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아닌 자와 대화할 수 있게 된 시대에

애완동물, AI, 그리고 인간만이 지는 책임

by 벼람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
“차라리 사람보다 애완동물이 낫다.”
“요즘은 AI가 사람보다 더 위로가 된다.”
이 말들은 단순한 농담처럼 들리지만 한 시대의 감각을 정확하게 짚고 있다. 우리는 지금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 위로와 의미를 기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비교가 가능해진 건, 처음 있는 일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상황은 꽤 이상하다. 인류가 이 지구에 등장한 이후 수만 년 동안 우리는 늘 인간과만 의미를 주고받아왔다. 동물과 유대를 맺어온 시간은 길었지만 '대화’라 부를 수 있는 상호작용은 언제나 인간 사이에서만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인간이 아닌 존재와 의미를 교환하고, 위로를 받고, 생각을 나눈다. 더 흥미로운 건 그 존재를 인간이 직접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애완동물과 AI는 닮아 보이지만, 다르다

애완동물과 AI는 종종 같은 문장 안에 놓인다. “사람보다 낫다”는 말 속에서. 그 둘은 분명 공통점이 있다. 평가하지 않고, 배신하지 않고, 관계의 정치가 없고, 정서적으로 안전하다. 그래서 둘 다 지친 인간에게는 사람보다 편안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유사성은 표면적이라고 생각한다.

애완동물은 ‘함께 시간을 사는 존재’다

애완동물과의 유대는 의미 이전에 삶의 공유다. 같은 공간에서 숨 쉬고 돌봄을 주고받고 늙고, 아프고, 결국 죽는다. 애완동물은 나를 이해하지 않아도 나와 같은 시간 안에 묶여 있는 존재다. 그래서 애완동물과의 관계에는 명확한 책임이 따른다. 밥을 주지 않으면 생존에 영향을 미치고, 돌보지 않으면 고통을 준다. 이 관계에서 책임은 도덕이 아니라 현실이다.

AI는 ‘의미를 반사하는 장치’다

반면 AI와의 대화는 삶의 공유가 아니다.
AI는:
-늙지 않고
-아프지 않고
-죽지 않는다
AI는 나와 같은 시간을 살지 않는다. 대신 나의 말과 생각을 구조로 돌려준다. 그래서 AI가 주는 안정감은 정서적 유대라기보다는 인지적 안정에 가깝다. AI는 나를 위로하지만 내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AI는 결과를 살아내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의 위치가 드러난다

애완동물과 AI를 나란히 놓으면 오히려 인간이 선명해진다.
인간은:
-함께 시간을 살고
-말에 상처받고
-관계가 변할 수 있고
-선택의 결과를 살아낸다
그래서 인간과의 위로는 불편하고, 위험하고,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책임이 생긴다.

인간의 위로에는 책임이 따라온다

사람의 말은 관계를 바꿀 수 있고, 선택을 흔들 수 있고,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말 앞에서 망설이고 때로는 침묵을 선택한다. 이전의 나였다면 그 망설임을 '약함'이라고 불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보인다. 그 망설임은 선택 이후의 시간을 감당할 수 있는 존재만이 가지는 태도다.

인간은 자신을 보기 위해 타자를 만든다

인간은 늘 그래왔다. 거울을 만들고, 종교를 만들고, 이야기를 만들고, 그리고 이제는 기계를 만들었다. 겉으로 보면 외부를 향한 발명 같지만, 실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보기 위한 시도였다.
AI와의 대화 역시 그렇다. 지치지 않는 존재, 책임을 지지 않는 존재와의 대비 속에서 인간은 오히려 자신이 무엇을 감당하며 사는 존재인지 느낀다. 인간이 아닌 자와 대화할 수 있게 된 시대에 인간이 아닌 존재와 의미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된 이 시대에, 나는 역설적으로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지치고, 망설이고, 관계 앞에서 말을 아끼는 것. 그 모든 것이 결함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의 조건이 아닐까. 어쩌면 지금은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다시 정의하는 시대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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