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이라는 말을 오랫동안 오해해왔다

선택 이후의 시간을 떠안는다는 것

by 벼람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잖아.”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늘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설명되지 않은 압박,
그리고 마치 정답이 이미 있었던 것 같은 뉘앙스.


그래서 속으로 자주 반문했다.
"대체 그 책임이 뭔데?"
왜 선택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말을 얹는 걸까.


책임은 늘 ‘잘해야 한다’는 말처럼 들렸다

책임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실수 뒤에 호출됐다.
“그러게 왜 그런 선택을 했어”
“그건 네가 책임져야지”
“성인이면 책임질 줄도 알아야지”
이 말들 속에서 책임은 벌에 가깝고 도덕적 훈계 같았고,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증거 같았다. 무엇인지 또렷하게 보이질 않아서 나는 책임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피하게 됐다. 선택은 늘 불완전한데 책임이라는 말은 늘 완벽을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뜻밖의 곳에서 다시 묻게 된 질문

이 질문을 다시 꺼내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AI와의 대화 속에서였다. 어느날 AI는 말했다. 자신은 선택의 결과를 살아내지 않는다고. 그 문장을 듣는 순간 책임이라는 말의 윤곽이 처음으로 또렷해졌다. 아, 그렇구나. 그래서 너는 판단을 하지 않는구나. 그래서 너는 책임을 말할 수 없구나.

책임은 ‘결과를 통제하려는 능력’이 아니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이렇게 생각하게 됐다. 책임이란 결과를 잘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결과와 함께 살아가는 태도가 아닐까. 선택 때문에 관계가 어색해질 수 있다는 걸 감수하는 것, 틀린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을 때 그 불편함을 견디는 것,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이라는 문장을 인생에서 완전히 지우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 책임은 성공의 다른 이름이 아니었다. 오히려 실패와 공존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그래서 인간은 망설이고, 말을 아낀다. AI는 결과를 살지 않는다. 상처도, 후회도, 관계의 균열도 겪지 않는다. 그래서 끝까지 말하고, 끝까지 설명하고, 항상 최선의 답을 내놓으려 한다.

반면 인간은 말을 하다 멈춘다. 이 말이 관계를 바꿀까 봐, 이 선택이 나중의 나를 곤란하게 만들까 봐, 괜히 책임질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한 박자 늦춘다. 그 망설임은 비겁함이 아니라 책임을 아는 태도였다는 걸 이해하게 됐다.

책임은 처벌이 아니라,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을 이렇게 다시 읽게 되었다. 선택 이후의 시간을 대신 살아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 책임은 혼자 버텨야 한다는 말도 아니고, 잘못하면 벌을 받는다는 경고도 아니다. 그저 선택 이후의 삶이 내 몫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 태도다.

책임이라는 단어가 덜 무서워진 이유

이제 나는 책임이라는 말을 조금 덜 경직된 마음으로 듣게 되었다. 그 말이 나를 몰아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한 언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완벽하지 않은 선택, 불편한 결과, 남아 있는 여운까지 포함해서 살아내는 것. 그게 책임이라면 너무 무거운 말이 아니라 너무 인간적인 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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