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재택근무 아니,
자율근무 예찬자의 소심한 변명

변명: 옳고 그름을 가려 사리를 밝힘

by 모멘트

최근 그녀는 지금 다시 생각해도 깜짝 놀랄만한 스스로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했다.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어려서부터 그녀가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 세상 여러 곳에서 유랑하듯 살아왔고 틈만 나면 여행을 즐겨, 지인들은 그녀가 집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인 줄 의례 짐작했고 무엇보다 그녀 또한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물론 그녀는 지금도 여행을 좋아하지만, 최근 그녀는 본인이 외출을 즐기는 것만큼이나 집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는 시간을 좋아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마치 뉴턴이 발견한 중력의 법칙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였던 것처럼 이 발견은 그녀의 생에서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었는데, 왜냐하면 그녀는 정말 오랜만에(어쩌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온전한 자신이 되는 일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나 자신이 된다는 것은 마치 요가 시퀀스의 가장 마지막 단계인 Savasana(송장 자세)에서 깊게 호흡하며 쉴 새 없이 일어나는 생각과 미련을 그냥 관조하며 흘러가게 두어 내가 오로지 그 모든 것들의 '통로'로만 존재할 때 느낄 수 있는 후련함과 비슷하지 않을까. 모든 것을 비운 상태에서 온전히 홀로 있을 때만 건질 수 있는 보석 같은 순간과 생각들이 있는데 그것들보다 내가 누군지를 더 잘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은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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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날 해야 하는 일을 그 종류와 성격에 따라 큰 힘을 들이거나 억지스럽게 하지 않아도 가장 자연스럽게 잘 해낼 수 있는 시간으로 자유롭게 배치했고 그것은 아마도 그녀가 100% 온전한 자신이 되는 데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었다. 경계가 없는 자유는 종종 막막함으로 다가와 우리를 당황스럽게 한다지만, 적어도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24시간이라는 시간만큼은 그녀가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그녀는 24시간이라는 경계 안에서 그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엄청난 자유를 느꼈다.


그 자유의 소중함을 알게 된 그녀는 혼자 있는 시간에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해가 뜨려고 하는 그 시간에 커튼을 걷어 햇빛을 가득 맞으며 아침을 시작했고 꾸준히 운동을 해 신체를 단련했고, 아침부터 독한 커피를 위에 넣기 위해 사무실 앞 커피숍으로 향했던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사실 이는 오늘 하루도 일터에서 정신줄을 놓지 않기 위한 그녀만의 작은 발악이자 의식이었으며 내심 그것을 꽤나 즐긴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 의식 없이도 그녀의 내면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녀만의 작은 정원에서 허브잎을 따다가 아침마다 허브차를 즐기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고, 그동안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저만치 밀쳐두었던 책들을 하나씩 찬찬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일에 있어서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날 끝내야 할 일들을 정리해서 스스로의 페이스 대로, 쓸데없이 새는 시간 없이 일을 마무리했다. 물론 그녀의 일이 컴퓨터와 휴대폰 한대만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든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WhatsApp Image 2022-09-23 at 9.50.48 PM.jpeg 아침햇살이 주는 찰나의 평화

홀로 보내는 농밀한 시간은 순간의 기분전환이나 흘러가는 시간을 어떻게 붙잡아야 좋을지 몰라서 허둥대며 마구 보내던 시간을 최소화했고 그 덕분에 그녀는 더 깊이깊이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 그녀가 좋아하는 일과 그녀에게 의미 있는 일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그녀가 했던 두 번째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녀가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했던 많은 일들이 실제로 그녀에게 정말 의미 있는 일을 분별해내기 어렵게 했던 것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내가 선택하지 않은 곳에 빼앗기고 나면 인스턴트식 재미를 찾을 정도의 에너지밖에 남지 않기 마련이니까. 그녀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곳이 직장이었지만 그녀를 포함한 이 세상 모든 이들의 진정한 존재가치는 결코 그들의 직업 하나로 정의될 수 없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기에 그녀가 자발적으로 선택하지 않은 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그녀에게는 꽤나 고단하게 다가왔다.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이 모든 중요한 발견과 변화가 자신의 시간에 주체성을 갖음으로써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내일이면 또다시 그녀의 생체리듬과는 무관하게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정해진 시간에 오는 지하철에 몸을 싣고, 정해진 시간보다 더 머무를 수는 있을지언정 절대로 정해진 시간 전에는 나오지 못하는 곳으로 가야 할 것이다. 같이 모여서 일을 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고 또 누군가는 다른 이들과 일정한 공간에서 매일 협업을 하며 더 좋은 성과를 내고 만족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일은 사무실에서 해야 하며 집에서 일을 하는 이들은 제대로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회에서 습관적으로 굳어진 통념, 조금 성급한 일반화를 시키자면, 그 '꼰대 마인드' 때문에 아직도 자신에게 정말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지(좋아하는 일 말고) 그리고 언제 어떤 일을 했을 때 본인이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지 같은 개인에게 그리고 사회에도 매우 중요한 고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그녀와 같은 이들이 이 세상에는 지금도 수없이 많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