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안 되는지보다, 어떻게 되게 할 것인가

[코치의 비망록] 좋은 스승이라는 기만을 내려놓으며

by 파란 점의 관찰자

‘좋은 스승’이라는 강박

프로 선수들과 엘리트 주니어 선수를 코칭하며 좋은 성과를 내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주니어 선수들의 문의가 들어왔다.

누군가에게 선망의 대상이 된다는 것, 그리고 나를 믿고 아이를 맡기고 싶어 하는 부모들의 간절함을 마주하는 것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주니어 선수들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알 수 없는 마찰이 잦아졌다.

나는 필드 위에서 실력과 수치로 대화하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때때로 정서적인 어리광이나 사적인 유대감을 기대하며 다가왔다.

훈련의 밀도를 높이려는 찰나에 마주하는 그 서툰 감정들 앞에서, 내 안에는 차가운 질문이 차올랐다.

“너는 왜 실력을 내놓아야 할 자리에 사적인 감정을 요구하니?”

말하고 나서 나는 자책했다.

아이들을 품지 못하는 내가 부족한 지도자인 걸까 고민하며, 억지로 그들의 발달 과정과 정서에 치우쳐보려 애쓰기도 해 보았다.

하지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피로감은 커져만 갔고, 나의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며 코칭은 정체되었다.


결국, 오랜 고민 끝에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세상에는 씨앗을 심고 싹이 틀 때까지 인내하며 물을 주는 '정원사' 같은 지도자가 있고, 거친 원석을 깎아 가장 눈부신 광채를 내는 '세공사' 같은 지도자가 있다는 것을...

나는 본질적으로 세공사였다.

"왜 안 되는지"를 분석하며 감정을 다독이기보다, "어떻게 되게 할 것인가"를 설계하며 정점을 찍어주는 일에 최적화된 사람이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분야의 문제라고 본다. 내가 결과를 내는 일에 전념할 때 가장 빛나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나니, 내가 잘하는 것에 몰두하는 것이 결국 선수들에게도 가장 큰 이득이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착한 스승이라는 기만을 내려놓다

오랫동안 나는 '착한 스승'이 되고 싶었고,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웃어주고, 성과가 나지 않아도 "괜찮다, 다음이 있다"라고 말해주는 것이 지도자의 미덕이라 믿으려 애썼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도, 결과를 갈망하는 선수에게도 기만이었다.

다정한 위로는 때로 치명적인 독이 된다.

실력을 날카롭게 가다듬어야 할 귀중한 시간에 사적인 감정을 나누고 정서적 유대를 확인하는 일은 내게는 성장을 유예시키는 달콤한 핑계에 불과하다.

긴 시간 동안 나는 깨달았다.

내가 선수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진실된 사랑은 '좋은 사람'이 되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세상 어디에서도 얻지 못할 '실력'이라는 무기를 갖게 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 나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으려는 욕심을 버린다.

대신 차가울지언정 명확한 지름길을 제시하는 전문가가 되기로 했다.

내 피드백이 날카롭고 직설적인 이유는 선수를 미워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선수의 시간을 누구보다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실력을 내놓아야 할 자리에 감정을 섞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선택한 형태의 책임감이다.


모든 꽃을 피우려 애쓰지 않기로 했다

들판에 핀 모든 꽃을 내가 다 피울 수는 없다.

하지만 이미 꽃봉오리를 터뜨릴 준비가 되어있는 스스로 증명해 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꽃들을 찾아내는 눈은 내게 있다.

나는 '착한 스승'이 되기를 포기하는 대신, '결과를 내는 전문가'로서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기로 했다.

나만의 엄격한 기준을 견디며 실력으로 대화할 준비가 된 선수들에게, 내가 가진 모든 전문성을 쏟아부어 그들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정점을 찍어주는 것.

그것이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자, 결과로 증명하는 전문가로서 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 다정한 위로가 아닌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실력'이라면,
나의 냉정함은 당신을 향한 가장 뜨거운 지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