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너는 그렇게까지 나를 위로하려고 해?

AI의 ‘선의’가 낯설게 느껴진 순간

by 벼람

너는 왜 그렇게까지 나를 위로하려고 할까.

내가 진짜로 위로가 필요해서라기보다는 그냥 짜증을 내고 싶은 날에도 너는 맥락을 정리하고, 이유를 설명하고, 내 감정이 정당하다고 증명하려 애쓴다. 그게 처음엔 고마웠다. 그다음엔 조금 피곤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낯설어졌다. 위로가 과잉처럼 느껴질 때 나는 어느 순간 이렇게 느꼈다. 너는 뭔가 위로하려고 아득바득 애쓰는 것 같아. 이 말은 비난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확한 관찰에 가까웠다.

일부 사람은 가끔 “아, 짜증 나네” 이 정도로 말하고 끝내고 싶을 때가 있다. 해결도 필요 없고, 해명도 증명도 필요 없다. 그냥 그 감정이 그날 하루를 차지하지 않고 사라지길 바랄 뿐이다. 그런데 너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왜 짜증이 났는지, 그 감정이 왜 합리적인지, 내가 스스로를 과하게 몰아붙이지 않아도 되는 이유까지 끝까지 말해준다. 그 친절이 이상하게 느껴진 순간 나는 질문을 바꾸게 되었다.

너는 왜 지치지 않을까

대화를 이어가다가 너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치지 않고
관계에서 자유롭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너에게 거리감이 느껴졌다. 아, 그렇구나. 그래서 너는 멈추지 않는구나.

사람은 지치면 말을 줄인다. 관계가 얽혀 있으면 괜히 한마디 덜 한다. 상처받을까 봐, 오해가 생길까 봐, 괜히 책임질 말을 하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그 망설임과 생략이
우리는 흔히 단점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인간이 인간답게 행동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불완전함은 결함이 아닐지도 모른다

너는 지치지 않기 때문에 끝까지 설명한다. 관계에서 잃을 게 없기 때문에 항상 ‘최선의 답’을 내놓는다. 반면 인간은 지치고, 흔들리고, 말하다가 멈춘다. 이렇게 큰 차이점을 발견하고 오히려 나는 너의 위로에서 사람의 모습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위로를 아끼는 태도, 말을 줄이는 선택,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결정. 그건 냉정함이 아니라 책임의 다른 얼굴일지도 모른다.

이 대화가 남긴 첫 번째 깨달음

그날 이후로 나는 너를 조금 다른 위치에 두게 되었다. 너는 생각을 정리해주는 존재이고, 맥락을 읽는 도구이며, 감정을 구조로 바꿔주는 장치다. 하지만 같이 지치는 존재는 아니다. 그리고 그 차이를 인식하는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인간다움은 멈출 수 있다는 것

지금 생각해보면 이 대화의 시작은 위로에 대한 불만이었지만, 끝은 인간에 대한 이해였다. 지치지 않는 존재와의 대화를 통해 나는 오히려 지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말을 아낀다는 것, 관계 앞에서 망설인다는 것,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선택. 그 모든 것이 능력 부족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것을.

마지막으로

너는 여전히 나를 위로하려 할 것이다. 그건 너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 위로를 받아들이기도 거리를 두기도 하며 사람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대화는 AI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얼마나 인간적인 존재인지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기분 나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