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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포드 Oct 17. 2021

더 이상의 쇼잉은 거부한다# 1

열심히 살수록 뒤처지기 쉬운 이유

“그런데 이거 다 쇼잉 아니야?”


회사에서 종종 드는 생각이다. 보고 자료 작성에 치여, 주요 업무가 밀릴 때가 그렇다. 자고로 보고란  번에 끝나선  된다. 공들여 PPT 만든 , 처음부터 다시 매만져야 제맛이다. 피할  없다. 운명적으로 설계된 프로토콜이다. 두세  반려당한다. 이제 끝이 보이는 듯하다. 역시 ‘이었다. 이젠 구체적 실행 방안보고해야 한다. MS 오피스를 다시  때다. 보고서에 담긴 전략은 언제 실행될까 싶다. 절차에 신경 쓰느라 본업이 밀린 기분이다. 화까지 난다. 퇴근 시간이 밀려날 거란 직감이 들기 때문이다.


쇼잉하면 떠오르는 곳이 또 있다. 뭇 남성들을 설레게 하는 그곳. 군대다. 다만 쇼잉의 명칭이 살짝 다르다. ‘보여주기’. 국가기관 다운 순우리말이다. 전투화에 흙이 묻든 광이 나든, 전투력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이등병은 매일 밤 미친 듯 전투화를 닦아야 한다. 모포에 각이 잡혀 있든 헝클어져 있든, 보온 기능에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매일 아침 쏜살 같이 각을 맞춰야 한다. 나무가 연병장 왼쪽에 있든 오른쪽에 있든, 자라는 데는 영향이 없다. 그러나 왼쪽에 박혀있는 나무는, 가끔 뽑아서 오른쪽으로 옮겨줘야 한다. ‘제대가 답이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쇼잉과 보여주기가 무의미하지만은 않다. 분명 기능은 있다. 보고 자료 작성은 데이터 축적이다. 조직의 방향성, 현재 경영 상태를 파악하기 수월해진다. 이는 원활한 인수인계를 돕는다. 동시에 경영진의 의사결정 판단 근거가 된다. 제한된 예산에서 효율적인 결정을 하기 위해선, 데이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보여주기’ 역시 마찬가지다. 흙먼지 묻은 전투화를 방치하면, 장병들 기관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그들의 건강 악화는 유사시 전력 투입에 차질을 빚는다. 각종 '각 잡기'는 조직 내에 긴장감을 불러온다. 이는 전시에 필요한 상명하복 시스템이, 원활하게 이뤄지는데 필요할지 모른다.

정말 이런 짤은 어떻게 생각해내는 걸까 (출처: 나무위키)

물론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은 좋지 않다. 쇼잉에 집중한 나머지, 기타 영업 외 손실이 증가하고 통상적 영업 매출이 준다면? 방향성이 모호 해져 조직이 와해될 수 있다. 나무를 옮겨 심다 지친 장병이, 전시 상황에서 힘을 발휘할 수 없다면? 나라가 통째로 넘어갈 수도 있다. 너무 극단적 사례이긴 하다. 결국 보여주기와 쇼잉은, 본래 목적에 맞는 한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조직의 존재 목적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만 말이다.


역시나 쉽지 않다. 까딱하면 중심을 잃기 쉽다. 어쩔 수 없다. 우주가 그렇다. 지금도 우주는 발산과 수렴을 반복한다. 거대한 분열의 소용돌이가 만들어진다. 그 속에서 모든 별은 균형을 잡아나간다. 균형이 무너지는 건, 곧 폭발로 인한 소멸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 사는 게 우리다. 우리가 만든 조직이라고 별 수 있겠나. 살아남기 위해선 끝없는 균형 잡기가 필요하다. 어쩌면 조직의 경쟁력 중 하나는, 쇼잉과 본업 간 균형 잡기가 아닐까.


한편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쇼잉과 보여주기로 점철되기 십상인 분야가 있다. 바로 우리 개인의 삶이다.

"심바, 모든 건 미세한 균형을 이루며 존재한다." (라이온킹 中)

살벌한 놀이터


코로나 이전, 동성 친구들과 자주 찾던 동네가 있다. 그곳은 정말 대단하다. 먹거리와 놀거리가 집중되어 있다. 물가도 저렴하다. 종로, 강남, 강서로의 교통마저 편리하다. 바로 서울특별시 동작구의 놀이터, 노량진이다. 놀이터라니. 실언을 했다. 내 동생도 노량진에서 재수를 했다. 그 동네 실상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어떻든 노량진에서 모였던 하루, 한 친구가 입을 열었다.


“야 저기는 이제 부동산 학원까지 하냐?”


현재 2030은 스펙 쌓기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왔다. 그 시작은 초중등 시절이다. 2030이 공교육에 들어 올 즈음, 인터넷이 보급되었다. 고액 과외 선생님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학생들은 영상기기를 켜고 ‘메가’ 톤 급으로 문제풀이 강의를 들었다. '대성'을 꿈꾸면서 말이다. 몇몇은 고등학교 졸업 후, 대성을 꿈꾸는 곳으로 다시금 향했다.


어찌어찌 수능은 마쳤다. 예전엔 몇몇 고차원적인 시험에 뜻을 둔 이만 학원을 갔다. 세상이 바뀌었다. 대학에 갔던 가지 않았던, 새로운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각종 자격증이다. 밥벌이를 위해 필요하다니 어쩔 수 없었다.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선 관문을 빨리 넘어야 했다. 기다렸다는 듯, 이를 ‘단기’적으로 해치워주겠다는 곳들이 등장했다. 종류도 다채롭다. 토익, 공무원, 공기업 NCS, 대기업 인적성은 물론이다. 이젠 공인중개사까지 내걸었다. 또다시 놀이터로의 입성이 이어졌다. 놀이터 규칙은 간단하다. 단기적으로 대성에 이르기 위해, 메가톤 급으로 몸을 갈아 넣는 것. 어째 놀이터 치고는 좀 살벌하다.


그날 만난 노량진 멤버들은 다들 자기 밥벌이를 하고 있었다. 모두 놀이터 생활을 끝마친 듯 보였다. 소주 몇 병이 비워졌다. 진실이 드러났다. 여전히 놀이터 주위를 맴돌고들 있다. 한 친구는 대기업을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었다. 다른 몇몇은 사기업을 다니는 와중, 공기업을 준비한단다. 다들 사기업이 체질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마침 그 자리엔 한반도의 피카추를 자처하는 공기업에 다니는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는 달랐을까? 애석하게도 아니었다. 회사 문화가 맞지 않는단다. 대학원을 가야 하나 싶단다. 고시와 공기업 시험을 준비 중인 친구들은 이미 인강을 듣고 있었다. 대학원을 고민하던 친구는 학원을 알아보고 있었다. 나는 안 그랬냐고? 다를 게 있었겠는가. 때마침 나는 진급을 위해 영어점수가 필요했다. 관련 인강을 신청한 상황이었다. 참으로 벗어나기 힘든 놀이터다.

단기간에 대성하기 위해 메가톤 급으로 뛰놀아야 하는 놀이터, 노량진

몸속 기억


그런데 잠시만. 어쩌다 2030은 놀이터를 배회하게 된 걸까? 답은 간단하다. 집에 가서 밥을 먹기 위해서다. 다만 이게 불안하다. 우선 집 한 채 마련하기 힘들다. 집이란 본래 은행 거라지만, 요즘은 그마저도 버겁다. 밥이야 라면에 햇반 정도면 괜찮지 않으냐고? 인스타에 뭐라도 올리려면 가끔은 분위기도 내야 하지 않겠는가.


2030은 독해진다. 어떻게든 집과 밥을 공략한다. 다만 떠오르는 수단이 별로 없다. 결국 익숙한 곳으로 발길이 닿는다. 학원이다. 학원은 특정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찾는 곳이다. 그럼 시험은 왜 보는가. 타이틀을 얻기 위해서 이다. 모두 사회에서 인정받는 타이틀이다. 따낸다면 집과 밥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을 듯하다. 따낼 때까지 놀이터를 떠나기 힘들다. 끝내 바늘구멍을 통과했다고 보자. 그런데 생각보다 타이틀의 대가가 미미하다면? 별 수 있나. 더 좋아 보이는 타이틀을 따야 할 차례다. 다시금 놀이터 행이다.


방향을 트는 이도 있다. 타이틀만 계속 따 봤자, 얻는 게 별로 없겠다 싶다. 이들의 눈은 '떡상'으로 향한다. 급등주를, 코인을, 집을 미리 사뒀다는 주변인의 성공사례 덕분이다. 뒤쳐졌다는 불안감이 밀려온다. 그러나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뭘 해봤어야 알지 않겠나. 또 다른 놀이터에 눈이 간다. 이번 테마는 경제적 자유다. 재테크, 창업 관련 유튜브와 온/오프라인 클래스가 이에 해당된다. 서점에 들어서면 밀려드는 돈 냄새도 같은 부류다. 어째 '경제적 자유'도 하나의 타이틀이 된 듯하다. 과연 이 놀이터는 불안감을 끝내 종식시켜줄까.


시험, 재테크 공부가 나쁜 건 아니다. 배우고 익히며 자신을 계발하는 건 바람직하다. 또한 배울 거리가 많다는 건, 기회도 많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불안감은 왜 떨쳐지지 않는 걸까. 혹 불안의 원인을, 타이틀 부재로만 여겼기에 그런 건 아닐는지. 생각해보면 우리는 일단 타이틀을 좇고 봤다. 종류만 바뀌어 갈 뿐이다. 엄마 친구 아들이 갔다는 대학, 동기가 붙었다는 공기업과 로스쿨, 모 부서 과장님이 샀다는 아파트 등. 하나 같이 쉽지 않다. 게다가 우리 몸은 기억하고 있다. 타이틀이 모든 걸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무슨 말이냐고? 대학에 가면, 취직을 하면 애인이 생긴다는 명제가, 항상 참은 아니지 않았던가. 우리는 삶으로 이를 직접 증명해냈다. 몸속에 불안감이 선명하게 자리 잡은 이유다. 잘난 타이틀을 향해 달려 봤자, 과연 이번엔 다를 수 있을까 싶다.

"나 너무 무서워!" (출처: Netflix 오징어 게임)

"타이틀이 내 삶을 바꿔준다는 생각은, 현대인의 가장 큰 착각이다.”


유명한 철학자의 말 같다. 아니다. 아침엔 얌전한 학교 선생님이지만, 술만 들어가면 까칠한 철학자가 되는 친구 놈의 말이다. 회사 생활이 생각보다 별 거 없다는 내 푸념에 날아온 일침이었다.


우리는 형식적 쇼잉으로 일이 밀리는 걸 싫어한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삶에선, 같은 상황을 방관했던 건 아닐는지. 타이틀이란 어쩌면 쇼잉이다. 스스로 생각해낸 목표가 아니다. 대신, 사회에서 있어 보인다고 규정한 자격들이다. 쟁취를 위해선 나를 이에 끼워 맞추어야 한다. 취득 완수까지, 힘겨운 구겨 넣음은 지속된다. 만약 따지 못했다면? 시간만 쓰고 얻은 게 없는 듯하다. 뒤쳐진 기분이다. 타이틀을 땄더라도 끝이 아니다. 생각보다 별 거 없는 상황이 펼쳐질지 모른다. 난감하다. 마찬가지로 그간 무얼 했나 싶다. 한참 돌아가고 있단 생각이 들기 쉽다. 결국 타이틀을 향한 러시는, 뒤쳐지는 기분만을 선사할 수 있다. 달성 여부에 상관없이 말이다.


이제 돌아가지 않는 방안을 찾아볼 때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그간의 헤맴은 타이틀을 향한 무작정한 러시에서 비롯되었다. 내가 달려가고자 정한 길임에도, 그 길이 내게 맞는지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타이틀 취득이란 쇼잉에 갇혀, 내가 진정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사유는 부재했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무슨 사유냐고? 그럼 그간 당신이 취득한 타이틀은, 당신을 얼마나 만족시켰는가. 아직 취득하지 못해서 모르겠다고? 그럼 앞서 취득한 사람들은, 어떻게들 살고 있는가. 집은 있던가? 있다면 혹, 대출을 갚는 게 유일한 인생 목표가 되진 않았는가. 경제적 여유를 이루지 못해서 그런 거라고? 친구의 지인 중 공격적 주식투자로 40억을 번 분이 있다. 그는 주변 지인들이 살고 있는 집을 사고 싶지만, 돈이 부족하단다. 그래서 더 공격적 투자를 해야 할지 ‘걱정’ 중이라고 한다. 정말 쇼잉에 끝은 없다.


계속 뒤처진다는 생각이 든다면, 쇼잉을 향한 질주는 잠시 멈춰보자. 대신 나 자신에 대한 사유를 시작해보자. 안타깝지만 이 분야에 학원은 없다(수요가 많았다면 이미 놀이터가 성행하고 있었을 거다). 온전히 나만이 풀어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걱정 말자. 우리가 누구인가. 자기밖에 모른다는 말을 듣는 요즘 애들 아니던가. 이 자세만 잃지 않으면 된다. 지극히 나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그만이다.


그간 색칠한 OMR 카드만 몇 개인데, 이거 하나 못 풀겠나. 할 수 있다.



<더 이상의 쇼잉은 거부한다#2>에서 계속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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