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 비망록] 성적은 원하면서 감정노동만 요구하는 아이 앞에서
나는 전문가다.
기술을 가르치고, 선수를 코칭한다. 나에게는 타협할 수 없는 직업윤리와 코칭 철학이 있다.
수많은 프로 선수들과 어린 꿈나무들을 지도하며 뼈저리게 느낀 점이 하나 있다.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청소년 선수들 중에는 훗날 냉혹한 프로 무대까지 살아남을 가능성과 도중에 주저앉아버릴 나약함이 위태롭게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아이도 그랬다.
성적이 좋고 훈련이 잘 풀릴 때, 아이는 새로운 기술을 시도하며 눈을 반짝였다. 그 순간만큼은 프로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커 보였다.
하지만 규모가 더 큰 대회 출전과 전국대회 본선 진출이 결정되면서, 경기 중 나온 실수 하나가 아이 내면의 '위험 회피 본능'을 강하게 건드렸다.
그 순간, 아이 안의 나약함이 가능성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성적은 내고 싶어요. 정말 잘하고 싶어요."
아이는 간절함을 내비쳤다.
그리고 코치인 나는 그 간절함에 응했다.
하지만 그 뒤에는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모순된 요구가 따라붙었다.
성과를 위해 견뎌야 할 훈련의 고통은 거부한 채, 오직 자신의 기분과 정서만 맞춰달라는 떼씀이었다.
나는 아이의 부담을 덜어주려 기술적 피드백을 줄이고 한 발 물러서 보았다.
그러자 돌아온 것은 호소였다.
아이는 훈련의 내용이 아니라 "코치님이 나랑 같이 밥을 먹어주지 않는다", "나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지 않는다"며 사적인 관심의 결핍을 문제 삼았다. 급기야 부모에게는 코치가 칭찬은커녕 "채찍만 주고 있다"며 사실을 왜곡하여 억울함을 토로했다.
아이는 훈련의 성취감이 아닌, 사람들의 위로와 맹목적인 관계 속에서만 안정을 찾으려 했던 것이었다.
결국 사단이 났고, 사단을 냈다.
전문가로서 더 이상 아이가 느끼는 허상의 위협을 무조건 다독여주지 않기로 했다. 나도 더 이상은 물러 설 수 없었다.
아이는 타인이 보는 앞에서 연기를 했다. 자신을 지지해 주던 관계가 더 이상 자신의 기분을 맞춰주지 않는다고 느낀 순간, 아이는 "나를 힘들게 하지 말라"는 비언어적 협박을 가해왔다.
급기야 집과 외부를 가리지 않고 감정을 극한으로 폭발시켰다. 미성년자라는 점을 이용해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자극했고, 결국 어른들이 견디지 못하고 굴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치밀하게 만들어냈다.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부모는 "아이가 무슨 협박을 하냐"라고 내게 따져 물었지만, 아이는 그 혼란을 틈타 우리가 정한 훈련 약속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
관계는 그 아이에게 성장을 위한 발판이 아니라 두려운 승부의 세계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안락한 도피처였을 뿐이다.
나와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두려움을 마주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와의 관계를 끊어서라도 이 압박감에서 도망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관계가 훈련보다 우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코칭이라 착각했던 것일까.
성과라는 변수 앞에서 약한 동기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나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성적은 원하면서 감정노동만 요구하는 아이 앞에서, 나는 냉철하게 기술을 전수하는 '전문가'와 아이의 눈치를 살피는 '보모' 사이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다.
무조건적인 공감이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아이의 성향에 따라 때로는 나의 윤리와 철학은 바꿔가며 코칭해야 한다는 것.
전문가로서 무기력함과 좌절감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나는 오늘 비싼 수업료를 치른다.
사람을 세운다는 일.
코칭이라는 이 길.
참 어렵다.
결국, 돈을 벌려면 맞춰야 하는 것인가?
나는 지금 나의 윤리와 철학, 그리고 돈 사이에서 방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