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2. 24 ~ 25

11박11일의 대장정, 그리고 다음

by 나효진

멘붕이었던 금요일을 뒤로 하고 12시 체크아웃이라 여유있게 준비를 마친 후 호텔에 짐을 맡겼다. 바로 아이팟의 위치 서비스에 의지해서 포켓와이파이 대여소로 향했다. 필요 이상의 지출이었지만 별 수 없었다. 무사히, 간단히 빌린 후 구글맵을 켜는데 아이팟 버전은 정말 너무 구렸다. 그래도 라인, 에어비앤비, 번역, 구글맵까지 깔아 두고 와이파이 연결하니까 한결 안심이 됐다. 끝까지 버텼지만 결국 라인을 설치하고 말았다. 가부키쵸로 돌아가는 길에 흡연석이 있는 햄버거집을 발견해서 신기한 마음으로 들어가 아점을 먹었다. 그러나 혀가 영 까끌까끌했다.



신주쿠에서 묵을 때면 늘 들르곤 하는 하나조노 신사로 향했다. 저번 여행할 적에 무사히 빠른 시일 안에 다시 일본에 오게 해 달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으니 감사 인사도 할 겸. 신사 바로 옆에 가고 싶었던 고르덴가이가 있어서 사진 몇 방을 찍고 참배 후 오마모리를 사 가지고 나왔다. 역시 물장사하는 동네라 그런지 우리나라 참이슬병처럼 모엣 샹동 빈 병이 널려 있었다.




고질라로드에 있는 르누아르 커피숍 구석에서 어제 보냈던 숙박 요청 승인을 기다렸다. 워낙 급해서 요요기 우에하라 근처 아무데나 잡았는데 집 전체가 아니고 개인실이었다. 좀 불안하긴 했지만 조금 바가지 쓰고 결제까지 완료했다. 어차피 잠만 조금 자고 씻고 체크아웃 시간 전에 비행기 타러 나갈 거라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19도였던 그제와 달리 갑자기 추위가 닥쳐와서 빨리 숙소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와 그런데... 정말 에어비앤비 이거 개선해야 된다. 호스트들이 숙소 위치를 어중간하게 찍어 두고 결제 완료 후에야 제대로 알려 주는 애들이 몇 있는데 그런 주인에게 걸렸다. 요요기 우에하라가 결코 크지 않은 동네임에도 한 시간 반을 망가진 캐리어를 끌고 돌아 다녀야만 했다. 콧물이 줄줄 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눈물도 나려고 했다. 착한 편의점 직원에게서 결정적인 정보를 얻긴 했는데 호스트가 보내 준 사진이랑 실제 숙소 외관이 너무 달랐다. 대낮에 우에하라를 밟았건만 이미 사위는 어둑어둑해졌다. 짐 풀고 신바시나 아카바네 들러볼까 했지만 물거품이 됐다.


슬슬 열이 받은 터라 호스트에게 환불하라고 난리를 쳤다. 그제서야 어느 정도 제대로 된 정보를 받아서 결국 입실했는데... 2007년 처음 일본 갔을 때 묵었던 신오쿠보 민박집과 진배 없었다. 짐 들고 잘못 올라갔다가는 죽을 수도 있는 계단 사이즈였다. 또 한 집을 여럿이 나눠 쓰는 구조다 보니 한 발짝 떼기도 부담스러웠다. 결국 몇 번에 걸쳐 조심스럽게 짐을 옮겼다.


침대에 몸을 날리고 보니 아무 것도 하기 싫었지만 10만원이나 주고 연장을 했는데 그냥 쉴 순 없었다. 치쨩한테 오늘 마지막 날이라고 문자를 보냈다. 저녁 일곱시까지 긴자에서 일을 하고 신바시에서 약속도 있지만 빨리 접고 나한테로 오겠다는 고마운 소리를 해 줬다. 이날이 무려 크리스마스 이브였음에도. 몸이 녹으니 심심함과 허기가 밀려와 하라주쿠나 가서 여태 못 먹었던 스테이크동이나 먹자 하는 생각에 집을 나섰다. 웬만하면 걸었겠지만 녹초인 관계로 전철을 탔다. 교통카드를 찍으며 11일 동안 교통비 3000엔(리무진 제외)을 썼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무척 놀랐다.


스테이크동집에 어렵게 찾아갔지만 한국인들 천지에 줄도 엄청나게 길어서 그냥 포기하고 작년 이맘때 친구들과 같이 갔던 가게에 들어갔다. 인생 우동을 먹었다며 기뻐했던 곳에서 똑같은 메뉴를 시켰는데 맛이 너무 변해 있어서 서운했다.



계산하고 다케시타도리 쪽으로 걸어가는데 치쨩에게서 벌써 하치만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기분이 좋아져서 가게까지 달음질쳤다. 시간이 일러서인지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오늘은 미용사 텟페이상이랑 영화 관계자 미치코상과 만났다. 미치코상은 일본 영화 관련 찌라시들을 메일로 다 보내 준다고 해서 감동했다.


카츠상은 갈 때마다 있고 감독도 또 나와줬다. 조금 마시고 있는데 히데상 무리가 들어왔다. 오늘 마지막 밤이라고 하니 히데상이 내 술을 사주겠다고 했다. 나도 담배 한 갑을 선물하고 한 잔만 얻어 마셨다. 그러고 있는데 치쨩이 또 분위기 좋은 데 가서 친구를 소개시켜 준다고 하길래 가게를 나왔다.


엄청 초식남 같은 분위기의 의상 관련 일 하시는 분이 나왔다. 인사 하자마자 나한테 모나카 같은 스위츠를 선물했다. 맛있게 먹는 것까지 봐 주는데 아카쨩이 된 줄 알았다. 감독도 어느새 다시 이 가게로 건너 왔고 맛있는 안주 잔뜩 시켜서 맛있게 먹었다. 그러던 중 이 동네에서 빈티지 옷가게 하는 아저씨가 와 가지고 나한테 데낄라랑 교자를 선물했다... 이 따스함의 근원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데낄라 원샷 때리니까 이때부터 정신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치쨩도 약간 맛 간 느낌이었다.



그런데 치쨩이 나 몰래 감독한테 나를 아까 그 가게에 데려다 주라고 부탁했다는 걸 알게 됐다. 심지어 2차에선 돈도 안 냈다. 남은 돈 다 쏘고 오려고 했는데 기회를 주지 않았다. 과분한 친절에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돌아간 바에서는 샴페인 까고 축제 분위기가 조성돼 있었다. 나도 한 잔 주길래 받았다. 취하면 잠부터 오는데 하품 나오고 난리 났음에도 집에 가기가 싫었다.


우리 주인상은 또 내가 화요일이랑 금요일만 빼고 온 거 귀신같이 기억하고 사람들한테 막 자랑해줬다. 히데상은 샴페인 라벨 붙여 주면서 일본에서 좋은 기억만 남았으면 좋겠다고 해 줬다. 술김 아니라도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한 네 시 쯤에는 치쨩도 다시 합류하고 못 다한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또 가라오케 타임이 시작됐다. 이렇게 재밌고 따뜻한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는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슬슬 해산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왔다. 감독은 SMAP의 세상에 하나 뿐인 꽃을 틀었다.


다섯 시 반 쯤 가게를 나오는데 주인상이 손을 꼭 붙들고 정말 고마웠다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데 눈물이 나서 미칠 뻔했다. 줄 건 없고 담배 한 갑 주니까 자기도 뭐라도 주고 싶었는지 가게에 장식으로 걸려 있던 반다나랑 똑같은 걸 선물했다. 친구가 된 사람들 라인 아이디 다 따가지고 감독이랑 치쨩이랑 가게를 나왔다. 포옹하고 덕담을 주고 받았다. 접때는 하치만 쪽으로 셋이 같이 돌아갔는데 이번에는 나만 우에하라 쪽으로 가서 정말 너무 쓸쓸했다. 금방 다시 올테니 몸 건강히 있으라고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찍 일어나서 하치만 신사에 가족의 안녕과 나의 출세 그리고 빨리 다시 오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마음 먹었지만...


당연히 늦게 일어났다.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황급히 숙소를 나와 하네다에 무사 도착했는데 신사를 들렀어도 될 뻔했다. 일요일 낮의 하네다는 정말 널럴했다. 늘 들르는 공항 내 카페 가서 친구들에게 라인을 쫙 돌렸다.



일주일 동안 정말 고마웠고 신세 많이 졌고 또 가면 같이 마셔 달라고 짧은 일본어지만 전부 다른 메시지를 적어 전송했다. 정말로 눈물이 쏟아지려고 했다. 비행기 탑승 시간이 되어 줄을 서고 있는데 답장이 속속 도착했다. 그 중에서도 바 주인상한테 온 라인이 미리보기로 뜬 순간 울음이 팍 터졌다. 여권만 보고 서 있었다. 자리에 앉아서야 겨우 눈물 없이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언제쯤 다시 갈 수 있을까. 그래도 내년 봄은 돼야 할 거라며 아쉬움을 가득 안고 귀국했다. (곧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