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백수다. 그렇다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는 백수는 아니다.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나름 격려해보자면, 나는 자발적으로 백수가 되었고, 또 나를 창업 준비생 혹은 이미 법인등기까지 나왔으니 이참에 그냥 인심 크게 써서 한 법인의 대표라고 자칭할 수도 있겠으나...
아직은 그 누가 봐도 그냥 딱, 백수다.
하루에 얼마큼의 시간 동안을 노동하는지와는 상관없이 정해진 시간에 어딘가로 나가서 월급을 받아오지 않는 이들을 우리는 백수라고 한다. 그래서 나도 자연스레 그 카테고리 안에 들어갔다. 백수는 사회적 관점으로는 국가의 실업률을 높이는 골칫덩어리고, 집안에서는 걱정스러운 애물단지이지만 이래저래 눈칫밥을 먹어야 하거나 자존심이 좀 상하는 상황들(예를 들면, 은행 직원과 창구에서 대면해야 한다던지)만 빼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나쁘진 않다.
백수의 가장 큰 메리트는 바로 시간이다. 본인이 아침형 인간이든, 야행성이든 상관없이 내 시간 중 가장 효율적인 때에 어떤 일을 할지, 얼마큼의 시간을 어떻게 쓸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내 삶의 주인이 된 느낌이 든다. '자, 이제 시간과 자유는 확보되었으니, 경제적 자유만 확보하면 된다.'라는 생각이 나를 왜인지 모르게 독립적인 인간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 부분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함정이지만)
그래서 나를 포함한 많은 세상의 백수들에게는 어쩌면 그들의 부모나 형제도 모를만한 그들만의 삶의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 비록 당장은 사회가 생각하는 '한심한 인간'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백수의 카테고리에 들어간다는 이유로 각자의 바지 주머니 속에 꼭꼭 접어 두었지만 말이다.
문제는 백수 스스로 본인에게 주어진 이 시간을 엄청나게 소중한 자원으로 대하지 않는다(혹은 못한다)는 것과, 또 한편으로는 이 소중한 백수의 시간과 가능성을 많은 이들이 생각보다 가치 있게 인정해주지 않는다는데 있다. 특히 가족이나 잘 알고 지내는 가까운 이들이 더한 경우가 많다. 직장을 찾아 백수의 생활을 빨리 탈피하고 싶은 이들이나 아니면 정말로 행복한 백수생활을 더 오랫동안, 바라건대 평생 동안 즐기고 싶은 이들이라면 무엇보다 본인에게 주어진 시간을 금으로 봐야 한다. 건강과 시간만큼 소중한 자원은 없다. 이 두 가지만 있어도 정말 많은 것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시대다.
내 시간을 잘 경영해서 '어떤 일을 해야겠다'라는 목표가 생기면, 그때부터 내 시간은 훨씬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시간관리에 대한 책은 나도 남부럽지 않게 읽어봤지만 일어나서부터 잘 때까지의 모든 시간을 30분 단위로 쪼개서 과연 내가 실제로 일을 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를 체크해보라는 등의 조언은 정말이지 현실에 반영하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해내는 사람들이 성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나는 하루를 30분 단위로 쪼개는 대신 반대로, '30분 몰입의 시간'을 갖는 것을 선호한다. 타이머를 맞춰놓고, 30분 동안은 엉덩이 딱 붙이고 앉아 주어진 한 가지 일만 하는 것이다. 이렇게 30분의 덩어리들을 매일 쌓아가며 일을 진전시켜 나가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백수는 이것을 실천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다.
나는 시골에 살다 보니 해야 할 잡다한 일들도 많다. 난롯불이 꺼지지 않게 계속 나무도 넣어줘야 하고, 끼니도 걱정해야 하고, 청도소 해야 하고.. 내가 모든 집안일을 전담하는 건 아니더라도 겨울에는 몸이 움츠러들어 모든 움직임 더 느려지듯이 모든 생활이 더 자연에 밀착된 시골생활은 4계절 내내 시원하고 따뜻한 아파트에 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요한다. 다른 이들도 분명 나처럼 각자의 환경에 따라 본인의 시간을 좀먹는 일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백수는 이런 잡다하지만 해야 하는 일상적인 일들에 묶여버리기 쉽지만 그럴 때일수록 마음을 다잡고 현재의 '시간만 여유로운 백수'에서 '시간과 돈으로부터 어느 정도 편안해진 백수, 혹은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사는 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는 물론이고 가까운 이들도 같이 노력해줘야 한다. 백수의 시간이 적재적소에 쓰이지 못하거나 평가절하되는 순간, 아직 피지 못한 그들의 계획도, 미래의 가능성도 힘을 잃는다. 백수가 과로사하는 일만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