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떨어진다.

작별의 서

by YeonJeong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빛바랜 지 오래라




뒤늦게 박수를 구걸하며 작별을 고하였다. 나는 언제나 지각이다. 대학도 지각, 전공 선택도 지각, 졸업도 지각. 급기야 작별도 지각이다. 그래도 칭찬할 일은 작별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각이지만 결석은 아닌, 그래 14분 지각이다.


3년을 한결같이 출근한 모임이 있다. 공자께서 뜻을 세울 나이에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시작했는데, 나폴레옹이 스스로 대관하던 나이에서야 다른 사람들과 음을 맞춰보았고, 그 매력이 한 오케스트라에서 3년을 지내게 해 주었다. 그동안 폭풍 같은 개인사가 지나갔다. 처음에 입단할 때쯤 한낱 박사과정, 그것도 5년 차였구나. 원체 재능이 없는 사람인지라 박사과정이 참 힘들다면 힘들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5년 차에 겁도 없이 입단신청서를 돌멩이 던지듯 보내버렸다. 마치 물수제비를 50번은 튀겨야지 하면서 던졌지만 그대로 고꾸라지듯 강바닥에 처박는 그런 돌멩이를 던지듯이. 지금에서야 고백하자면, 바이올린을 시작할 때 도와주었던 김 박사가 자기가 만든 오케스트라에서 같이하자고 얘기를 꺼냈었다. 하지만, 코로나라는 희대의 유행병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지 그 오케스트라에는 자리가 한자리 밖에 나지 않았고, 친구가 있으면 적응을 빨리하겠지라는 안온한 생각도 끝내 피지 못하였다. 그 반발심에 세상에 오케스트라가 하나뿐이야? 하며 찾아본 오케스트라였다.


사실 거짓말은 하나 없지만, 입단신청서 허위기재나 다를 바 없었다. 악기 시작한 지 최소 몇 년 이상이어야 합니다라는 안내를 힘겹게 넘겼지만,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음악적 재능 있는 사람한테나 해당되는 것이지 나 같은 지각 인생이 그 시간 안에 그만큼의 실력을 갖추기란 불가능하다. 따지고 보면 내 재능도 지각이다. 그런 처참한 실력으로 제일 뒤에 앉아 있자니 그야말로 절망이었다. 처음 합주에 참여한 곡이 카르멘 판타지였는데, 몇 분짜리 곡을 처음 한 음을 소리 내고 그 뒤는 곡이 끝날 때까지 맞춰 보지도 못한 채 애처로이 눈길만 악보를 따라가다 끝나곤 했다. (마지막에 연주한 곡도 카르멘 판타지였는데 지금에 생각해 볼 때 이걸 못했다니 참 부족한 실력이었구나 싶다) 연습을 마치고 오케스트라 연습실 앞에서 144번 버스를 타면 친절하게 고려대 앞까지 강을 건너준다. 마침 타는 곳이 회차지점인지라 내 자리가 없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버스에서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우측 뒷바퀴 위의 자리에 쪼그려 앉아 그때 당시 20만 원짜리 연습용 바이올린을 끌어안고 있노라면, 내가 다음 주에는 할 수 있을지, 지금이라도 그만둬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에 그렇게 입안이 까끌거릴 수가 없었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그 추적대는 울결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내가 잘하는 건 지각해도 도착하기이니 오늘 가서는 노트 하나만 더 챙겨 오자라는 마음으로 계속 나갔다.


처음에는 신기한 악기들을 구경하는 재미로 갔던 것 같다. 그런 악기들을 지근거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남자들 사이에서 35년을 자란 내 눈에는 말랑말랑 오막조막한 친구들이 어쩌면 저렇게 악기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신기함도 컸다. 그리고 그때쯤 좌절을 견디는 힘이 처음 생기기 시작했던 때이기도 하다. 학교의 경제적 지원이 끊기는 시기, 그럼에도 아무것도 되어 있지 않다는 좌절감으로 가득한 박사 5년 차에게 취미로 하는 합주에서 소리 하나 못 냈기로서니 그게 무슨 대형 사고라고. 괜찮아 그냥 하는 만큼 하면 되지, 더 하고 싶으면 더 연습하면 되지. 그때쯤 5년 간 상담을 해주시던 선생님도 은퇴하시며 내 곁을 떠나간 시기이기도 하다. 선생님의 가르침 대로 인생을 묵묵히 연습하듯, 브람스도 묵묵히 연습하다 보면 딱 그만큼 되겠지 하며 계속 나아갔다. 첫 번째 공연에서는 포기하는 부분이 한장 단위였다면, 그 다음 공연에서는 그런 부분이 몇 줄 정도이다가, 그 다음 공연에서는 특별히 어려운 패시지이다가, 마지막에서는 실수는 해도 포기는 안하게 되었다.


합주는 매주 일요일 3시에 시작해서 5시에 끝났는데, 5시에 끝나면 으레 저녁을 먹고 집에 갈 법도 한데 그냥 흩어지고 있었다.

밥 먹을래요? 밥 먹읍시다. 아 밥 먹고 가.

내가 좋아하는 한국의 문화가 있다면, 이유 없이 밥으로 관계를 시작하는 문화이다. 3개월이 지나고 나는 한 명씩 복걸하기 시작했다. 이번 시즌에 들어온 오케스트라에 이상한 사람에서 추레한 박사과정 학생까지 가는데 8개월이 꼬박 걸렸다. 23년 5월에서야 저 사람에서 이 사람이 되었고, 밥 먹는 친구가 되었다. 왜 그렇게 노력했는지는,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상담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세상사는 연습에 가장 좋은 현장임에는 틀림없었다. 거절이 좌절은 아니라는 것, 맞고 틀림이 아니라 조율하는 과정이라는 것, 삶은 이론이 아닌 현장이라는 것, 그리고 사회는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연습하는 과정이었다.


수많은 인연을 마주했다. 누군가는 어른이 되어 가정을 책임지는 나이에 일주일에 사나흘 붙어 다닐 수 있는 새로운 친구가 수십 명 있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다. 지난 30년간 내 주변은 친구이자 경쟁자였다. 경쟁에서 이기지는 못해도 적어도 밀려나지 않는 정도는 했기에 여기까지 온 셈인데, 오케스트라는 경쟁이 없다는 점도 너무나 마음을 편하게 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도 마음을 쉬어갈 수 있는 부분이었다. 클래식을 하나씩 알아가면서 얻는 지식의 즐거움은 오히려 덤이었다.


내가 오케스트라에 들어가서 3년 간 활동하면서 얻은 것은 정신적 위안과 음악실력뿐이 아니었다. 갈고닦은 사회과학자의 눈에 오케스트라는 좋은 사회였다. 특별히 모난 사람이 없으면서 적당한 규모의 이상적인 사회. 내게 오케스트라는 어떻게 사회를 대할 것인가 하는 현장이 되었다. 나는 파편화된 삶들을 모았고, 모임으로 나아오게 했고, 개인의 합 이상의 집단을 만들었다. 진심으로 대했고, 몇몇 진심을 알아주는 친구들이 생겼다.


때로는 질문을 하기 전에 답을 마주하는 때가 생기곤 한다. 빛과 소금. 예수는 산상수훈에서 빛과 소금이 되라고 했다. 왜 빛과 소금일까. 빛과 소금은 주변에 영향을 미친다. 빛이 있기 전에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도 빛의 존재 만으로 돌부리를 피해 갈 수 있다. 소금 몇 알이 전체 음식 맛을 바꾸는 것처럼 내가 그 자리에 있음으로써 주변이 바뀌는 사람이 예수가 그린 이상적인 인간이다. 내가 들어갈 때의 오케스트라와 내가 나올 때의 오케스트라는 확연하게 다르다. 이 경험은 결코 바꿀수 없는 인생을 관통하는 경험이 되었다. 화엄경의 사사무애법계, 물 들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물을 들이는 사람. 미혹을 경계하지 않으며 연기를 발현하는 사람. 그 玄의 세계를 찰나 경험하였다.


오케스트라에 있는 동안 한 학생은 공부를 마쳤고, 분야를 인정받았다. 형용의 고요함에 도달해 보았고, 미혹의 현장으로 내려 꽂히기도 했다. 근래, 역력하게 지쳤다. 당분 가득한 사람들. 편안함에서 그치지 않는 관계. 그 모든 것은 핑계요, 스스로 오염되었다. 고요한 호수는 간 곳 없고 넘실대는 파도만 가득하다. 이처럼 하나하나 걸리는 것 많은 글도 처음이다. 리트머스 시험지는 검다. 나는 나를 찾아야겠다. 빛과 소금이라는 과거의 영광을 거부해야겠다. 당연과 자연을 구분해야겠다. 존재의 자연을 찾아와야겠다. 자연은 지나침이 없지만 당연은 지나침이 있다. 당연한 자리가 너무나 당연해지는 것을 더 이상 보지 않겠다. 나의 부족함이 당연함으로 넘어가는 것을 두고 보지 않겠다. 추운 겨울 속 당연함을 얼려 깨트리고 첫 봄과 같은 고요를 찾아야겠다. 그래야 너희들을 다시 사랑할 수 있으리.


늦어도 한참 늦었다. 9개월은 일찍 결정했어야 했다. 나는 또 지각했다. 마지막 9개월은 미련이었다. 떼지 못한 정이었고, 관계 속 혈당이었다. 사랑할 능력도 없으면서 스스로를 과대평가했다. 패배의 길을 다시 걷고 있었다. 잔인한 지각의 순간이었다. 관계가 뒤틀려 갔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지 못하고 뒷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황망히 끌려다녔다. 시들어가는 환호성, 탐탁지 않은 갈채, 빛바랜 미소.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이제는 떠난다.


사랑은 단지 찰나에 지나지 않는 것. 과거에 너희들을 사랑했다고 지금도 사랑한다고는 할 수 없는 것. 순수한 사랑. 베풂과 동시에 흩어져버리는 것. 앙금이 남지 않는 것. 그 무엇도 남지 않는 것. 내 혈관 속 당연과 당분. 너무나 많은 것이 남아 있는 가시나무. 이 모든 것을 털어버린 다음, 우리 다시 만나자. 신이 되려 한 남자. 무한한 사랑이라는 미구에 스스로 속아 시지프스의 억겁 속에 몸을 맡긴다.


우리네 삶은 어디로 흘러가는지요. 아! 다만 던져진 존재로소이다. 작별을 사랑하며.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갈채와 더불어 흩어지는 날

내 영혼 슬픈 눈

나의 사랑, 사랑을 위한 결별

꽃다이 죽는 나의 청춘




아람 오케스트라 5번째 공연, 그 열흘 뒤.

어느 날, 어느 시, 어느 좋은 자리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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