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정상의 선수는 결코 '백지'가 아니다

이미 '명작'인 당신이 이론 앞에 주눅 들지 않기를

by 파란 점의 관찰자

어린 시절의 '부족함'이 당신을 키웠다

놀랍게도 많은 정상급 선수들이 비슷한 고백을 한다. "요즘 애들처럼 좋은 환경에서 체계적으로 배우질 못했어요."

그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전문적이지 못했다고 기억한다. 잘 짜인 시스템 속에서 자라난 후배들을 보며 자신의 뿌리를 '근본 없는 야생'이라 여기고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어른이 되어 만난 복잡한 이론과 시스템이 마치 '내가 가지지 못했던 정답'처럼 느껴져 우리는 그것에 쉽게 마음을 내어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을 지금의 자리에 오르게 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 '체계가 없던 환경' 덕분이다.

누군가 정해준 각도와 틀에 갇히지 않았기에, 당신은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터득했다. 그 치열하고 부족했던 시간 동안 당신의 뇌와 근육은 교과서에는 없는 수천 가지의 '나만의 해결책'을 몸에 새겼다. 그것은 빈틈이 아니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생존의 기록이다.


딸기 맛과 식물학

예를 들어, 평생 딸기를 먹어온 사람은 그 새콤하기도 달콤한 딸기 맛을 혀끝으로 완벽하게 안다.

그런데 누군가 나타나 "이건 장미과 식물이고, 당도는 12 브릭스야. 넌 이걸 모르고 먹었으니 딸기를 모르는 거야"라고 한다면, 그 말에 동의하는가?

어려운 이름을 모른다고 맛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선수들이 겪는 혼란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평생 불 앞에서 요리해 온 유명 셰프가 요리 평론가의 화려한 설명을 듣고 "아, 나는 요리를 몰랐구나"라며 기가 죽는 꼴이다.

지식은 밖에서 오지만, 감각은 안에서 자란다.

밖에서 온 낯선 지식이 안에서 단단히 자란 감각을 덮어버리게 두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주객전도다.


나 또한 그 설익은 시간을 건너왔기에

그리고 사실 이 글은 나를 향한 반성문이기도 하다. 나 역시 새로운 이론과 원리를 알게 되었을 때의 기쁨에 취해있던 적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선수를 돕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옳다는 걸 증명하려는 사람’에 가까웠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말들을 그대로 쏟아냈다. 선수가 가진 고유한 감각을 존중하기보다 내 이론이 맞다는 걸 증명하는 게 먼저였던, 부끄러운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뼈아픈 실수와 시행착오를 겪으며 깨달았다. 화려한 이론으로 무장한 나보다 묵묵히 필드에서 땀 흘리며 감각을 쌓아 올린 선수가 훨씬 더 대단하다는 것을!

이론은 선수의 감각을 도와주는 '작은 설명'일 뿐, 결코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그 설익은 터널을 지나왔기에, 지금 이론 앞에서 흔들리는 당신에게 간절히 말할 수 있다.


당신은 이미 '명작'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선수들에게 전하고 싶다. 부디 겸손함에 속아 스스로를 '백지'라 부르며 자신의 빛나는 역사를 지우려 하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은 백지가 아니라 이미 훌륭하게 완성된 '명작'이다.

누군가 당신의 그림을 보며 "이건 아주 어려운 미술 기법이군요"라고 분석해 주었다 해서, 당신이 그림을 못 그렸던 게 되는가? 아니다. 당신은 그저 붓질의 이론적인 이름을 알게 된 것뿐이다.

코치의 역할은 선수를 백지로 되돌려 다시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라는 명작이 낯선 이론과 용어들에 휩쓸려 망가지지 않도록 지키는 것. 당신이 무의식 중에 행하던 그 놀라운 플레이에 '확신'이라는 액자를 끼워주는 것. 그것이 내가 선수들에게 해야 할 일이다.

부디 당신이 얼마나 뛰어난 존재인지 스스로 깨닫기를 바란다. 화려한 이론보다 정상에 선 당신의 손끝에 걸리는 그 투박한 감각이 이미 수많은 정답을 증명해 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