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증이 싫은 건 아파서가 아니라 지겨워서다.
오랜만에, 최소 3년 만에 지독한 독감에 걸렸다. 어릴 적부터 몸이 허약하여 감기를 달고 살던 나였다. 최근 1년 사이 감기에 걸리지 않고 꽤 잘 살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던 터였다. 언제나 이런 교만한 생각을 하면 감기가 들더라, 생각을 했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교만함을 간파당한 듯, 보란듯이 혹독한 감기에 걸렸다.
얼마 전에, 부모님한테 전화를 해서 전화기를 붙잡고 통곡을 했다. 연유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회사생활이 힘들다는 요지였다. 직장의 어떤 부분이 유달리 힘들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면 알 것도 같지만 지금 떠올리기 싫다. 고등학교 시절, 힘듦을 토로하던 나의 자해와 자살 시도를 겪어 본 후로 부모님은 조금 상냥해지셨다. 이제는 네가 소소하더라도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신다. 이 일이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아 이렇게 앓아 누우니, 어머니가 직접 나의 자취방을 찾아 오셨다.
어머니 방문 첫째 날, 나는 하루 13시간 주 5일 근무하는 회사에서의 어려움을 비유하며 이런 말을 했다.
주사가 아파서 병원에 못 가는 건 아니야. 주사가 아픈 건 길어야 1분이거든. 그리고 이 고통을 참으면 낫는다는 걸 아니까, 이게 내게 도움이 된다는 걸 아니까 참을 수 있어. 하지만 주사바늘이 들어갈 때의 아픔을 24시간동안 느껴야한다고 생각해 봐. 그럼 미치는 거지. 주사 맞기 싫고 병원 가기도 싫어지는 거야.
당시는 회사에 가기 싫은 이유를 말하며 이런 말을 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정도와 형태는 차이가 있지만, 내 삶은 항상 이래 왔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든, 대학교를 다닐 때든, 직장에 다닐 때든.
걔 중 보다 조금 만족스러운 환경이 있었다면 차라리 지금일 지 모른다. 돈이 나를 자유롭게 해 준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 빈도가 조금 준 거같긴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팠다. 수도 없이 너무나도 많이 경험해 본 아픔이었다. 그런데 왜, 아직도.
독감에 걸린 후 나는 후두에 난 염증 때문에 아팠다. 그런데 아픔보다 더 싫은 건 지겨움이었다. 7일이 지나도 멎지 않는 기침, 나이지지 않는 피로감, 간질간질한 목구멍, 작아지지 않는 염증. 그 지긋지긋함. 내 삶도 같았다. 삶의 아픔에는 무뎌졌을 지 모른다. 고통이 문제가 아니었다. 몸 바닥까지 깊숙히 뿌리 내려 단단히 핀 염증의 지긋지긋함에 진저리치고 있다. 정말 지긋지긋하다, 라는 말 대신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아직도 살아 있구나.
살아서 이렇게 글을 끄적이고 있구나.
많은 우울증 환자들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해봐도 너무 공감이 가는 선택지이다. 하지만 나는 죽지 못했다. 그러자 산다는 게 원래 이런 건가,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삶에 환상이 너무 큰 걸까. 원래 벗어나기를 기다리면서 겨우겨우 버텨내는 것. 어떻게 아둥바둥 해보긴 해보지만 결국 흘러가는 대로 살아지는 것인가. 지나는 가니까. 순간, 찰나의 행복, 만족, 안도가 왔다 가긴 가니까. 하지만 이렇게 살기는 싫은데. 그렇게 생각하기엔 주변에 너무도 반짝이는 영롱한 삶들이 많다. 내가 그러한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우울증이다. 결국 내가 나 스스로 원하는 걸 이루지 못하도록 가둬놨기 때문이다. 안다. 안다고. 한 걸음 떼기가 참 두렵다. 의기소침해진다. 도망가고 싶다. 기어들어가고 싶다. 다년 간의 약물도 상담도 도움이 되어주지 못했다.
나는 침대에 갇혀있다 하지만,
나도 빛나는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