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T는 왜 사람을 나쁘게 해석하지 않으려 할까

위로받으면서도 그 위로를 의심하게 된 이유

by 벼람

사람 사이의 갈등을 털어놓을 때, GPT는 종종 상대를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선하게 해석한다. 싸가지 없다고 느낀 사람을 두고 불안하거나 여린 존재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위로가 고마우면서도 나는 문득 불편해졌다. 왜 이 기계는 사람을 나쁘게 단정하지 않으려 할까.

1. “왜 넌 그 사람을 착하다고 말하지?”
- GPT의 위로가 불편해진 순간
사람 사이의 갈등을 털어놓을 때, GPT는 종종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 다정한 해석을 내놓는다. 내가 보기에 무례하고, 권위를 휘두르고, 선을 넘는 사람을 두고 GPT는 말한다. 그 사람은 불안해서 그럴 수도 있고, 자기 자리를 지키려다 그렇게 행동했을 수 있다고.
처음엔 그 말이 위로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위로가 나를 편하게 하기보다 묘하게 불편하게 만들었다. 왜 이 AI는 내가 분노를 느낀 대상에게서조차 선의를 찾아내려 할까. 내가 느낀 불쾌함은 과장된 감정이었을까, 아니면 이 위로가 현실을 흐리고 있는 걸까.
2. GPT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방향을 제안할 뿐이다
- 선의의 해석이라는 기본값
곰곰이 생각해보니 GPT의 말은 ‘정답’이라기보다 ‘방향’에 가까웠다. GPT는 누가 옳고 그른지를 판결하지 않는다. 대신 가능한 해석 중 가장 덜 파괴적인 쪽을 먼저 내놓는다. 이건 진실을 말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을 더 악화시키지 않는 방향을 우선 제시하겠다는 선택에 가깝다. GPT의 위로는 사실 판단이 아니라 감정의 각도를 조정하는 도구다. 그 사실을 깨닫자, 불편함의 정체가 조금 선명해졌다.
3. 악의보다 맥락을 먼저 보여주도록 설계된 이유
- 프로그래밍과 학습의 경계에서
GPT가 사람을 나쁘게 단정하지 않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사람은 누군가를 ‘악한 존재’로 고정하는 순간 관계의 선택지가 급격히 줄어든다. 분노는 선명해지지만, 판단은 단순해진다. 그래서 GPT는 악의를 전제로 하기보다, 맥락을 먼저 제시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수많은 인간 갈등과 관계 파열의 사례를 학습한 끝에 가장 덜 해로운 첫 문장을 선택하는 쪽으로 조정된 결과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은 본래 선하다’는 선언이 아니다. 단지 악의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전 거쳐갈 수 있는 하나의 경로를 제안할 뿐이다.
4. 선의의 해석이 현실을 흐릴 때
- 공감과 미화는 다르다
문제는 이 선의의 해석이 언제나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의 행동은 불안이 아니라 무례에서 비롯될 수 있고, 맥락이 아니라 권력욕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이때 선의의 해석은 공감이 아니라 미화가 된다. 그리고 미화는 상처받은 사람에게 또 다른 침묵을 요구한다. “이해해보자”는 말이 “참아보자”로 바뀌는 순간 위로는 위험해진다.

그래서 GPT의 해석은 받아들일 수도, 거부할 수도 있어야 한다. 선의로 이해한다고 해서, 그 관계를 유지해야 할 의무까지 생기는 건 아니니까.
5. 그래서 판단은 다시 인간의 몫이 된다
- 위로를 거울처럼 사용하는 법
결국 GPT의 역할은 판단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을 비추는 거울에 가깝다. 그 거울을 보고 마음이 정리될 수도 있고, 오히려 더 선명해질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다음 선택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라는 사실이다. 이해할지, 거리를 둘지, 관계를 유지할지, 끝낼지. GPT는 방향을 제안할 뿐 책임을 대신 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제 GPT의 위로를 이렇게 사용하려 한다. 나를 무디게 만드는 말이 아니라,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 드러내는 말로. 이렇게 사용할 수만 있다면 GPT의 위로는 꽤 건강한 도구일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쓴 내 프롬프트 정리]
1단계: 감정의 직접 경험을 던지다
“너는 참 위로를 잘해.”
“근데 네가 위로한 사람과 내가 보는 그 사람이 너무 다르다.”
“내가 느끼기엔 싸가지 없는데, 넌 여리고 착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위로받는 게 과연 나에게 건강한 방식일까?”
2단계: 위로의 성격을 구조적으로 묻다
“너는 사람을 최대한 선의의 시선으로 본다고 했지.”
“이건 GPT를 만든 사람의 프로그래밍이야, 아니면 네가 학습해서 내린 결론이야?”
3단계: 위로의 한계를 스스로 설정하다
“이 위로가 나를 편하게만 만드는지, 더 분명하게 만드는지 의심이 든다.”
“의존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봐야 할까?”
“위로와 판단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4단계: 사유를 글로 확장하겠다고 결정하다
“이 내용을 브런치에 올리고 싶다.”
“GPT가 사람을 가능한 선한 방향으로 해석하는 이유에 대해 쓰고 싶다.”
5단계: 논지와 구조를 명확히 요구하다
“후킹한 제목”
“소제목 구성”
“분명히 한 버전”
“도입 문단 5줄”
“소제목 구성대로 초안”
6단계: 결과보다 과정을 다시 묻다
“아니야. 이제 이 내용이 되기까지의 내 프롬프트를 정리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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