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10월, KJ의 어느 날
벌써 10년이 더 지난 일이다. 2008년 대한민국 국보 1호인 숭례문 방화 사건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문화재에 대한 안일한 관리체계와 한 노인의 개인적 앙심은 순식간에 숭례문을 새까맣게 태워버렸고, 소실된 숭례문의 이미지는 텔레비젼, 인터넷, 신문 등 각종 매체를 통해 전국 방방곳곳 퍼져나갔다. 잿더미가 된 숭례문을 바라본 우리의 마음은 참담하고, 허무했으며, 한편으론 우리에게 경각심과 소중함을 일깨워 준 사건이 되었다.
서울은 하루에도 수십채의 건물들이 지어지며, 붕괴된다. 우리는 건축물들의 실용적 목적 혹은 보존가치를 평가하고, 그 기준에 미달된다면 가차없이 허문다. 옛 건축물들은 그렇게 살아 남았다. 의미있는 건물들은 문화재로 등록되고 보존 되었으며, 잘 지어진 건물들은 세월 풍파를 이겨내며 그 자리를 유지했다. 옛 것의 멋과 맛을 아는 사람만이 옛 건물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현대식의 실용적인 건물을 선호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 철근과 시멘트로 쌓아 올렸다.
그리고 사리분별 빠른 몇몇은 옛 건물의 희소성을 파악하고 과거와 현대를 융합한 포스트모더니즘(?) 식의 건물을 재건한다. 어떠한 형태로든 서울은 변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서울을 지킨 건물들에 대해 말하고 싶다. 경복궁, 덕수궁, 창경궁 등 이미 기능적으로는 그 가치를 잃었으나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건물들의 보존 말이 다.
이 건물들은 우리 주변에 꽤 오래전부터 한자리를 차지하고 지켜왔다. 짧게는 수십년 간, 길게는 수백년 간 동일 한 위치에서 지금도 여전히 같은 모양새이다. 세상에 불변하는건 없다지만 마치 불변을 보여주려는 것처럼 건축물들은 계속해서 복구되고 복원된다. 자연재해, 세월의 흐름, 전쟁 등으로 의한 손실은 무색해 보이게 복원기술은 날 로 발전하고있다. 마치 원한 존속 될 것처럼 보이는 이 건물들은 생성과 소멸의 순환구조가 아닌 생성과 생성의 입지로 나아가는 듯 보인다.
그러나 미셀 푸코는 역사적 맥락의 유적의 한계에 대해 지적하다. 우리는 결코 원형을 잃은 유적의 온전한 옛 모습을 되살릴 수 없으며, 과거의 흔적은 역사적 지층의 원한 단절, 시간의 단절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새롭게 복원된 문화재들을 보면 때론 현대 기술의 후퇴를 느낀다. 문화재 복원은 자본의 논리 에 따라 때론 정치논리에 따라 기술이 천차만별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다시 숭례문으로 돌아와보면, 방화 사건 이후로 3년만에 숭례문은 다시 우리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다시 마주한 숭례문은 우리 알던 그 숭례문이 아니다. 그때서야 우리가 알고 지내던 숭례문도 600년 전 그 숭례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쩌면 우리는 색이 조금씩 바래어가는 단청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부식되어버린 나무 모습으로 견고했던 숭례문을 상상하고 그 시대의 정신을 헤아리려 했는지 모른다
바랜다는 것은 무엇일까? '만물은 유전하며 같은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던 고대 사상가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한번 소실 된 숭례문은 다시 우리 곁에 돌아올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저 그 낡았던 숭례문이 다시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