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6시. 많은 이들이 하루 일과를 끝나고 퇴근하는 시간, 나는 라디오를 켠다.
이 때는 내게도 하루를 차분히 정리하는 시간이다. 그 날 하루 종일 했던 일들 중 빠진 게 없는지 돌이켜 보기도 하고, 서해로 시원하게 뚫린 창밖으로 다른 나라의 이국적인 음악을 들으며 세상을 두둥실 여행하는 기분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기도 한다.
이 라디오 프로그램의 오프닝 멘트는 매일 다르지만 오프닝 멘트의 마지막 문장은 항상 같은 말로 마무리된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매일 듣는 이 말이 내가 오늘 하루를 '잘' 보냈는지에 대한 내 주관적인 감상에 따라 오만가지 생각을 들게 한다. 여기에서 '잘'보냈다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그 날이 효율적이었고, 무언가를 많이 했고, 하려고 했던 일을 어찌 됐든 했다는 의미와도 상통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때에 따라서는 이 말을 들으며 남모를 죄책감이 들기도 해서 따뜻한 말이지만 내게는 마냥 편하지만은 않은 말이라는 사실이 씁쓸하다.
며칠 전 신문에서 장애인 동료 지원가로 일했던 故설요한씨의 죽음과 사회적 문제를 다룬 기사를 읽었다. 그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일하며 동료 장애인을 돕는 일을 했지만 기름값과 식비도 커버되지 않는 60만 원이 조금 넘는 급여를 받으며 생계를 이어나가야 했단다. '미안하다, 민폐만 끼쳤다'라는 문자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가장 큰 요인중 하나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노동에 대한 인식의 프로세스에 있다는 지적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보통은 '활동(노동) -> 가치 -> 대가'순이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활동 -> 대가 -> 가치'의 순으로 노동의 질을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개가 바뀌면 사회에서는 아주 슬픈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한 사람의 노동이 그 진짜 가치에 의해 평가받을 수 없고 그저 월급이 높은 직업이 가치 있는 일이 된다면, 이렇게 먹고살기 힘든 이 시대에 결국 어떻게 해서든 돈만 많이 버는 일을 찾으면 장땡이라는 누군가의 무자비한 그 말에 어느 누가 쉽사리 반격할 수 있을까.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그 라디오의 오프닝 멘트가 나름대로 본인의 하루를 무사히 살아낸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아무런 내면의 죄책 감 없이,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의미로 다가올 수 있는 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당신의 하루가 효율적이고 바쁘게 흘러가지 않았다고 해도. To-do-list에 적어둔 오늘의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했다고 해도. 심지어 온갖 실수 투성이었던 날이라고 해도.. 사회로부터 받는 노동에 대한 대가의 크기에 상관없이 나의 하루를 온전히 살아냈다는 것만으로도 그 하루는 그 자체로 의미 있다. 사회적 보상에 의해 진짜 가치가 변질되는 슬픈 일이 이 사회에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