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첫 걸음
어렸을 때부터 글을 써보고 싶어서 수많은 시도를 했다. 어릴 때 일기를 써서 선생님께 검사받은 기억이 있는 세대를 거쳐왔지만, 머리가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하면서 내 글을 써보고 싶은 욕심은 초등학교 6학년이 처음이었던 듯 하다. 처음에는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어찌나 후했던지 자신을 대작을 쓸 인재라 믿고 누가 옛날 사람 아니랄까봐 수천 장의 원고지를 준비했다. 수십 년 뒤 유리장 안에 들어있을 내 육필원고를 사람들이 관람하는 것을 상상했던 듯 하다. 채 백장을 쓰지도 못하고 유취한 시도는 끝이 났다.
다음 시도는 16살 즈음이었다. 두꺼운 줄공책을 준비해 연필로 한 장씩 적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부분이 표절이다. 재밌는 글이 있으면 기억했다가 거의 똑같이 배껴적기를 반복했고, 또 당시에는 학교를 가기 싫어했기에 대부분 저항의 글이었다. 차마 저항문학이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기라성같은 백여년전 문학가들에 빗대지 못함이다. 그래도 남의 글을 내 글인양 스스로를 성공적으로 속였기 때문에 한 권을 가득 채우고 두번째 공책을 조금은 더럽힐 수 있었다.
그 뒤의 글을 쓰는 시도는 시종일관 실패의 연속이있다. 20살에 접어들면서 부터는 누구나 써보는 블로그 글을 시도했었다. 마침 20대의 인격적 부족함은 그 자체로 고통이었기에 당시 마음은 한없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만큼 글도 깊어지면 좋으련만, 나름의 처절한 고통을 담아내기에 내 문장은 가련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다보니 누구나 쓴다는 블로그 글도 정상적으로 채우지 못했다. 찾아봐도 모르는 한자어로 뒤덮인 천착한 글, 모국어도 제대로 못하면서 영어로 쓴 허세의 글, 표현력이 없어서 사진으로 그 표현을 메워보려는 불쌍한 글. 그 많은 글들이 미처 지워지지 못하고 어딘가의 공간에 남아있다.
그뿐이랴. 1년 전까지도 크게 성장하진 못했었다. 그래도 그때는 공부를 오래한 냄새를 좀 풍기려 했는지 약간은 전략적이었다. 내가 독자를 너무 넓게 생각했었구나. 그렇다면 독자를 아주 좁히자. 편지글을 쓰자. 어머니, 친구들, 혹은 신에게 쓰는 글을 쓰자.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큰 진보이다. 실제로 에세이의 꽤 큰 부분이 편지글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꽤 괜찮은 전략이다. 하지만 실패했다. 바빠서라는 핑계로 스스로를 달래지만 본질적인 문제가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쁜걸로 따지면 지금이 훨씬 바쁠테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왜 나는 지난 20년을 문장 하나 적는데 실패했을까. 수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글의 시종이 일관되지 않아서, 글의 구성을 완성하지 못해서, 문장력의 부재로 전후의 긴밀성이 부족해서, 논리적인 글의 전개를 품을 능력이 없어서, 내용의 알맹이가 없고 구체적인 서술 능력이 없어서, 본디 창의는 지식에서 나오는 법인데 앎이 부족해서 글이 고루해서, 변화무쌍하기는 커녕 단조롭기 그지 없어서. 이게 정말 이유였을까.
내 글은 현학적이고 교조적이다. 선문답을 즐긴다고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제 맘대로의 선문답을 남들이 못알아 듣는걸 즐긴적이 훨씬 많을게다. 가르칠 자격이 없으면서 가르치려 들고, 평가할 자격이 없으면서 평가하고 재단한다. 내 글은 그런 글이다. 그게 그간 모든 글들이 실패로 돌아간 이유일게다. 불과 몇달 전에 친한 동생이 내 글을 보고 촌철을 날렸다. "오빠는 연애 편지에서도, 마음을 정리하는 글에서도 가르치려 들고 있어." 실제로 그랬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이론이 있습니다.' 퍽이나 심리학을 알면 얼마나 알며, 경제학을 알면 얼마나 알길래 그런 낯붉은 말들을 늘어놨을까. 불과 몇 분 전에 어머니에게 보낸 메시지에서는 "예수가 말한 믿음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맘대로 해석을 늘어놓았고, 제 편하자고 주변 사람들에게 원치않는 해석을 강요하고 있다.
'글은 발가벗고 일반 대중 앞에 선 나다.' 故 장영희 교수의 글에서 정답을 찾을 수 있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발가벗음이다. 발가벗은 모습이 멋있고 잘생겼을수도 있고, 못생기고 차마 보고싶지 않은 모습일수도 있다. 있는 그대로를 왜곡없이 본다는 것이 어찌나 어려운 일인가. 조금이라도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추함을 가리는 순간 그 글은 쓸모가 없어진다. 굳이 가리지 않는다고 해도 나의 예쁜 모습에는 온갓 강조선을 긋고 나의 못난 모습은 이목에서 은근슬쩍 밀어내는 순간 저자와 독자 모두 왜곡된 글이 주는 느낌을 피부로 알게 된다. 그렇기에 글을 쓴다는 것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온전히 발가벗는 일이며, 내가 쓰고자 했던 모든 글들은 나를 발가벗기는 글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어려웠던 것이다.
과학의 글을 쓸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그 때는 정확하게 어릴 때 봤던 철완 아톰을 아주 작은 부품까지 분해한 장면이 떠오른다. 연구하는 대상을 완전히 해체하고 찢어발겨 가장 밑바닥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누군가의 업적을 찬양할 필요도 없고 폄훼할 필요도 없다. 누군가의 잘못을 비난할 필요도 없고 변명할 필요도 없다. 일어난 현상을 보고 그 결과를 관찰하는 것이 전부다. 철저하게 가치중립적인 관찰, 그것이 과학자로서의 평가의 글이다. 감상적인 글이라고 하여 본질이 달라지지 않는다. 굳이 메타인지, 자신의 타자화 등등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자신의 생각, 행동을 그냥 바람이 부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관찰하는 것이다. 그 감상이 내가 쓰려고 했던 글이다. 그래서 내가 쓰고자 했던 글은 그만큼 쉽다. 빨간색을 보고 빨간색이라고 하는 것만큼 쉬운 것이 어딨겠는가. 빨간색을 노란색이라고 거짓말하는 것이 훨씬 어려운 법이다.
나는 본디 문장이 좋아야 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러하지 못하다. 스스로에 대한 평가라 후하게 쳐준다고 하더라도 부족함을 가리기 어려워 글을 쓰는데 번번이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보니 한 문장 적어내리는데 한 세월이고, 그렇게 적어내린 문장들도 문단 째로 지우기 일쑤이다. 모든 글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단 한 문장 있다. 다른 모든 문장은 그 한 문장을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그 단 한 문장을 마음으로 알지 못하면 글은 반드시 무너진다. 장구한 실패의 역사는 그 한 문장을 알 능력이 없어서 였다. 이제 마지막 시작을 기대하며 발가벗은 내 마음을 전시한다.
2023. 12. 16. 그렇게 추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