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하늘의 뜻이거늘

영화 ‘어 퍼펙트 데이’ 리뷰

by 나효진

* 이 글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전쟁이 끔찍한 이유는 인간의 악마성이 집단적으로 발현되는 것을 허용한다는 데 있다. 몇 안 되는 지도자들의 결정에서 촉발된 전쟁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서로 싸우도록 만들었다. 문명의 발달도 이 거대한 폭력을 막지는 못했다. 국가 대 국가 뿐만 아니라, 국민이란 이름으로 묶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전쟁은 예외 없이 발발했다.


이러한 역사 때문에 보스니아 국민들에게는 전쟁이 일상이 됐다. ‘어 퍼펙트 데이’는 여느 전쟁 영화들이 그러하듯 폭력에 대한 분노를 이끌어내려 감정을 자극하기보다는 이미 보스니아에 깊게 뿌리 내린 현실을 담담히 관조한다. 국경 없는 원조회의 요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 본 내전은 오히려 더 참혹했다.


영화는 요원들이 이 마을의 유일한 식수 공급원인 우물에 던져진 시체를 꺼내려 고군분투하는 장면부터 출발한다. 인간에게 공기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물이다. 이들에게 주어진 24시간 내에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한다면 마을 주민들은 생활 터전을 버려야 할 수도 있다.


처음에는 시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밧줄이 끊어진다. UN에 지원 요청을 했지만 그런 보고는 받지 못 했다며 확인조차 해 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자력으로 밧줄을 구하려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다. 요원들을 감시하기 위해 현장 분석가 카티야(올가 쿠릴렌코 분)까지 투입되며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마을 사람들은 소 시체를 도로 곳곳에 끌어 와서 요원들의 앞길을 막는가 하면, 시체가 우물에 던져진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밧줄을 내 주지 않겠다고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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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요원들은 마을 소년 니콜라(엘다 레지도빅 분)를 만난다. 요원 리더 맘브루(베네치오 델 토로 분)는 덩치 큰 아이들에게 공을 뺏긴 니콜라를 구해주려다 그들이 주머니에서 꺼낸 총에 빠르게 자리를 피한다. 얼결에 요원들의 차를 얻어 타게 된 니콜라는 밧줄이 있는 곳을 안다며 폭격에 폐허가 된 자신의 집으로 이들을 인도한다.


광견에 묶여 있는 밧줄을 풀어보려 했지만 이조차 여의치 않았다. 밧줄과 니콜라에게 줄 공을 찾아 집 안을 탐색하던 요원들은 소년의 부모가 마을 사람들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진 광경을 보게 된다. 종교가 다른 이들끼리 결혼했다는 이유에서다. 참혹한 죽음 앞에서도 요원들은 그 밧줄을 취해야만 했다. 그 사이 무뢰배들은 6달러에 물 한 양동이를 파는 만행을 벌이고 있었다.


드디어 시체를 우물 밖으로 끌어 올리려는 순간, UN군이 등장했다. 마을의 질서를 해치지 말라며 밧줄을 끊어 버렸다.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끝났고,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들에게 분노보다 큰 무기력이 찾아 들었다.


‘화장실이 넘쳤으니 고치러 오라’는 본부의 요구에 힘없는 웃음을 지으며 이동하던 요원들의 차 위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쏟아지는 폭우를, 군인과 주민과 미친개가 가만히 바라 본다. 그리고 시체는, 넘친 우물 위로 떠오른다.


전쟁의 시작은 늘 그 규모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터무니 없이 작은 우연이었다.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암살되지 않았다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까. 인간은 전쟁의 모든 것을 관장하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진행 과정에는 항상 예측할 수 없는 지뢰들이 묻혀 있어 계산을 비껴가게 했다. 영화 속 지뢰를 피해 다니는 소떼와 우물 속 시체를 꺼낸 폭우처럼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평화를, 숱한 싸움 속의 우리는 언제나 갈구해 왔다.


요원들이 우물을 내려다 볼 때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비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 볼 적에는 다시금 평화가 찾아 왔다. ‘어 퍼펙트 데이’는 전쟁을 만들어 평온한 일상을 깨뜨린 인간의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인류가 자초한 비참한 삶을 되돌려 놓은 것은 하늘의 뜻이었으니 말이다.


아쉬운 것은 여성 캐릭터의 활용이다. 요원 소피(멜라니 티에리 분)는 의욕과 정의감에 불타는 철부지 막내의 이미지로 베테랑 남성 요원들의 짐처럼 묘사된다. 감시자 카티야 역시 마찬가지다. 맘브루와의 질척한 감정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요원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인물이자, 지저분한 성희롱의 대상이 되기까지 한다. 극한 상황에서 집단의 판단력을 흐리는 캐릭터를 여성으로 상정한 것이 이 완벽한 내러티브의 유일한 오점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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