.

과거 괴롭히고, 미워했던 나 자신이다. 이보다 든든한 아군이 또 있을까 싶다.

홀대했던 나인데도 기꺼이 용서해 주고 내 편이 되어 주겠다고 하니 고마울 따름이다. 이제 망설임 없이 도움을 요청하려고 한다. 나를 도울 사람이 자신이 아니면 누가 있으랴.


온 세상이 나를 등진다 하더라도 평생 한 몸 한 정신으로 살아가야 할 최고의 아군이 아닌가. 더 이상 외면하지 않고, 미워하지도 않겠다. 감정에 귀를 기울이고 몸이 말하는 걸 듣고, 마음이 원하는 걸 최우선으로 선택하기로 했다.

검은 세상이 지배하는 일이 없도록 콧김도 불어넣지 못하게 하겠다. 그 무엇도 내 허락 없이 털끝 하나도 침입할 수 없게 하리라 결심했다.


정성껏 자신을 돌보기로 약속한 이후, 군손님 오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오로지 굳어진 몸을 깨우고 탁해진 생각을 환기시키는 데에만 집중한다.


그렇고 그런 날에는 책임과 책무를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억지로 집중하려 애쓰지 않고, 열심히 무언가를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얽매여 있는 곳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조용히 기다린다. 자유가 허락되는 시간이 오면 지체 없이 모든 걸 놔두고 탈피한다. 나를 목 빠지게 기다리는 그 어떤 것도 이 날 만큼은 나 몰라라 한다.

일단 무작정 걷는다.

목적지는 중요하지 않다. 걷다 보면 땅이 뿜어내는 기운과 하늘이 쏟아내는 에너지가 나를 정화시키고, 머릿속 잡념을 거두어 간다. 차츰 내 안의 우주도 다시 광활해지는 걸 느낀다.

그리고 평소보다 잘 챙겨 먹는다.

이미 입맛까지 군손님이 모두 앗아갔지만, 나를 홀대하지 않기로 약속했으니 이런 날일수록 특별히 챙겨, 몸과 마음을 채운다. 어느새 공허했던 마음도 위로를 받는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지만, 보통의 나날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안다. 그러니 소중한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굳건히 지켜내리라.


나는 아직도 세월을 지켜내는 법을 배우고 있다.

무엇이 무기이고 방패인지 이제 겨우 어렴풋이 알뿐이다.

아직 내가 발견하지 못한 보물들이 내 안에 무한하리라 확신한다. 살아가면서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내어 주리라는 것도 믿는다.

그럼,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귀하게 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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