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그리운 이유
2020년 5월을 시작으로 만 2년 10개월. 아들과 매일 24시간을 보낸 시간이다. 내 어릴 적 놀았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아들과 놀아주었으니, 이만하면 하산할 때가 된 셈이다.
아들이 갓 초등학교를 입학한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이런저런 일로 서로 부대끼며 보낸 시간을 뒤로하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출근 전날, 아들과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배드민턴을 치고 돌아와 컴퓨터 게임을 했다. 지난날들 동안 아들과 함께했던 수많은 놀이 중 하나였다. 웃기도 하고, 서로의 실수로 짜증 내기도 했던 게임인데, 이상하게 즐겁지 않다. 백수 생활을 탈피한 채 새롭게 일을 시작하려는 불안감이 엄습해서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아마도 추억 때문이리라. 비록 아들과 몸은 서로 떨어져 있어도, 좋든 싫든 몇 년을 함께했던 추억은 내 머릿속에 남아있을 게 분명하니 말이다.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가는데 아들이 말이 없다. 왜 그런가 해서 쳐다보니 울고 있다. 이유를 묻고 싶진 않았다. 애써 눈 밖으로 나오려는 눈물을 나 역시 참고 있었으니, 아들이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했다. 역시 추억 때문이리라.
출근한 첫날, 낮 동안 아들은 처가에 머물렀다. 늘 아빠와 함께했는데, 갑작스럽게 홀로 있는 시간이 아직은 어색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아들은 이날부터 할아버지, 할머니랑 자겠다고 했다. 종일 당신들과 보내니 정들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매일 자겠단다. 어차피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보아주어야 하니, 속히 적응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늘 나와 함께했던 아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할아버지, 할머니만 찾으니 내심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참 정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아내는 아들이 왜 그러는지 알겠다고 했다. 알기에 왜 그러는지 묻지 않았다고 했다. 속 깊은 아들은 평소에도 자기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눈물을 참아야만 했던 아들은, 스스로 추억을 잊기로 작정했는지도 모른다. 차마 나와 아내에게 말 못 한 채 말이다.
며칠 후 아들은 구토와 설사를 동반하며 앓았다. 급하게 먹다가 체했나 보다고 생각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나와 떨어져 있는 것 때문이라고 하셨다. 설마 그런 이유로 애가 아프겠냐고 생각했지만, 싫은 말 못 하고 꾹 참는 아들 성격으로 볼 때 그럴 만도 하겠다 싶었다. 딱한 것. 실은 나도 아들처럼 앓았다. 마음으로.
추억이란 재밌으면서도 무섭다. 추억이 그리운 이유는, 좋았던 기억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사실 뒤 돌아보면, 지금 상황이 훨씬 좋다. 놀지 않고 돈을 번다. 목동의 키 작고 좁은 집보다 훨씬 큰 집에서 살고 있다. 사실 퇴근 후나 주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지난날 아들과 함께했던 놀이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마음 한편이 쓸쓸할까. 그래, 추억이 그리운 이유는 비록 속상했지만, 가난했지만, 아팠지만, 웃고 울었던 그날로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다는 아쉬움 때문인가 보다. 시간은 절대 우릴 위해 멈추어주지 않기에, 붙잡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는 시간은 오직 그 순간만 누릴 수 있기 때문이리라.
오늘, 그리고 지금을 누려야겠다.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겠다. 오로지 지금뿐인 초등학생 시절의 아들과도 여전히 놀아야겠다.
먼 훗날 돌아볼 지금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기에….