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모든 모험가들에게
추운 날씨 탓인지 아니면 내가 처한 상황 탓인지 모르겠지만 요즘 들어 몇 년 전에 했던 노르웨이 여행이 자주 생각난다. 내가 갔을 때는 그 나라의 여름이었지만 무덥지 않았고, 여름 가운데에도 겨울이 언뜻언뜻 비치는 계절이었다. 노르웨이는 모험가들을 많이 배출한 나라로도 유명하다. 바이킹의 후손들답게 최초로 남극을 정복한 아문센, 북극탐험 선구자 난센, 그리고 뗏목 하나로 태평양을 건넌 헤이 에르달 같은 역사적인 모험가들이 모두 노르웨이 출신이다. 그들이 언젠가는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곳들에 서있었을 때도 그저 '대단하다'라는 상투적인 감탄만 반복했었는데 최근에 그들은 각자의 삶을 어떤 태도로 대했을까에 대한 궁금함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들은 생전에 스스로를 모험가라고 생각했을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불안함을 떨쳐내고 도전하게 했을까?
인생은 불확실함의 연속이라고 하지만 아주 최근까지 내가 살아왔던 세계는 그래도 어느 정도는 확실한 것들이 나를 지탱해주고 있었던 것 같다. 사회는 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내가 가야 할 길들을 꽤 자세히 제시해줬다. 약 10년 동안의 정규 교육을 거쳐 대학교까지 졸업하니 어느덧 법적으로 성인이 되어 있었고 성인이 되자 갑자기 광야에 홀로 내던져진 기분에 아주 잠시 엄청난 허무에 시달리긴 했지만 곧 취업이라는 다음 과제가 나를 그 막막함에서 서둘러 건져 또 다른 길로 안내해줬다. 그러고 나니 또 어렴풋하긴 했지만 저 멀리 닦여진 길이 보였다. 물론 모든 순간에는 그 나름대로의 불확실성이 있었지만 어찌 됐든 그런 순간들이 지나고 나니 나도 아침마다 가야 할 곳이 생겼고, 그곳에는 내 책상이 있었으며, 책임감을 부여받은 대가로 월급이라는 것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
그때도 불안함이 없진 않았으나, 당장 그 달, 아니 어쩌면 그다음 해까지 정도의 내 삶은 대략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는 확실한 것들이 있었다. 그 생활을 과감히 접기로 한 것은 무모함이었을까, 도전이었을까. 제삼자 입장에서는 그냥 어떤 한 사람의 인생에 벌어진 특별할 것 없는 사건이긴 하겠지만, 과거에 목숨을 걸고 대자연에 맞섰던 모험가들에 비할 수는 더욱 없겠지만 당사자인 내가 이전에 비해서 확실히 느끼는 변화는 예전보다 더 불확실하며 복잡한 세상 속으로 들어왔다는 거다.
그리고 이쪽 세상은 내가 전에 살던 세상에 비교해서 운(불확실한 모든 것들)의 영향이 더 크며, 한 결과적 현상에 대해 예측 가능한 요인뿐만 아니라, 상상도 못 했던 원인들이 작용하는 곳이다.
어떤 이는 일은 '열심히'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스마트'하게 해야 한다고 하는데 어떤 이들은 일은 질보다 양적인 투입이 먼저 돼야 한단다. 어떤 이들은 무언가를 하기로 결정했다면 당장 현재 하던 것을 버리고 몰입해서 시작하라고 하는데 어떤 이들은 창업을 할 때는 직장을 다니며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공부도 다 때가 있다고 하는데 어떤 이들은 오히려 중년에 본인 뇌의 역량이 가장 잘 발휘된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상품이 진정으로 가치 있다면 마케팅은 필요하지 않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마케팅이 상품의 존망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한다. 지금 세계적인 기업이 된 구글은 초기에 많은 예측가들과 경제학자들에 의해 '오래가지 못할 별 특별한 것이 하나도 없는 회사'라는 혹평을 들었고, 일본은 아직까지도 한국보다 뛰어난 반도체 기술력을 갖고 있지만 바로 그 기술력 때문에 (그 뛰어난 기술력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엄청난 자금 때문에) 한국에게 반도체 1위의 자리를 내어줘야 했다. 이미 최근까지도 모든 이들이 추구했던 삶의 가치들(좋은 성적표, 등수, 학벌, 직장 등)이 흐려지고 새로운 가치들(창의성, 커뮤니케이션 능력, 문제 해결 능력, 개성 등)이 더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는 것만 봐도 세상은 점점 더 비선형적이고 복잡하게 진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정해진 방법도, 규칙도, 지름길도 없는 예측 불가능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소신을 갖고 본인의 길을 향해 한 발짝씩 떼어가는 이들이야 말로 현대판의 진짜 모험가들이 아닐까. 수많은 이견들과 이론들 속에서 신념을 갖고 본인의 선택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에게 '이건 이렇게 해야 성공한다'라는 과거의 가이드라인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렇게 해서 성공을 할지, 아닐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정해진 답조차 없다. 그냥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밀고 나가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확실한 것은 없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위대한 개별성이고 그 개별성은 그 누구의 그럴듯한 예측도 빗겨나갈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리고 나는 이 개별성의 힘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