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선생, 첫 학생

진정한 정원가란 꽃을 가꾸는 사람이 아니라 흙을 가꾸는 사람이다.

by YeonJeong

송구하게도, 79명의 학생들에게 통계학을 가르칠 기회를 얻었다. 서울의 모 대학에서 2학년의 전공필수 과목을 2개반 담당하게 된 것이다. 막연히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보고 싶다는 상상으로 시작을 했는데 10년이 걸릴 줄은 몰랐다. 세상은 나의 부족함을 어찌나 잘 알았는지 가르칠 기회를 좀처럼 주지 않았다. 막연히 가르치는 입장이라는 것은 누군가의 우위에 있고,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만 잘못 이해했던 나의 부끄러운 민낯을 세상은 이미 알았던 것이다. 10년을 깨어지고 부서지며, 이제는 가르치는 것의 의미를 배울 자격이 주어졌을 때 79명의 대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너무나 어색한 첫만남을 잊지 못한다. 나도 내가 걱정이 되어 까만색 셔츠에 까만색 바지, 까만색 마커를 들고 이것저것 적어가며, 나도 아직 어렵지만 어렵지 않은 척 재미있는 과목인 양 열심히 학생들의 관심을 구걸했다. 정약용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스프레드시트를 만든 사람이라느니, 학교도 전문가도 실수를 하지만 여러분들은 이런 실수할 리가 없다느니 하면서 열심히 준비한 내용을 떠들었다. 시간이 너무 남으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과는 달리 첫 수업을 가득채워서 해버리는 만행(?)을 저질러가며 학생들과의 첫 만남을 힘겹게 지나왔다.


누군가에게 점수를 매기고 평가하는 것은 싸구려 우월감인줄 알았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누군가를 평가하는 일련의 과정은 아주 작은 확률로 맛보는 만족감과 높은 확률의 고통, 그리고 앙금처럼 내려깔리는 불편함의 과정이다.

여러분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든, 어디가서 학생회 일을 하든 그 일의 좋은 부분이 있고, 싫은 부분이 있을텐데, 제가 가진 직업도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에게 통계학을 알려주는 것이 좋은 점이라면 여러분들을 평가하는 것은 제가 가진 직업의 단점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여러분들보다 알아봐야 얼마나 더 안다고 여러분들을 평가하겠나요. 하지만 평가과정이 없을 수는 없고, 이 부분 또한 제 업무의 의무사항이니 어쩔 수 없이 평가를 이렇게 하겠습니다.


박사를 졸업할 때 가졌던 마음을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전해주고 싶었다. 사회과학은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학문이다. 경제학은 사람에게 선악을 묻지 않는다. 그 어떤 조건이든 무시하고 누구든지 혜택을 볼 수 있고, 누구든지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경제학자의 관심사이다. 때로는 경제학이 요구하는 사랑의 수준이 너무 높아 감당하기 힘들 때도 있다. 내가 감정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내가 그 사람을 빼고 정책을 고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사회과학의 영역안에 들어와 있는 이상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마음을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주고 싶었다.


25년 상반기는 유난히 많은 일이 있었다.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경북 지역이 산불로 뒤덮혔으며, 사상자가 속출하고 넓은 임야가 소실되었다. 학생들에게 딱 5초만 묵념하자고 제안했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학생들에게 좋은 지식을 전수하여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장차 우리 학생들은 현재의 자리에서 최대한 열심히 학습하여 미래에 이런 비극이 없도록 활동하는 사람들이 되길 바랐다. 그로부터 몇 주 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심판이 인용되었다. 사회과학도의 가장 기본은 사회에 대한 관심이다. 교수자의 자리에서 정치를 논해서도 안되고, 정치 토론을 그렇게 즐기는 타입도 아니지만 조만간 급하게 치러질 대선에서 좋은 선택을 하기 바라는 마음에 좋은 선택을 하길 바란다는 간단한 말 한 마디로 격동의 대한민국을 어루만졌다.


강의를 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들으신 지도교수님은 이제 교수자로서의 태도를 가르쳐주셨다.

학생들한테 최소 똑같은 것 3번을 설명한다고 생각해야 돼요.

박사과정 때 깊게 은혜를 입은, 이제는 은퇴하신 원로교수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100번 질문을 받으면 100번 같은 설명을 하면서도 처음 설명해주는 것처럼, 좋은 표정으로 웃으면서 친절하게 해야돼.

나는 참 많은 사람을 만났고, 참 좋은 분들께 은혜를 입었다. 교수님들로부터 배운 그대로 학생들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가 되었다. 같은 설명을 수업 시간 시작할 때마다 하였다. 학생들은 짝사랑의 대상이다. 묵묵하기만 하고 불만이 있다면 뭐가 불만인지 원체 알려주지 않는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가 어렵다. 열 번 설명이 필요하다면 열 두 번 웃으면서 하겠다는 마음으로 수업에 참여했다. 항상 수업의 로드맵을 제시하고, 우리가 지금 어디 쯤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노력했다. 교수의 역할 중 큰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수업이 해야할 일이 무엇이고 우리는 지금 어디쯤 있는지 학생들은 도저히 알 수 없다. 교수가 알려줘야 한다. 이것을 위해 꽤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강의를 할 때 또 하나 신경 쓴 것은 어떤 학생이든 무엇이라도 얻어가는 게 있는 강의를 하자는 것이었다. 한 수업에는 많은 학생들이 있고 모든 학생들은 수준이 모두 다르며, 40명 정도 되는 중대형 강의는 학생 한명한명을 챙기기는 어렵다. 수학과 통계학에 대한 이해가 높은 학생은 그만큼 많이 얻어가고, 그렇지 못한 학생이라도 한가지라도 얻어가는 강의가 되기를 바랐다. 이를 위해서는 내가 기술로서의 수학을 내려놓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직관적인 이해와 충분한 배경설명이 이를 위한 방법이었다. 수학적인 이해가 되는 학생은 수학적인 기반이 있는 직관적인 이해를 할 것이고, 그것이 어려운 학생은 직관으로 통계학적인 통찰을 가지면 되기 때문이다.


통계학은 확실히 진입 장벽이 있는 과목이다. 특히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이해를 한 학생과 하지 않은 학생이 명백하게 갈리는 과목이기도 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실상 중도포기하는 학생도 보이기 시작했다. 수학에 거부감이 심하면 듣기 힘든 과목인 것도 사실이다. 수학을 쓰지 않고 모든 계산은 사칙연산과 제곱근까지만 쓰겠다고 공언하고 실제로도 수업 진행을 그렇게 했다. 하지만 수학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학생은 애초에 그런 문제가 아님을 알기에 마음만큼 도와주지 못했던 점이 많이 아쉬웠다. 다만 나는 수학에 거부감이 심하고 수학을 못해라는 스스로에 대한 선입견을 조금이라도 해소해주고 싶었다. 이것이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조교의 지원없이 수업을 하느라 다소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그만큼 학생들을 섬길 수 있어서 좋았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시험 출제를 하면서 변별력이 없으면 어떡하지, 학생들이 너무 어려워하면 어떡하지 온갖 걱정을 다 했다. 기말고사 때는 말없이 돌아서야 하는 마지막 시간이 너무나 애잔했다. 학부 때 나를 예뻐해주셨던 교수님께서 너희들을 사람들한테 말할 때는 우리 애들이라고 말한다고 하신 말씀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가르친 학생은 진짜 우리 애들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 어느 때보다 풍성했다.


기말고사를 함께 치르면서,

너희들의 시험치는 얼굴을 가만가만 눈에 담았다. 어찌보면 내가 낸 시험으로 너희들이 고생하고 있는 지금이지만, 그래도 한 명 한 명 시험 잘보기를 바라며, 한 줄 한 줄 적어내려가는 너희들이 틀리지 않기를 기도하며 시험지를 몰래 훔쳐보았다. 꼭 언젠가 우연히 다시 만나면 이름을 다 외우지는 못하더라도 "아 그때 제 수업 들었던..!" 정도는 할 수 있길 바라며. 그리고 꼭 잘 되길 바라며, 행복하길 바라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얼굴을 내 기억 속에 하나하나 새겼다, 마음에 새겼다. 마지막 만남에서 잘가라고 잘살라고 축복하는 말한마디 속시원하게 내지를 수 없는 이 상황은 내가 가진 이 직업의 가장 안좋은 점이라고, 어쩌면 저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용히 나가는 너희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내가 가진 무한의 축복을 끊임없이 쏟아내었다.


카렐 차페크의 정원가의 열두달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진정한 정원가란 꽃을 가꾸는 사람이 아니라 흙을 가꾸는 사람이다.

내가 한동안, 어쩌면 평생 가슴에 품어야 할 말을 찾은 듯 하다. 꽃을 피우는 것은 나무가 할 일이다. 나는 다만 흙 속을 가꾸며, 흙 속에서 어떤 존재가 며칠을 몇주를 몇달을, 어쩌면 몇년을 기다리고 있는지 기다리는 존재이다. 때로는 두엄을 손으로 섞으며, 손톱 밑 까맣게 흙을 긁으면서 묵묵히 꽃을 기다리는 정원가의 자세로 학생들을 대하자. 그리고 언젠가 실제로 정원가가 되자. 따사로운 햇살이 움직이고 새들이 제 짝을 찾는 동안 정원가는 세상을 향해 엉덩이를 들이민 자세로 봄을 즐긴다. 이것이 즐거움인양 우리 학생들을 만나야겠다.




25년 강의가 끝나고도 한달 이레 뒤,

다들 잘 지내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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