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가장 좋은 어른을 만난 날

인생의 나침반을 선물 받은 날

by 파란 점의 관찰자

부모님이 잘 물려주신 신체조건과 운동 감각을 바탕으로 엘리트 코스를 지나, 국내 최고 수준의 프로 무대에 섰습니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압박은 제게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중요한 시도를 앞두고는 실패에 대한 예민함과 분노, 불안이 한꺼번에 몰려왔고 마음이 얼어붙듯 굳었습니다.

시도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능력 저하 패턴이 반복됐고, 저는 그 모든 문제를 '내 멘탈이 약해서 생기는 일'이라고 단정했습니다. 절박했던 저는 검색창에 막연히 '심리 상담'을 입력했습니다.

그때 우연히 한 뉴스 기사 속 선생님을 발견했고, 업무 관계자에게 도움을 요청해 연락처를 얻었습니다. 그리고는 주저 없이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당장 갈 수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무지에 가까운 용기였지만, 그만큼 절실했습니다.

당일은 어렵다는 설명을 들었고 며칠 뒤 상담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날, 저는 생애 처음으로 '진짜 코치'를 만났습니다.

상담을 마치며 제가 했던 말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선생님께 상담받고 싶어요. 계좌번호 알려주세요."

지금에야 세상 물정 몰랐던 말이었다는 걸 알지만, 그 순간 선생님은 단호함 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제 사고의 방향을 다시 열어 주셨습니다.

그날이 제 인생에서 가장 좋은 어른을 만난 날이었습니다.


나를 버티고 기다려 준 첫 번째 제안

상담이 이어지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선생님은 제게 제안을 하셨습니다.

"일지를 써보면 어떨까?"

저는 거의 반사적으로 밀어냈습니다.

"아니요, 하고 싶지 않아요."

회피, 불안, 시도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예민함...

그 감정들을 저는 그대로 쏟아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단 한 번도 밀어내지 않으셨습니다.

저를 버텨주셨고, 기다려주셨고, 감정의 폭발 뒤에 숨어 있는 '내가 모르는 나'를 계속 사고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좋은 어른'이라는 존재를 처음 배우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저는 부모보다 선생님께 더 깊은 미안함과 감사함을 느낍니다.

혈연이 아닌 '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게 시간을 쓰고 마음을 쏟아준 유일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가끔 농담처럼 말했습니다.

"너랑 비슷한 제자 만나봐. 그럼 알 거야."

그 말이 농담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시간이 흐를수록 그 안에 담긴 진심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 진심을 깨달을수록 저는 더욱 겸허해집니다.

과거의 나처럼 누군가에게 구원을 바라고 오는 제자들이 있지만, 저는 아직 그들에게 좋은 어른이 되지 못하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구원해야 한다는 사명감보다, 나의 역량과 한계를 성찰하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받을 수 있었던 마음을, 언젠가 누군가에게

저는 선생님께 참 많은 미안함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커다란 감사도 남겼습니다.

그 마음을 저는 돈으로도, 말로도 갚을 수 없습니다.

대신 '코치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으로 보답하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제가 무엇을 하든 늘 같은 말로 지지해 줄 사람입니다.

"잘했다. 넌 그렇게 할 줄 알았다."

저는 그 믿음에 기대어 숨지 않고, 꾸준히, 일관성 있게, 배신하지 않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자랑스럽게, 그리고 부끄럽지 않게.

"선생님이 보여주셨던 '좋은 어른'의 모습을 제 안에서 조금씩 완성해 가며, 언젠가 저도 제 제자들에게 그 마음을 건네줄 수 있을 때까지 성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