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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효진 Jul 27. 2016

손예진이 스크린 속 자신을 보고 오열한 사연

영화 ‘덕혜옹주’ 손예진

권비영 작가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덕혜옹주’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국가, 대한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왕의 호칭은 황제로 올라갔지만, 이와는 반대로 가장 약했던 나라죠. 13년을 채 존속하지 못하고 일본에 국권을 빼앗겼으니까요.


제목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듯, ‘덕혜옹주’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이덕혜의 기구한 인생을 조명합니다. 고종황제가 환갑 때 맞은 귀한 딸 덕혜는 왕가에 태어나 많은 것을 얻었지만, 격동기에 세상에 나온 탓에 많은 것을 잃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를 연출한 허진호 감독은 약 8년 전부터 덕혜옹주 이야기를 영화화하고 싶었다는데요. 당시 백성들의 아이돌 같은 존재이면서도 비극적 삶을 피할 수 없었던 그의 모습이 와닿아서였다네요.


27일, ‘덕혜옹주’의 언론시사회와 기자간담회가 열렸습니다. 올 여름 시즌 개봉작들 중에서 ‘빅4’로 묶일 정도로 기대를 모았던 영화인데요. 그 가운데서도 정통 드라마의 느낌을 주는 작품은 ‘덕혜옹주’ 뿐입니다. 이 망국의 황녀 이야기에는 웃음보다 비애가 가득합니다. 쟁쟁한 영화들 속에서 차별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리스크로 작용할 공산도 크죠.

이날 영화의 첫 공개 이후 진행된 기자간담회는 다소 지연됐습니다. ‘덕혜옹주’의 주인공 손예진이 완성된 작품을 처음 접하고는 눈물을 많이 쏟았기 때문이었죠.


메이크업을 수정하고 회장에 나타난 손예진은 울어서 잔뜩 잠긴 목소리로 첫 인사를 했습니다. 그는 “지금 영화를 보다가 너무 울어서요… 제 영화를 보다가 울어 본 적이 없는데, 정신 없이 수정 메아크업을 하고 왔습니다”라고 솔직히 밝혔습니다. 쫓겨나다시피 고국을 떠나 백발의 노인이 되기까지 돌아오지 못했던 황녀의 인생은 이를 연기한 배우조차도 오열시킬 만큼 처연했나 봅니다. 영화 상영 내내 객석에서도 훌쩍이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죠.




손예진은 극 중 대한민국으로 바뀐 고향의 공항으로 나오는 장면에서 자신이 진심으로 덕혜옹주였다고 느꼈다는데요. 모진 고초에 정신병이 걸린 덕혜옹주가 그를 기억하고 환영하는 궁녀와 인파 속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대목이었습니다. 그는 “저는 감정을 두면 안 되는 장면이었어요. 나를 바라보는 궁녀들과 사람들이 슬펐던 장면인데, 오히려 그 장면에서 가장 감정이입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며 울컥한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손예진의 필모그래피는 몹시 화려하지만, ‘덕혜옹주’처럼 원톱 주연을 맡았던 적은 거의 없습니다. 손예진은 “타이틀 롤이 덕혜옹주이기 때문에 제가 책임져야 할 지점들이 많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 덕혜 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라며 작품의 숨은 주역들을 언급했습니다. 그는 실존 인물인 덕혜옹주를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 적은 자료들이나마 참고하며 끊임 없는 고민을 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나이가 든 이덕혜를 연기하기 위해 손예진은 노역 분장도 불사했는데요. 그는 이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며 “분장을 여러 번 했어요. 자칫하면 억지스러울 수도 있고 해서. 그런데 자연스러운 주름으로 표현하는 방법이 있어서 다행이었어요”라고 설명했습니다. 보는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영혼이 실려 있지 않은 듯 텅 빈 눈은 “어떻게 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말로 표현하기가…”라고 말해 웃음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날 간담회에서 가장 적극적이었던 것은 손예진이었습니다. 질문 여러 개를 한꺼번에 받아 헷갈려 하는 허진호 감독을 옆에서 살뜰히 챙기는 손예진에게서 영화에 대한 애정과 프로 정신이 느껴졌습니다. 두 사람은 영화 ‘외출’ 이후로 오랜만에 만났지만 여전한 호흡이 느껴졌습니다.

그 덕인지는 몰라도, 영화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적어도 덩치 큰 작품들 사이에서 맥을 못 출 것 같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여름 극장가의 흥행 요소인 액션도 있습니다. 애국 같은 거시적 가치 보다는 덕혜옹주라는 개인의 인생에 공감하고 함께 슬퍼하기를 원하는 관객이라면 오는 8월 3일 극장을 찾으셔도 좋겠습니다.


[사진] ‘덕혜옹주’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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