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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구아빠 Oct 29. 2019

『이상한 정상가족』, 김희경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더북클럽 서평팀, 책갈피

리뷰작성자 :개미


함께 모여 책을 읽고 자유롭게 글을 씁니다. 모두의 독서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북클럽 #책갈피





 책의 제목과 부제로 요약이 가능한 책이다. 정상으로 규정되고 유통되어온 가족의 개념은 얼마나 취약한가. 그리고 그 '정상'의 범주에 속하지 못한 이들은 얼마나 많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가....


책을 다 읽고 난 뒤,  나 역시 가족을 바라보는 많은 관점들이 기존의 고정관념과 별반 다르지 않았구나 생각해 보게 되었다.   



 책소개


: 책의 시작은 체벌에서부터 시작된다. 체벌의 무용성에 대해 운을 떼는 것으로 시작되는 탓에 얼핏 아동인권과 복지에 관한 책으로 보일 수 있겠다.


하지만 점차 시선을 높여 마지막에서는 '공공성 강화'를 주장하는 것으로 끝마치는 점층적인 구성의 책이다.


짧게나마 정리해보았다.




총 4부로 나뉘어 있다. 아동의 시선에서 시작해 점차 국가단위의 문제로 서술이 진행된다.



책의 1부

: 가족 내 약자인 아이를 다루는 태도에 관한 문제 의식을 보여주는 파트이다. 보호받을 대상이라는 미명아래 지나치게 친권이 강조되어 있는 우리의 가족문화를 들여다 본다.


체벌은 필요한 것인지, 친권이 강조된 탓에 벌어지는 과보호, 학대, 폭력 등을 살피고 이러한 문제들이  어떻게 벌어지고 묵인되어 왔는지 살펴볼 수 있다.  



책의 2부

: 미혼모, 다문화가정, 동성가족, 비혼자 등 '비정상가족'에 관한 파트다. 한국의 가족주의는 보통의 혼인과 출산을 통해 형성된 가족만을 정상으로 강조하는 이른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비정상가족들에 대한 근거없는 편견,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는 현실들을 보여준다. 입양과 관련한 사회의 문제들도 제기된다.



책의 3부

 : 한국에서 왜 가족이 이토록 강조되어 왔는지를 물으며 그 원인을 통해 누적된 사회의 난점들을 지목하는 파트이다.


애주기에 걸친 문제들을 국가가 아닌 개인이 해결해야 했던 역사적 배경 탓에 가족단위의 '사다리 경쟁'이 심해지고, 덕분에 낮은 사회적 신뢰와 배타적 가족주의가 팽배해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 사회는 각자도생의 생존경쟁에서 가족끼리 뭉쳐 경쟁하고 타인은 배척하고 구분짓는 사회가 아닐까?



책의 4부

: 결론에 해당하는 파트이다. 앞서 말한 가족의 문제 해결을 위해 결국 공공성의 강화가 필요함을 피력한다.  그 모델로 스웨덴의 예시가 많이 나온다. '삶은 개인적으로, 해결은 국가적으로' 라는 소단락으로 책의 주장을 함축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 동안 개인에 미뤄두고 가중시켜왔던 문제들을 국가가 책임지고 개입하여 공공성의 강화함으로써 개인의 자율적인 삶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자는 주장이다.

 



독후감상

- 살다보면 어떤 고정관념에 갇혀 그 것이 '정상'이라 인식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성장의 기회는 기존의 규범에 물음표를 마주할 때 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답이 기존의 질서를 부정하는 것이든 강화하는 것이든 한 번쯤 자연스럽게 생각하던 것들에 대해 고민하는 것 자체로 사유의 높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국식 가족주의에 대해서 여러가지 물음표를 던져준다. '일가족동반 자살'이라는 뉴스 기사의 제목이 이상하지 않는가?, '미혼모는 있는데 미혼부는 왜 없는가?', '왜 믿을건 가족 뿐인가?' 등등 세심하고 깊이있는 물음들 때문에 참 좋게 읽었다. 가족 내 소수, 소수자 가족, 정상 가족 등 여러 차원과 방면으로 흔들어 깨우는 질문들이 많은 책이었다.   



 몇가지 마음에 들었던 문장들로 감상을 마친다. 많이 줄였는데도 많다.







공감의 능력이 확대되는 건 아름답지만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어렵게 익혀야 하는 일이다. 흔히 상상하는 것과 달리 공감의 확대는 어쩌면 감성이 아니라 이성을 발휘해야 도달 가능한 목표일지도 모른다.



나와 다른 사람과 공존하는 기술, 갈등의 해결, 세상의 고통을 줄이는 방법을 이야기 할 때 역지사지의 확대, 공감의 향상을 핵심에 놓는 것은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중략).....

역지사지하고 공감하는 능력보다 사적 관게에선 예의, 공적 관계에선 정책과 제도가 우리의 공존을 가능하게 해주는, 더 인간적인 장치다.




학창 시절 회초리나 채찍으로 매를 맞았던 이들은 거의 한결같이 그 덕에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믿고 있다. 내가 볼때는 이렇게 믿는 것 자체가 체벌이 끼치는 악영향 중 하나이다

 -버틀란드 러셀-


한국의 가족주의는 소위 '정상가족'인 가부장적 가족만 인정하는 일종의 이데올로기다.




'결혼=출산'의 등식이 지나치게 확고한 탓에 제도의 바깥에서 출산함으로써 가족의 순수함을 훼손했다고 여겨지는 미혼모와 그 자녀들은 제도적, 사회적 차별에 시달린다.




내 혈연이 아니더라도 세대를 이어 인류가 계속 존재하리라는 기대가 사라진다면, 개인의 삶은 유한해도 나보다 더 크고 지속되는 전체에 연결되되어 있다는 믿음이 사라진다면, 그 모든 추구와 삶의 의미도 빛을 잃는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모두 미래의 낯선 이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존재의 의미를 다음 세대에, 아이들에게 빚지고 있다.




 나는 이 공공성의 강화를 통해 우리도 개인과 공동체의 평화로운 공존의 길을 만들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복지국가의 사회적 계약에서 드러나는 개인-가족-국가 간의 관계 유형을 비교해보니 미국은 개인-가족의 관계를 중시하고 독일은 국가-가족의 관계를 중시한다면, 스웨덴은 국가-개인의 관계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발표자들은 이처럼 국가와 개인 간의 관계가 중심에 있는 스웨덴 식의 사회적 계약 방식을 '국가주의적 개인주의'라고 불렀다.



스웨덴의 아빠가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300분이고, OECD 국가 평균은 47분이다. 한국은? 6분이다.

 



By. 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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